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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새로운 길을 찾아서

필리핀 독립영화의 부흥 이끈 시네말라야영화제가 보여준 필리핀영화의 도약

<이스다-물고기 이야기>

지난 7월15일부터 24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제7회 시네말라야영화제가 열렸다. 시네말라야영화제는 오늘날 필리핀 독립영화의 부흥을 이끈 일등공신이다. 2005년부터 시네말라야영화재단은 매년 신인감독들의 시나리오를 공모해 당선작 10편에 50만페소의 제작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감독이나 제작자는 50만페소의 지원금을 시드머니로 추가 펀딩을 구해 제작을 진행한다. 그리고 작품들이 완성되면 그해 7월에 열리는 시네말라야영화제 경쟁부문에 자동 진출한다. 시네말라야의 지원을 받아 데뷔했거나 주목을 받은 이른바 ‘시네말라야 키즈’로는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 아우라에우스 솔리토, 크리스 마르티네즈, 프란시스 파시온, 제롤 타로그, 셰론 다욕 등이 있다. 이들은 필리핀영화를 대표하는 브리얀테 멘도자, 라브 디아즈, 라야 마틴 등에 이어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네말라야영화제는 한 단계 더 높은 도약을 준비 중이다. 제작지원에 이어 배급지원책 강화에 대한 고민과 브리얀테 멘도자의 국제적인 성공에 자극받은 많은 젊은 감독들이 멘도자의 영화 스타일을 지나치게 추종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배급지원책의 경우 시네말라야영화재단에서 시네말라야 지원작품들을 모아 지방을 돌며 약 일주일간 멀티플렉스나 대안상영관에서 상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최소한 제작비 회수까지 가능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또한 시네말라야 키즈 중 주류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감독들도 생겨나고 있다. <100>의 크리스 마르티네즈가 그 대표적이다. 그는 <키미도라> <내 신부 찾아줘요> 등의 흥행성공에 이어 올해는 <유혹의 섬>으로 흥행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제7회 시네말라야영화제의 경쟁부문 진출작들은 다양한 컬러의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획일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젊은 감독들의 진지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민다나오, 세부 등 지역 영화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영작 중 마르론 리베라의 <정화조에 빠진 여인>은 의미있는 작품이다. 최근 필리핀 독립영화의 관성화를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술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딸을 팔아넘기는 빈민가의 엄마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장면은 브리얀테 멘도자의 <입양아>를 패러디한 것이다. ‘핸드헬드 카메라와 빈민가 이야기만 있으면 돼’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칸, 베니스, 도쿄 등 영화제에서 초청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화조에 빠진 여인>은 스스로를 풍자하면서 필리핀 독립영화계에 각성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올해 시네말라야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 역시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의 <이스다-물고기 이야기>였다. 가장 탁월한 스토리텔러로 손꼽을 만한 그는 최근 2, 3년 사이에 다작을 하고 있다. <아델라> <트럭 밑의 삶>과 라야 마틴과 공동연출한 <마닐라>(시나리오는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가 썼으며, 칸영화제 진출), <프레사> 등 가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다-물고기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아이가 없던 가난한 중년의 여자가 임신을 한 뒤 낳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물고기. 그녀는 물고기를 애지중지하며 기르기 시작한다. 이 기묘한 이야기는 90년대에 TV에서 몇달에 걸쳐 소개되며 필리핀을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스다-물고기 이야기>는 판타지영화가 아니다. 쓰레기산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빈민의 고단한 삶과 그들의 종교관이 빚어내는 우화 같은 이야기다. <이스다-물고기 이야기>는 올해 가장 중요한 필리핀영화임에 틀림없으며,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라는 이름은 확실하게 부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