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교차하고, 겹치고, 되돌아가는 시간

<북촌방향> 촬영현장.

<북촌방향>이 칸에서 상영됐을 때 홍상수 영화에 무한한 애정을 지닌 동세대의 명감독 클레어 드니는 파리에서 칸까지 오로지 이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영화제에 왔고 영화를 보고 새벽에 돌아가면서 “더없이 슬픈 영화다. 특히나 라스트신의 정서가 훌륭하다”고 찬탄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성일은 <북촌방향>을 처음 본 날 사석에서 “홍상수의 영화가 너무 맑아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는 사악한 파토스가 있어서 좋다”고 평했다. 슬프거나 사악하거나 하는 건 그들 각자의 감상의 결과이자 형용사적 표현에 해당할 것이지만, 나는 그 감상과 표현이 이 영화의 기이한 시간 작용이 일으킨 반응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북촌방향>을 본 다음 한 가지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중이었는데, 심지어 이런 경험을 했다. 영화 속 보람은 언젠가 20분 동안 아는 영화인을 연달아 네 명이나 만난 것이 참 신기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나도 조금은 그렇게 묻고 싶다. 그러니까 2~3일 사이의 일이다. 인터뷰를 하던 중 유준상은 <북촌방향>의 라스트신을 말하며 흘러가는 말처럼 “(고)현정이에게 홀리는 장면”이라고 표현했다. 그 다음에 나는 홍상수의 영화현장에 가는 고현정의 마음가짐이 적혀 있는 기사를 우연히 보았는데, 거기에서 그녀는 “이미 홀리고 싶은 상태로, 한번 홀려봐야지 하는 자세로 홍상수 감독 현장에 간다”고 말하고 있었다. 유준상을 홀린 고현정은 홍상수가 자기를 홀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거의 동시에 정성일이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의 개막작 <북촌방향>에 관하여 “꼬리 아홉인 여우들의 홀린 집”이라고 소개글을 쓴 걸 읽었다. 나는 <북촌방향>이 홀리는 영화이고 홀림의 영화라고 생각하여 그 낱말을 혼자 붙들고 있다고 상상했는데 한꺼번에 그들의 말을 그렇게 만난 건 좀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홀림은 단지 비유가 아닌 것 같다. 특히나 <북촌방향>의 경우 그게 영화적 활동인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는 원래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했지만, <북촌방향>은 그 홀림이라는 활동의 효과를 시간의 차원에 증가시키고 있고 그 때문에 홍상수의 영화 중에서 가장 신화적이고 설화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북촌방향>에서 그 홀림이란 결국 어떤 시간성의 작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북촌방향>은 우리를 어떻게 홀리는가. 그 시간성은 어떻게 활동하는가.

우선은 이런 도형들을 전제해볼 수 있다(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랙탈, 아니다). 재미삼아 그려본 엉터리이고 감독의 의중과는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다만 내게는 그 느낌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도 그런 촉이 닿았으면 싶어서 남긴다. 처음에는 성준이라는 수평선이 직진하고 그에 교차하는 귀신과 헛것과 신기루와 이미지들로서의 인물들이 출몰하여 수직선상으로 성준을 교차하고 있어서(그림1) 그걸 여러 번 경험하면서 포개어지는 그물망의 영화라고 생각했다(그림2). 하지만 그려놓고 보니 어딘가 느 낌이 맞지 않다. 성준이 직선이라는 게 문제다. 성준이 직선인 건 <북촌방향>의 인상과 맞지 않다. 다시 그린 첫 번째 그림. 성준이라는 곡선이 원형으로 자기의 꼬리를 문다(그림3). 성준이라는 원형의 곡선을 어떤 인물의 직선이 교차해서 지나간다(그림4).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성준의 곡선은 같은 모양으로 더 생기고 그 궤적을 그 누군가, 인물이라 할 직선이 여전히 교차하고 지나간다(그림5). 그건 영호라는, 보람이라는, 경진/예전이라는, 여배우와 학생들이라는 여러 인물일 수 있으므로 교차점은 많아진다(그림6). 그런데 생각해보니 출몰하는 인물들도 곡선인 것 같다. 마침내 성준이라는 원형의 곡선을 나머지 인물들의 곡선들이 지나간다(그림7). 순전히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이 그림이 <북촌방향>의 시간적 모형이라고 제멋대로 가정하려는 나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모형으로 비추어보자면 <북촌방향>의 시간에는 모서리가 없고 전후가 없고 분기와 교차가 있을 뿐이며 그 분기나 교차란 곧 접속이나 연결일 수도 있으며, 그 분기와 교차와 접속과 연결이 좀 덜한 지점이 있고 더한 지점이 있어서 더한 지점은 덜한 지점보다 점점 더 큰 구멍이 되어가고 마침내 커지고 커져서 그 활동력이 왕성해지는 가운데 시간의 블랙홀을 만들어 삶의 실체에 가깝게 다가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엉터리 도형만을 끌어안고서라도 나는 <북촌방향>에 행복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언어의 안쪽으로 들어와 <북촌방향>의 홀리는 시간의 작용을 다시 말해야만 할 것이다. 실패를 각오하고라도 그 작용 몇 가지를 말해야 할 것 같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