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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의 가상인터뷰] 쉿, 가난뱅이 생활백서
주성철 2011-11-16

<티끌 모아 로맨스> 천지웅

-저기, 안녕하세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사실 화장지 1칸만 끊으려고 한 건데 이게 통째로 나와서요. 아니 슬쩍 잡아당겼을 뿐인데 이게 왜 통째로 나오지? 이거 고장났나? 정말 화장지 가져갈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왜 그렇게 깜짝 놀라시는지. 저는 오늘 뵙기로 했던 월간 <거지의 왕> 기자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천지웅씨를 올해를 빛낸 창조적 짠돌이 30인 중 1명으로 선정해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렇게 화장실에서 갑자기 아는 척하시면 어떡해요. 전 여기 카페 직원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오랜만에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가 걸려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 이거 하나로 최소 두달은 쓴다고요.

-역시 저희가 당신을 선정한 보람이 있군요. 두루마리 화장지 3칸이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가능하다는 얘기가 거짓만은 아니었네요. =그나저나 어차피 인터뷰하면서 커피 사주실 거면 카라멜 어쩌고 사주셨다고 치고 그냥 저한테 현금으로 5천원 주시면 안되나요? 전 물 마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하철 티켓값 아끼려고 합정동 집에서 여기 압구정까지 걸어오느라 오늘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왔어요.

-그렇게나 일찍요? 그러신 것 치고는 오늘 좀 늦으셨는데…. =아 한강 공원 따라서 압구정으로 오는데 빈 병이랑 캔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큰 가방 가지고 온 보람이 있네요. 제가 아무리 짠돌이라도 약속시간에 늦거나 하는 일은 없는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여자친구는 있으시죠? 아무래도 데이트 비용이 만만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아예 동거를 하고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굳이 카페를 갈 필요도 없고 식사 때 메뉴 고민을 할 일도 없죠. 우리는 늘 한몸으로 움직입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여자친구는 저보다 더 짠순이랍니다. 며칠 전에는 제 지갑에 있는 돈을 훔치다가 들킨 적도 있어요. 제가 가져온 빈 병을 슬쩍 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수거한 빈 병이나 폐지가 얼마 정도인지 늘 메모를 해두죠.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방에 CCTV까지 설치했어요.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잘살아야죠 뭐.

-혹시 그 사실을 여자친구도 알고 있나요? =말씀드렸다시피 제 여자친구는 저보다 더 짠순이랍니다. 얼마 전에 보니 냉장고에 전기 충격기를 설치했더라고요. 자기 반찬에 손대면 저 바로 기절이에요. 이거 무슨 고시원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원.

-정말이지 88만원 세대의 고통이 온몸으로 느껴지는군요. 인터뷰 끝나고 제가 저녁밥도 사드리겠습니다. 고기든 뭐든 마음껏 드세요. =그럼 이왕이면 뷔페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은 봉지 하나 들고 뷔페 한번 갔다오면 저 거뜬히 겨울을 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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