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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로르샤흐 심리분석과 예술 비평의 유비(類比)

무정형 잉크 자국을 본 피험자가 닮았다고 연상되는 무언가를 진술한다. 실험자는 피험자의 진술을 토대로 환자의 심리상태와 인품을 판독한다. 권위있는 심리학 진단법으로 오랫동안 추종된 로르샤흐 테스트의 검사 방법은 얼룩진 벽과 뭉게뭉게 구름에서 구체적 형상을 찾아보라고 충고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시각 훈련법에서 연원한다. 그래선지 로르샤흐 테스트의 구동 원리는 무의미에서 유의미를 발견하려는 예술 창작 및 해석의 본질과 겹친다.

심리분석의 틀로 가장 광범위하게 채택된 로르샤흐 테스트는 심리분석 분야에서 꽤 긴 전성기를 누렸다. 다만 이 검사 결과에 정확성과 신빙성을 검증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난점이 남았다. 피험자가 조작된 답을 내놓거나 실험자가 주관적 견해를 첨가해 해석한들 제재할 수단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사의 객관성은 의심받을 만했고 ‘경험적으로 입증’된 게 아니라는 잇단 지적과 의사과학이라는 지탄과 함께 부적절한 심리분석법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로르샤흐 테스트의 미진한 구석으로 인해 심리검사법의 영역에서 퇴출되진 않았다. 검증 불가한 권위의 지속성, 모호한 해석에 대한 공동체의 묵인, 해당 분야에서의 장기집권 등 로르샤흐 테스트의 우여곡절은 화단에서 추상미술의 전력과 닮은 데가 많다. 둘 사이의 닮은 점은 내용 외에도 형태까지 해당된다. 로르샤흐 검사지에서 우연적 얼룩으로 뒤덮인 전면적 화면(all-over)과 좌우대칭의 안정된 구조는 흩뿌려진 안료로 화면 전체가 통일감과 대칭적 밀도감을 띠는 추상표현주의 화면과 닮았다. 나바호(Navajo) 인디언 부족의 ‘대칭적’ 모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그 시발부터 대칭의 조형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로르샤흐 테스트가 해석과 처방의 권능을 장기간 부여받은 건 테스트 자체의 양면성과 양면성을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구성원들의 정서가 뒷받침했다. 로르샤흐 검사지에 찍힌 형상은 추상과 구상을 동시에 병행한다. 따라서 무정형 얼룩에서 특정 대상을 떠올려야 테스트는 유의미해진다. 피험자의 진술과 실험자의 해석 모두의 근거는 그들의 주관성에 있다. 마치 분석의 정밀도와 논리의 타당성을 지향하는 제도권 예술 비평이 종국에는 주관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닮았다. 논쟁에 휘말린 모든 예술 비평의 단골 빌미는 객관성의 결여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같은 치명적 결함조차 비평의 명을 다하게 만들진 않았다. 해석 주체의 주관성을 용인하는 다중의 합의가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의사과학이란 비난을 받는 로르샤흐 테스트의 입증불가한 객관성마저 심리학자가 여전히 로르샤흐 테스트를 포기하지 않는 현실까지 어쩌진 못한다. 예술과 사람의 마음은 닮은 구석이 많다. 과학적 검증 앞에서도 요지부동인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