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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위기에서 부활로

아르헨티나 영화계의 새로운 재능- 파블로 지오르젤리, 가스통 솔니츠키

파블로 지오르젤리의 <아카시아>.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한 나라가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이할 때 그 시기를 전후해 자국영화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1990년대 후반의 한국영화가 그러했고, 최근의 그리스영화가 그러하며, 특히 아르헨티나영화는 2001년 경제위기를 전후해 파블로 트라페로의 비범한 데뷔작 <크레인 월드>(1999)를 기폭제로 (안타깝게도 두편의 장편만 남기고 요절한) 파비안 비엘린스키나 다니엘 부르만 같은 상업영화 감독은 물론이고 리산드로 알론소와 루크레시아 마르텔 등 뛰어난 독립영화 감독들을 배출해내며 국제적인 주목을 얻었다. 여기에 좀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작업해온 마리아노 이나스, 알레호 모길란스키, 마티아스 피녜이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시나리오를 쓴 기상천외한 정치SF <인베이전>(우고 산티아고, 1969)은 이 그룹의 영감의 원천이 된 영화로, 최근 복원되어 올해 토론토와 뉴욕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바 있다- 까지 더하면 21세기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그야말로 다양한 수준에서 두터운 감독군(群)을 형성해왔다 하겠다.

그리고 올해,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아르헨티나 영화계에서 다시금 몇몇 새로운 재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로드리고 모레노의 (단독으로 연출한 것만 고려하면) 두 번째 장편 <신비한 세계>는 미학적 허세로 가득한 공허한 영화로 올해 베를린 라인업에 예의 악명을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독립영화제(BAFICI)는 산티아고 미트레의 <스튜던트>와 에르메스 파랄루엘로의 <야타스토> 등 주목할 만한 데뷔작을 발굴해냈고, 이들은 이후 각국 영화제에 초청되어 평단의 찬사를 끌어내는 한편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칸영화제에서는 그간 다큐멘터리스트로 활동해온 파블로 지오르젤리의 극영화 데뷔작 <아카시아>가 최고의 데뷔작에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고,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밀라그로스 무멘탈러의 장편 데뷔작 <문과 창을 열어라>가 황금표범상(대상)을 수상했다. 거리두기와 감정이입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의 모범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유대계 이민자 가족 4대의 삶을 담아낸 가스통 솔니츠키의 두 번째 장편 <파피로센>도 주목할 만하다.

이상 언급한 신진들의 작품이 트라페로, 알론소 그리고 마르텔의 데뷔작만큼 신선한 영화적 충격을 주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아르헨티나영화가 답사해온 미학적 영역의 가장자리에서 가능한 출구를 발견하려는 노력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예컨대 트라페로의 <사자굴>(2008)과 <카란초>(2010)의 각본을 썼던 미트레는 <스튜던트>에서 그의 친구들인 모길란스키나 피녜이로의 지적이고 유희적인 스타일과 트라페로의 드라마를 결합함으로써 (꽤 과장된 감은 있지만) “남미의 아론 소킨”(<소셜 네트워크>의 각본가)이라는 찬사까지 얻어냈다. 지오르젤리의 <아카시아>는 언뜻 알론소의 <자유>(2001)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이제는 남미영화의 한 경향이 된 고독의 미니멀리즘적 묘사에 침잠하기보다는 키아로스타미풍의 로드무비를 거쳐 러브스토리로의 길을 열어놓는 것으로 끝난다. 무멘탈러의 <문과 창을 열어라>는 마르텔의 <>(2001)을 좀더 접근하기 쉬운 형식으로 풀어놓은 영화처럼 보인다. 21세기 두 번째 10년으로 접어든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지난 10년을 이끌어온 이들과 이 새로운 감독들이 감행할 시도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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