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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 속 깊은 순정마초

<오직 그대만> 소지섭

오직 한 여자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남자. 지금은 사라진 신파극의 전형성 안에서 소지섭은 자신의 남성성을 찾는다. 감정의 격랑, 표출하는 연기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았던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이미 그는 과거에서 한참 벗어나, 그만의 새로운 캐릭터를 정립해냈다. <오직 그대만>의 철민은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정을 조심스레 내놓는,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멋있는 연인이다.

캐릭터가 배우 본연의 모습과 접점을 가지는 수치를 계산한다면, 배우 소지섭은 가장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스튜디오로 들어와 의상을 입고, 촬영을 하고, 그리고 인터뷰를 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한치 낭비가 없다. 허튼 농담도, 부연설명도 없다. 소지섭의 용어는 단호하고 빠르고 정확하다. <영화는 영화다>를 함께한 장훈 감독의 말에 따르자면 ‘말 없고 속 깊은 남자’, 곧 오랫동안 가까이 친구로 두고 싶은 남자다. <오직 그대만>의 철민은 그런 ‘소지섭 혈액형’을 타고난 캐릭터 같다. 한때 잘나가는 복서였지만 상처로 인해 그 세계를 포기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정화(한효주)라는 순수한 여자를 만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남자. 시력을 잃어가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 수 있는 강단의 남자. 철민의 상당량이 배우 소지섭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눈빛과 온도를 담고 있다.

부러 울어줄 필요는 없다

“일년 전 시나리오가 왔을 땐 거절했다. 그런데 <로드 넘버 원> 할 때쯤 다시 시나리오가 돌아왔더라. ‘뭔가 있구나!’ 싶었다. 마침 멜로가 너무 하고 싶기도 했고.” <오직 그대만>은 <꽃섬><거미숲><마법사들> 같은 송일곤 감독의 전작에서 한뼘 떨어진, 그래서 그 모양새가 궁금한 통속극이었다. 뜸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아픈 사랑만을 체에 걸러 담은 결과 영화는 정석의 멜로가 줄 수 있는 장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통속극이지만 감독의 색깔이 분명한 작품이다. 알고 보니 송일곤 감독의 시각이 굉장히 여성적이더라. 여기에 홍경표 촬영감독의 누아르적인 화면이 더해져 흥미로운 작품이 됐다.” 그는 <오직 그대만>을 디지털 시대에 빛을 잃은 ‘아날로그적인 사랑’이라 정의한다. “사랑에 관해선 무뎌지는 게 요즘 세대다. 이전 세대가 지녔던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꺼내주고 싶었다. 부러 울어달라는 부탁은 안 한다. 각자의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사랑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송일곤 감독의 변화를 등에 지고 있는 소지섭. 그가 해석한 철민은 좀더 밝고, 기복 있는 남자다. “굳이 다른 작품을 참고하진 않았다. 레퍼런스가 있으면 무의식중에 그걸 좇아 하게 된다. 될 수 있는 한 철민 그 자체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했다.”

복서라는 설정으로 인해 촬영 전부터 권투 연습도 많았다. 전체 액션양이 많지 않은 탓에 부담은 적었지만 어디까지나 철민은 복서여야 했다. 연습하다 늘어난 손목 인대 때문에 아직 통증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육체적 수고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힘든 건 노출이었다. ‘몸짱’이라는 이미지가 나에겐 무척 큰 부담이다. 한 장면인데도 쉽지 않더라. 이젠 나이도 먹고 힘들다.” 말마따나 소지섭은 군대를 다녀왔고, 30대 중반이 되었으며 기존의 이미지를 불식시킬 복안이 필요한 2라운드에 오른 남자배우다. “연기가 직업이자 현실이 됐다. 지금은 열심히 살면서 기반을 닦을 때다. 잘하고 싶고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다음 작품으로 영화 <회사원>을 촬영 중인 그는 일년에 세 작품씩 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작품이 들어오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다. 많이 쌓아놓고 싶다. 선배들을 보면서 많이 느낀다. 내게도 멀지 않은 이야기다. 바꾸어 말하자면 발버둥치는 거다.”

이제 가끔 쉴 줄도 안다

스톰 모델로 데뷔한 게 1994년, 소지섭은 이제 연기경력만 15년차 배우다. 운좋게 발탁된 행운아란 출발을 지나, 그에게도 굴곡은 없지 않았다. “주목받았다, 한때.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힘든 일도 많았고, 인지도에 비해 캐스팅이 안됐던 시절도 보냈다. 그래도 해야 했다. 연기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했다.” 타협을 모르는 성격, 직선으로만 치닫는 그가 연기를 지속시킨 요령은 따로 있다. “난 평생 연기할 거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계속 연기를 하겠지만 평생 이 어려운 작업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숨막혀서 못할 것 같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하면서부터 연기의 재미를 알았다는 그는 이제 자신만의 페이스를 정립하는 중이다. “예전에 막 치고 달렸다면 이젠 가끔은 쉴 줄도 안다. 연기 외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그는 랩을 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도 발간했다. “랩을 할 때면 촌스러워도 상관하지 않았고, 책에는 부러 모델처럼 나온 멋진 사진은 다 골라냈다”는 게 그의 태도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봐 신경 쓰진 않는다. 요즘 더 큰 문제는 더이상 가슴에 담겨지는 게 없다는 거다. 연기라는 게 살아가면서 쌓은 경험들을 꺼내는 작업인데, 요즘의 나는 꺼내기만 한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들키지 않을까, 바닥이 보이지 않을까 부담이 된다.” <회사원> 촬영을 끝낸 뒤 그의 계획은 그래서 채우기 작업이다. 과연 어떤 방식이 될진 스스로도 아직 모른다. 다만, 그 채움의 끝에 배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도출되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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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강윤주·헤어 김정한·메이크업 원조연·의상협찬 지방시, 구찌, 릭오웬, 체사레파조티, 발리, 입생로랑, 발맹, 예거르쿨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