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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기] 그리고 청년은 성장한다

<퀵> 이민기

‘무식하게 빠른 놈.’ <>의 이민기는 청담에서 상암까지 20분이면 주파하는 업계 최고의 ‘스피드’ 퀵서비스맨이다. 그가 연기하는 ‘기수’는 한때 학원가를 주름잡는 폭주족이었으나 이제는 BMW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러 다닌다. 그러던 중 폭주족 시절 단짝이었던, 지금은 인기 아이돌 가수인 아로미(강예원)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다 의문의 협박전화를 받는다. 미지의 인물이 지시하는 대로 배달을 돕지 않으면 아로미가 쓴 헬멧이 폭발한다는 것. 그렇게 기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아수라장이 된 서울을 끊임없이 질주한다. 명동과 테헤란로, 그리고 올림픽대로 등 그간의 한국영화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추격전이 벌어지는 <>에서 이민기는 온전히 혼자 중심을 잡아야 하는 ‘원톱’ 주인공이다. 여전히 ‘<해운대>의 형식이’로 기억되는 그에게 그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돌파해야 하는 ‘언젠가 한번은 닥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미친’ 오토바이에서 이제 막 내린 그를 만났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설경구에게 잘하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같은 남자다 보니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고, 내 성격도 그렇게 살가운 편이 못 돼서 좀 쑥스러운 사이다. 그래도 <해운대> 때 워낙 같이 살다시피 해서 편한 형처럼 느껴지는 선배다. 그러다 어느 날 경구 형한테서 불쑥 문자가 왔다. “<> 잘해야 한다.” 짧지만 책임감 팍팍 느껴지는 문자였다. (웃음) 그래도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누구보다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잘할 거고요, 잘돼야 하고요…’, 이렇게 40자 꽉 채워서 보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경구 형을 만났는데 “정말 민기 문자에서 진심이 느껴졌어. 잘할 거라는 믿음이 왔어” 하고 칭찬해주셨다. 괜히 뿌듯한 기분? 그런데 알고 보니 강예원 누나, 김인권 형한테까지 단체로 보낸 문자였더라. 유일하게 나 혼자 정색하고 진지하게 답했다고 하더라. (웃음)

-<>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강예원과 김인권, 모두 <해운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다. =<해운대>가 성공하면서 ‘<해운대>의 젊은 피들이 모여서 신나게 영화 한번 해보자’는 윤제균 감독님의 얘기가 시작이었다. 그렇게 받게 된 시나리오가 바로 <>이었다. 굉장히 오락성이 짙은 영화였다. 그러면서도 느끼한 것 없이 담백하게 질주하는 영화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되는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다. (웃음)

-원래 좀 오토바이를 탔다고 들었다. =스무살 조금 넘어 2종 소형면허를 땄다. 그러다보니 좀 편했다. 난이도 높은 액션장면이 아닌 경우는 직접 다 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폭주족 그런 건 아니고. (웃음) 스무살 무렵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차 살 돈이 없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거였다. 아무튼 촬영하면서 150km 넘게 질주하기도 했다.

-부상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았나. =매 순간 위험했다. 폭발과 질주, 워낙 위험요소가 많은 영화다 보니 사전에 치밀하게 안전에 대한 신경을 썼다. 원래 이런 액션영화를 찍으면 인대가 끊어졌다거나 어디에 철심을 박았다거나 하다못해 가벼운 찰과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여줄 게 없다. 그래서 괜히 열심히 영화 안 찍은 것 같기도 하고 참. (웃음)

-특히 많은 남자배우들이 그런 부상을 영광의 상처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촬영 들어가면서 인대 정도는 내 것이 아니다, 하고 마음먹었다. (웃음) 그런데 <>은 격투장면에서 합이 잘 안 맞으면 어딘가 찢어지고 부러지는 수준이 아니라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죽을 수도 있는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러니 ‘이거 안 다치고 촬영이 끝나도 되는 건가?’ 하며 영광의 상처 운운하는 건 사치인 영화다. 계속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여기서 저기로 뛰어내린다, 를 잘못하면 발목을 삐고 그러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이 내 유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임했다. (웃음) 그래서 더 긴장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가 직접 해보고 싶은 장면들이 많았고 또 그렇게 했다. 스탭들이 못하게 말리면 더 고집을 부리거나 하진 않았고, 아무튼 워낙 치밀하게 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영화였고 그러지 않으면 촬영 자체를 시작할 수 없는 정도의 액션영화였기에 애초에 준비를 많이 해서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지금에 와서 <해운대>의 형식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어떤가. =일단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영화이고 가장 직전의 내 모습을 보여준 영화라 애착이 크다. 형식이가 가졌던 인간적인 매력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당연히 ‘<해운대>의 이민기’가 아닌 ‘<>의 이민기’로 기억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런데 사실 가장 직전의 영화는 <10억>이다. <10억>이 <해운대>보다 늦게 개봉해서 더 일찍 내렸다. (웃음)

-<>의 조범구 감독과는 이미 그의 전작인 <뚝방전설>에서 조우한 적이 있다. 배우로서는 무명이던 시절 <뚝방전설>에 ‘고삐리7’로 나온 적 있다. (웃음)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뚝방전설> 후반부에 친구들에게 전설의 뚝방대첩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고삐리로 나왔다. 그때 (이)천희 형이 초밥을 사준다고 유혹해서 우정출연을 한 거였다. 그런데 결국 밥값은 (박)건형 형이 냈다. (웃음) 아무튼 조범구 감독님은 되게 인상이 좋았다. 딱 하루 촬영가서 분장, 연기까지 하면서 현장에 3시간도 안 있었던 것 같은데 계속 ‘도와줘서 고마워’ 그러시며… 그런데 이후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이라면. =코엑스 메가박스 흡연실에 친구들이랑 있었는데, 친구들 중 하나가 “저 사람 아는 사람 같은데?” 하면서 계속 쳐다보는 거다. 그래서 “야, 우리보다 윗분 같은데 인사할 거면 하고 아니면 눈 마주치지 마” 그랬다. 그런데 그쪽에서 “민기야!” 그러는 거다. 내가 잘 못 알아보고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있으니 뻘쭘하게 “음, 나 <뚝방전설> 감독…” 그러며 머뭇거리시더라. 다른 감독님 같으면 왜 몰라보냐고 혼내고 그러실 텐데 그렇게 어색해하는 모습이 참 훈훈했다. 좀 그런 매력이 있는 분이다. (웃음)

-<뚝방전설>도 그렇듯이 조범구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물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맞다. <>은 유쾌한 오락영화지만 감독님이 얘기하는 본질적인 진실? 그런 걸 잊지 말고 갖고 가자, 하는 게 있었다. 유쾌하게 즐기는 가운데 인물들이 공허해지는 게 싫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 퀵서비스맨의 애환을 깊이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웃음) 본질적으로 그런 고민들을 서로 많이 얘기했다. 그런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촬영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은 ‘오락영화’라는 본분에 충실한 영화다. 범인도 빨리 등장하고 시작과 동시에 범행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주어진 시간을 강도 높은 액션으로 채웠다. 분명 그 강도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참 애매하다. 몸으로 하는 액션이면 정말 겁나게 발차기 연습해서 ‘내가 직접 다 했습니다’ 그렇게 티를 낼 수도 있는데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은 사실 그런 티도 잘 안 나고. 그런데 <>은 마음 편히 내 걱정만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액션, 추격신들이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시도되지 않은 것들이라 함께 만들어가야 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게 가능해?’, ‘우리나라에서 이런 게 촬영 가능해?’ 하는 거였다. 장면들이 재미있기는 한데 너무 만화적이어서 감독님에게 “그러니까 이 장면은 이런 느낌을 말하는 거죠?”라고 물었더니 “아니, 그거 진짜 그렇게 찍을 건데” 그러시는 거다. (웃음) 실제로 오세영 무술감독님도 처음에는 거절하셨다고 한다. 도저히 시나리오대로 촬영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스탭들이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를 먼저 신경 써야 했다.

-아무래도 원톱 주인공이어서 더 그랬을 것 같다. 과거 <해운대>의 설경구 등 함께했던 듬직한 선배들의 존재가 그립지 않았나. =처음에는 내가 맡은 역할을 한 개인으로서 충실히 연기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지 않더라. 원톱으로서의 기쁨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이전 영화들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아무래도 배우는 그런 사적인 감정, 현실의 심리상태가 캐릭터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잘 다스리는 게 중요했다. 연기 외의 것들을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 있던가, 하면서 예전에 선배들이 얘기하던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연기 생각만 하면서 가는 게 아니구나, 하는 그런 것.

-‘논스톱 오락영화’라는 관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더그 라이먼의 <점퍼>를 너무 재밌게 봤다. 영화 보고 한 4일 정도는 나도 점프를 했다. (웃음) <판타스틱4>도 그렇고 초능력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계속 상상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퀵서비스가 외국에는 없으니까 <>을 보는 외국인들은 퀵서비스맨을 초능력자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힘든 과정을 거쳤기에 크랭크업하던 날의 기억이 생생할 것 같다. =그다지 생생하지는 않은데. (웃음) 사실 크랭크업하고도 좀 추가촬영을 해서…. 여름에 가죽 재킷 입고 오토바이 타고 겨울에는 반바지 입고 오토바이 타야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어쨌건 딱 하나 얘기하고 싶은 건 있다. 세상 그 어떤 영화라도 다 고생의 결과물이고, <>이 우리 영화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스탭들이 너무 고생하셨다. 처음 시도하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경험치가 없는 상태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이 굉장히 컸다. 회의실에 가면 “도대체 저건 어떻게 찍었을까? 너무 위험했겠다”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빨간 글씨로 써 있다. (웃음) 그러다보니 며칠씩 잠 못 자고 입술 다 트고 그러는 건 예사였고, 실수하거나 잘못 되면 안된다는 긴장감이 너무 커서 해냈을 때의 쾌감 또한 굉장했다.

-중요한 시기에 개봉하는 한국영화다. 어떻게 내다보고 있나. =누가 “이번 영화 어느 정도 될 거 같아요?”라고 흥행에 대해 물어보면 예전 같으면 그저 “네, 잘되면 좋겠어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는데 <>은 그게 아니다. “500만은 들어야 합니다. 영화도 너무 재밌고 만족하실 겁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런 느낌? 그래서 진짜 영화가 잘돼서 고생한 스탭들이 다 빛을 봤으면 좋겠다. 물론 나한테도 중요한 작품이란 건 말할 것도 없다. <해운대> 하고 2년이 지났으니 군대 갔다오는 거랑 맞바꾼 영화가 <>이나 다름없다. 윤제균 감독님은 계속 나한테 무조건 겸손해야 한다, 그러시는데 <>은 그러고 싶지 않다. 다들 너무 고생했고 또한 나에게도 중요하고, 진짜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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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이혜영(아베다) 메이크업:김지현 스타일리스트:강이슬 의상협찬:송지오, 코데즈컴바인 베이직, 시스템 옴므, 솔리드 옴므, 카이야크만, 비비안 웨스트우드, 프레드페리, 크로킷 앤 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