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전시
[전시] 촌철살인의 드로잉
장영엽 2011-10-27

<댄 퍼잡스키 개인전: News after the News>

일정: 12월4일까지 장소: 토탈미술관 문의: 02-379-3994

‘쥐벽서’라는 사건이 있었다. G20 정상회담 포스터의 청사초롱 그림 위에 쥐를 그려넣은 남자가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일이다. 재밌는 점은 비슷한 일을 본업으로 삼은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작가가 그 사건으로 거액의 돈을 벌었다는 거다. 그 작가의 이름은 뱅크시였고, 그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은 대영박물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안젤리나 졸리…. 이 정도면 더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왜 ‘뱅크시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은 벌금을 물고, 뱅크시 자신은 영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잘 먹고 잘 사는지 불만을 제기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창조력과 상상력, 인재가 필요하다며 말로만 외치기 전에 어쩌면 발칙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새로움’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드로잉 작가 댄 퍼잡스키는 ‘사회적 의식의 변화가 천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명제의 살아있는 사례다. 그는 루마니아 출신의 아티스트다. 문화에 대한 유연성에 척도를 매긴다면 공산주의 국가 시대의 루마니아는 영국, 한국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국가였다. 그런 공산주의 치하 시절 퍼잡스키가 그린 그림은? 바로 정물화였다. 퍼잡스키가 세계적인 예술가로 부상하기 시작한 건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부터였다. 정권이 바뀌자 그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예술을 시작한다. 단조로운 그림과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된 그의 드로잉은, 쉽게 읽히지만 동시에 많은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촌철살인의 예술’이라고 할까. 그런 퍼잡스키의 드로잉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이후 테이트 모던, MoMA 등의 미술관에 소개됐다.

<The News after the News>는 댄 퍼잡스키의 첫 한국 개인전이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 전시를 열 때마다 그 공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을 함께 소개하곤 하는데, 한국사회를 관찰한 드로잉이 재미있다. 저마다 휴대폰에 열중하는 사람들,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 똑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패와 피켓을 들고 대치하는 전경과 시위대, 사람과 간판이 구분되지 않는 금요일 저녁 홍대의 모습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일 텐데도 마치 몇년 살아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한국사회를 포착해냈다는 점에서 퍼잡스키의 통찰력을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