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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벌써부터 속상하네

웃을 수 없는 예능, MBC <우리들의 일밤> ‘집드림’

서울 변두리 지역에 20년째 살고 있다. 사실 교통이나 위치는 그리 오지가 아닌데 어디 사냐는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상대가 ‘처음 듣는데… 도대체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 동네야?’라는 표정으로 알쏭달쏭해하기 일쑤라 이젠 그냥 유명한 옆 동네 이름을 대며 “그 근처”라고 하게 되는 동네다. 심지어 오랜 주민인 L(32)씨가 과거 MBC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재호(배용준)가 “나는 구로동이 싫어!”라고 외쳤을 때 못지않게 절박한 얼굴로 “내가 시집 못 가는 건 OO동에 살기 때문이야!”라고 부르짖기까지 한 그런 동네인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L씨에게는 애인이 없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이 동네에 살면서 최고로 혹은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꼈던 순간이 있으니 바로 90년대 후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가 간다>에 동네 버스 정류장 앞 구멍가게가 소개되었을 때다.

술이나 담배를 사려고 하는 청소년에게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성인이 아니면 판매를 거부하는 가게 주인을 찾아내 돈을 이긴 그의 양심을 치하하던 ‘양심가게’는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매일 보던 허름한 슈퍼가 무려 TV에 나왔을 때! 동네 이름과 함께 ‘양심가게’의 팻말이 걸릴 때! 나와 친구들은 전화통을 붙들고 마치 내가 가게 주인이라도 된 양 감격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착한 예능’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 뒤로도 장사가 잘 안되는 가게를 찾아가 개조하거나 새 설비를 들여놔주고 때로는 메뉴 컨설팅까지 해주던 ‘신장개업’, 주거 환경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 집을 리모델링해주던 ‘러브하우스’를 열심히 봤다. 일부 출연자들이 가게나 집값을 올려받고 떠나기도 했다는 후일담을 듣기도 했고,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적’ 방송이 문제의 근원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그들이 경제적인 안정 혹은 쾌적한 환경을 누렸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은 덤이라 치고.

그런데 최근 방송을 시작한 MBC <우리들의 일밤> ‘집드림’은 ‘착한 예능’과 ‘서바이벌’이 결합해 낳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예능이다. 전국 각지에서 신청서를 보낸 2천여 무주택 가족 중 1차로 16가족을 뽑아 8주간의 서바이벌을 거쳐 우승자에게 3억원 상당의 ‘집을 드린다’는 내용이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이 나라의 미친 부동산 투기 문제, 빈부를 대물림시키는 시스템을 파헤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40년 동안 남의 집 지어주는 일을 했는데 내 집이 없다”는 흰머리 성성한 가장과 이혼한 여동생 가족들까지 여덟명이 20평짜리 집에 사느라 조카들이 거실에서 자는 게 마음 아프다며 눈물짓는 주부를 보고 있으면 감동이 아니라 속이 상해서 절로 눈물이 난다. ‘사연의 진정성, 가족간의 친목도, 경제적 상황’ 등을 기준으로 먼저 본선에 진출한, 즉 앞으로 8주 동안 “치열한 퀴즈 대결”을 비롯해 피 말리는 과정을 거치며 피 터지게 살아남아야 할 16가족은 아직 집을 얻게 된 것도 아닌데 “뽑아주셔서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나 힘들고, 모두들 간절하다. 그런데 서로 싸워 이겨야 나의 행복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원형경기장 안의 검투사들을 바라보던 로마 사람들처럼 가장 절박한 이들의 경쟁을 구경하는 처지에 놓였다. 어느 주, 퀴즈를 맞히지 못해서 혹은 미션을 완수하지 못해서 ‘내 집’에서 멀어진 채 아이들을 데리고 ‘셋집’으로 돌아가는 아빠와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상상만 해도 마음이 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