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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프랑스 특유의 고고함, 그게 뭐죠?

올해로 9회 맞은 젊은 영화제 ‘파리 시네마’

파리 시네마의 주요 거점인 파리 13구의 MK2극장.

치열한 경쟁 위주의 국제 영화제에 지치셨다고요? 그럼 ‘파리 시네마’(7월2~13일)로 쉬러 오세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칸영화제가 막을 내린 지 채 두달도 지나지 않은 7월 초. 파리는 또 다른 영화제로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파리의 시네필들, 여름 바캉스 시즌에 파리를 찾은 관광객이 영화 축제를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거대한 칸영화제의 ‘시장’을 둘러싸고 열띤 ‘경쟁’을 벌여야 했던 배급자, 프로듀서, 감독 그리고 특집기사 준비에 밤낮 가릴 권리조차 박탈당해야 했던 문화부 기자들에게는 여름방학과 맞물려 시작되는 이 영화제가 좀 가혹한 스케줄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지난 2003년 개최해 올해로 9회를 맞은 젊은 영화제 ‘파리 시네마’는 여름 바캉스를 기다리며 볼거리, 즐길 거리를 찾는 파리지앵뿐 아니라 파리를 찾아온 관광객, 치열한 국제 영화제를 마치고 돌아온 영화 관계자들에게 ‘잠시 쉬었다 가세요’를 제안하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휴가 같은 축제다. 파리 전 지역의 16개 극장에서 나누어 진행되는 이 영화제는 국제경쟁부문이 있지만 사실 단 8편의 영화가 상영될 뿐이다. 오히려 영화제는 파리에서 곧 개봉할 영화들을 미리 저렴한 가격에(평소 가격의 반 정도) 볼 수 있는 아방프르미에, 비경쟁, 스페셜 상영 또는 특별한 감독이나 배우, 한 나라의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나 회고전 위주로 진행된다. 아시아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해 많은 한국 영화감독들이 참여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다양한 국적과 장르를 선보이며 여러 관객층을 겨냥했다. 폴란드영화의 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50여년 동안 150편 이상의 영화제에 출연한 프랑스의 국민배우 미카엘 론스달,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으로 시네필에게 치명적인 인상을 남긴 이사벨라 로셀리니, 멕시코영화의 보물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특별전이 준비됐고, 장르영화 팬들을 고려해 <더티 하리> 등을 연출한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 감독 돈 시겔의 회고전도 열렸다.

이 밖에도 수많은 관객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7월6일에는 ‘파리 시네마’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화배우 샬롯 램플링의 철학과 삶을 다룬 안젤리나 마카론 감독의 <더 룩, 타인에 의한 자화상>을 샬롯 램플링이 직접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평소 미스터리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고수해오던 램플링이 환한 얼굴로 “영화에 대해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면 저를 그대로 발견하게 될 거니까요”라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덕에 관객의 기대치 역시 한없이 치솟아올랐다.

이 영화제의 또 다른 매력은 이런 고전적인 영화상영 방식을 벗어나 진행되는 이벤트 상영에 있다. 고전영화를 음악가들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시네 콘서트’, 밤새 감자칩이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멕시코영화, 일본 로망 포르노, 필리핀 컬트영화, 뱀파이어영화들을 테마별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의 밤’이 대표적인 이벤트 상영이다. 벼룩시장의 도시답게 주말에는 수집가들이 고전영화 포스터, 잡지 등을 판매하는 벼룩시장도 열렸다. 이렇듯 ‘파리 시네마’는 영화 마켓, 경쟁부문 위주로 진행되는 여타의 국제 영화제와 달리 영화제가 편안한 휴식처임과 동시에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축제다.

게다가 ‘파리 시네마’는 프랑스 특유의 고고함이 없는 축제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여타의 영화제는 (몇몇 큰 규모의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불어로 된 영화만 상영하거나 외국어영화의 경우에도 불어자막만을 제공하는 탓에 외국인 관객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파리 시네마’는 상영시 영어자막에도 신경을 쓰는 등 영화제를 파리 시민을 위한 지역축제가 아니라 파리를 찾은 관광객도 불편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국제적 축제가 되도록 배려심을 발휘한다. 이 부담없는 축제는 지난 7월13일 (무려!) 거대한 시네 가라오케와 무도회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