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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의 예술판독기] 오캄에서 잡스까지, 미니멀리즘 계보의 진화

아이폰4S의 발표현장, 2011년 10월4일(발표 다음날 스티브 잡스 숨 거두다).

본사의 공식 발표 직전까지 아이폰 신제품 출시 예정일을 예측하느라 지구촌이 일제히 분주했다. 세계를 호령하는 이 물건의 실체는 단순미와 최소주의의 가면을 썼다. 최소주의 철학은 복잡성이 지배하는 예측 불허의 현대적 풍경을 역행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최소주의를 추종하는 학자 그룹의 계보는 매우 길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줄이는 것이 더하는 것’(Less is more)은 미니멀리즘 미학을 확정지은 모토로 굳었고, 미니멀리즘은 매체의 본질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격자무늬만 남겨, 1960년대를 대표하는 미학 운동으로 기록된다(주 Less is more의 원전은 로버트 브라우닝의 19세기 시구로 전한다). 2011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상이한 현상들을 단순하게 풀이할 때, 과학은 가장 아름답다”고 답했다. DNA 이중 나선 구조와 물리학의 기본 방정식들이 그가 든 예다.

더 멀리는 14세기 활약한 프란체스코 수도사 오캄이 있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 가능하다면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는 일명 ‘오캄의 면도날’은 진위 판단의 경제성을 반석에 올렸다. 그리고 수세기를 건너, 제품 본체에서 버튼을 최소화한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동시대 최소주의를 승계한다. 하지만 시제품이 발전을 거듭하면 복잡성의 함정에 빠지게 마련. 소비자의 다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불필요한 기능을 탑재한 웹 브라우저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가전제품은 한층 무거워졌다. 필요 이상의 욕망과 권력은 중량감을 반대급부로 돌려받는다. 미술의 특권은 재현이다. 재현 능력을 자진 반납하고 네모반듯한 정방형 구조물 혹은 줄무늬 평면으로 환원한 게 미니멀리즘이다. 요란한 재현이 실종된 예술품에선 어쩐지 침묵 수행하는 승려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기하학과 무정형으로 환원된 결과물에 미학적 공감을 느낀 그룹은 그저 문맥만으로 ‘추측하고 감미한 게 분명한’ 극소수 전문가다. 복잡한 문양으로 치장한 귀족 문화를 저속하다고 폄하한 미니멀리즘도 결국 현대화된 댄디즘이다.

1. 입력창만 달랑 걸린 구글 검색 사이트. 2. 프랭크 스텔라, <검은 회화2>, 1967년. 3. 한글 2.5의 단순한 화면, 1994년.

현대미술계 미니멀리즘이 극소수 전문가를 추앙그룹으로 이끈다면 동시대 시각예술 분야의 미니멀리즘은 다수의 iOS 생산자와 소비자 그룹이 승계한다. 최소주의 미학의 역설은 환영주의(illusionism)와 회화성(pictorialism)을 표면에서 추방한 60년대 미니멀리즘이 미학 권력에선 최대치 수혜를 누렸다는 점과 2000년대 후발주자 격인 애플이 미니멀리즘 조각을 닮은 맥북 에어와 아이폰을 통해 극대화된 환영과 회화성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입력은 단순하게 출력은 복잡하게! 미니멀리즘 미술의 몰락은 엘리트주의의 자기 고립으로 설명될 테고, 단순한 애플이 재현하는 복잡한 환영성은 상품 미학이 의존하는 대중 시장의 딜레마로 풀이될 것이다. 그렇지만 60년대 미니멀리즘처럼 전망이 어둡진 않아 보인다. 선대 미니멀리즘이 소수를 위한 ‘관상용’으로 출연한 반면, 후대 미니멀리즘의 용도는 우연히도 ‘의사소통 도구’여서다. 견제에 투명하게 열린 장치는 손쉽게 붕괴되지 않는다. 결과야 두고 볼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