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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현대의 신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누아르적 비전 <드라이브>에 감탄하는 이유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드라이브>가 처음 소개됐을 때 몇몇 태작으로 인해 시무룩했던 경쟁부문의 난조를 일거에 뒤집는 발견이라며 서구의 비평가들이 열광한 것은 거기서 장 피에르 멜빌의 재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범죄 장르를 번안하는 유럽식 전통에 근접한 사색적인 스타일의 액션영화인데다, 과묵하고 금욕적인 생활 패턴을 고수하는 주인공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 캐릭터로부터 멜빌의 <사무라이>의 우수어린 킬러 제프(알랭 들롱) 이미지가 오버랩된 것이다. 반면 몇몇 비평가들은 ‘껍데기뿐인 영화적 허세’라며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자기과시적인 스타일을 평가절하하기도 했는데, 열광이든 냉대든 이 날렵한 범죄 스토리에 스며 있는 음울한 무드와 시각적 현란함, 특히 빈발하는 클로즈업과 기기묘묘한 카메라 앵글, 오차가 없이 계산된 완벽한 프레이밍, 빛과 그림자를 정확한 비율로 배합해낸 누아르의 비전은 경탄할 만하다.

신화의 원형에 기댄 이야기

<드라이브>는 복잡하고 모순된 요소들의 충돌을 제시하는 예술의 변증법적 원리에 충실한 영화이다. 예술과 오락의 합일을 추구하려는 연출의 작의도 그러하거니와 영화의 어휘들을 정통하게 다루는 숙련공의 손길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일례로 감옥에서 출소한 이웃집 여인 아이린(캐리 멀리건)의 남편 스탠다드(오스카 아이작)를 완악한 갱단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전당포 털이에 가담하는 시퀀스에서 레픈은 드라이버가 가죽 장갑 낀 손을 오므릴 때 나는 극미한 사운드만으로 날선 긴장과 초조를 연출하고 있다. ‘순수영화’의 한 순간을 목격하는 것 같은 이런 장면들이 곳곳에 넘치는 이 영화를 <> 시리즈가 정초한 액션 미학이나 마이클 만의 도시 비주얼 탐구에 견준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서사적으로 간결하며 시각적으로 풍성한 영화의 스타일을 논하자면 거의 모든 장면을 거론해야 할 판이지만 내가 <드라이브>에서 느꼈던 진짜 감흥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 범죄 누아르의 패턴을 답습하는 장르적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브>는 폭발적이고 낯선 힘을 내뿜는다. 흔히 접하게 되는,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대강 보이는 이야기 또는 모던 누아르의 차가운 감상주의를 재탕한 장르영화처럼 보이던 영화가 중반 이후 표변하는 캐릭터의 진화와 비주얼의 모험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비상하는 것이다. 강탈영화로 출발해 감상적인 멜로드라마를 경유하여 참담스런 복수극으로 귀결되는 장르의 트랙을 질주하면서 숙고할 만한 이슈는 신화적 서사로서 그 의미이다. 레픈이 <드라이브>에서 그려내는 것은 범죄 누아르의 외피를 두른 현대의 신화이며, 숨겨진 내면으로부터 참존재를 발견하는 영웅 탄생기이다. 유럽의 비평가들이 보인 호의와 달리 나는 이 영화가 범죄 장르에 대한 유럽적 수용으로서 받아들여지기보다 신화의 원형(심지어 그것은 미국적 신화이다!)에 기댄 이야기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맨티시즘과 폭력이 극단의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지만 <드라이브>의 실질은 교차하는 장르의 장애물 코스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면서 ‘영웅 신화’라는 결승선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비열한 범죄와 한갓진 일상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현대 LA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영웅 탄생의 신화로서 <드라이브>는 더없이 흥미로운 지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화적 영웅의 자아발견’이라는 관점으로 그것을 읽을 때, 정교하게 여러 겹을 이루는 <드라이브>의 내적 구조는 정체를 드러낸다. 신화적 색채는 인물, 특별히 어느 누구와도 달리 묘사되는 주인공 ‘드라이버’에게 씌워져 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드라이버는 신화의 주인공에 합당하다. 그는 이름이 없다. “5~6년 전 어느 날 카센터로 걸어들어와 갑자기 직원으로 써달라고 했다”는 카센터 사장 섀넌(브라이언 크랜스톤)의 말처럼 드라이버는 신분과 전력(前歷)이 누락된, 마치 5~6년 전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져 그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인물처럼 묘사된다. 무심한 관찰자의 조그만 관심으로도 포착할 수 있는 개인적 이력조차 전무한 피상적인 성격화를 통해 드라이버는 본성상 신화에 가까운 인물이 된다. 신화적 서사의 피조물로서 익명성 또는 무역사성이라는 특성은 그가 ‘생성의 과정에 있는 히어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이버는 이야기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영웅 신화의 패턴, 특히 외부 환경의 강제에 의해 자신의 영웅성을 발견하는 인간이라는 설정을 따른다. 드라이버는 아이린과 그녀의 아들 베니치오를 보호하고 훈육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잠복된 영웅성을 발견한다. 냉혈한 갱 보스 버니(앨버트 브룩스)와 니노(론 펄먼), 이름없는 청부살인자들을 제거해나가면서 그는 극단적으로 자제해왔던 본성을 드러내며 신화적 인물로 변모해간다. 한편으로 그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을 표상하는데, 영화에서 드라이버는 실재하는 인물이지만 아이린의 욕구가 투사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린에게 드라이버는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하며, 일상적 삶의 공허와 권태를 일소할 낭만적 로맨스의 대상이자 궁극적으로 남편의 출소로 말미암아 닥친 가족의 위기를 막아줄 방패막이다. 드라이버에게는 이처럼 실재와 욕망 내지는 꿈의 투사로 볼 수 있는 설정이 두서없이 섞여 있다. 이 이야기의 본질이 신화적 시스템 안에서 구축되었고 그것을 유니크한 영웅 창조 판타지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기술한 드라이버의 존재론적인 불투명성은 코믹스나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슈퍼히어로들이 공유하는 특징이다. 코믹스의 단골 주인공처럼 드라이버는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들이 호기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연정을 품은 여인 아이린이나 5~6년 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섀넌에게도 그는 불가사의하다. 인위적이고 도시적인 반복 패턴의 삶을 살았음직한 드라이버는 하나의 계기에 의해 폭발적인 변태의 과정을 거친다. 누아르적인 인물로 단정하기에 주저되는 측면이 여기에 있는데, 이것은 외로운 늑대와 같은 프로페셔널 킬러의 존재론에 강박된 멜빌의 세계와는 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알랭 들롱의 제프는 인간적인 접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성형’의 살인 기계이다. 그에 반해 라이언 고슬링의 드라이버는 범죄 세계의 짐승들로부터 모자를 구해내야 하는 태형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아를 발견해나가는 ‘형성기’의 인물에 가깝다.

인간과 초인의 경계에 선 존재

필름 누아르적인 히어로라기보다 오로지 텍스트 안에서만 유의미한 신화적 원형에 가깝다는 점에서 드라이버는 차라리 세상 곳곳을 굽이쳐 표랑하는 서부극의 총잡이를 연상케 한다. 외부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곤경에 처한 모자(母子)를 수호한다는 것이나, 묵묵히 역할을 마친 뒤 표표히 그들 곁을 떠나는 결말에서는 저 유명한 <셰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페일 라이더>가 겹쳐진다. 차이가 있다면 드라이버는 말 대신 자동차를 몬다는 것 정도이다. 때로는 거대한 악을 응징하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때로는 이쑤시개를 질겅이는 오우삼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종내에는 서부극의 단독자로 모습을 바꾸면서 드라이버는 고금의 영웅들이 공유한 신화적 풍모를 현대 LA로 옮겨 한 인물에게 응축시켰을 때의 원초적이고 낯선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신화적 세계의 히어로에게 중요한 또 다른 특성은 그가 인간과 초인 사이의 경계에 선 존재, 요컨대 인간에 가까운 내면과 초인에 가까운 외재적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이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따위의 슈퍼히어로들이 인간과 초인의 역할을 오가며 정체성의 멸실을 경험하는 영화들에서도 은연중 확인되는 바이다. 경계인으로서 히어로에게 나타나는 징후는 그 자신에게 내재한 ‘타자성’의 발견 또는 그것에 융해됨으로써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드라이버는 아이린의 가족과 얽히면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내면의 타자를 발견한다. 낮에는 카센터 직원과 스턴트 대역 연기자로, 밤에는 범죄 세계의 일원으로 정체성을 바꾸는 그는 낮의 세계에도 밤의 세계에도 속하지 않는다. 두개의 세계 사이에 붙잡힌 정처없는 드라이버의 행로는 극단을 오가며 상호모순적인 기질을 가로지르는 모습으로 체현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꼽을 엘리베이터신은 로맨틱한 사랑과 질풍 같은 폭력을 교차시키면서 이러한 특성을 인상적으로 예증하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린에게 키스를 한 직후 드라이버는 동승한 청부살인자의 얼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긴다. 하나의 영웅에게 바라는 두 갈래 욕망(가공할 전투력과 달콤한 로맨스)의 투사를 선명하게 대조시키는 이 신은 영화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해도 좋다.

<드라이버>에서는 이처럼 캐릭터의 특성뿐 아니라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충돌하는 레이싱카처럼 부딪힌다. 기민하게 멈춤과 달리기를 반복하는 추격 장면으로 열리는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빠르게 달려가는 것처럼만 보이지만 어느 장면에서는 한없이 느리다. 암흑 세계의 치졸한 배신을 그린 범죄 스토리와 감성적인 로맨스의 하위 플롯이 교차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장면으로의 비약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신들은 놀랍도록 완만한 디졸브(봉준호의 <마더>에서 보았던 디졸브에 버금가는 장면이 있다)에 의해 부드럽게 연결되기도 한다. 비주얼 스타일 역시 몽타주적인 충돌을 극대화한다. 많은 추격 시퀀스들에서 조명은 강한 빛과 둔탁한 그림자를 날카롭게 맞서게 하는 선명한 대조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안 장면에서 드라이버의 얼굴은 빛과 어둠으로 거의 반분되다시피 하면서 두 가지 모순되는 존재가 충돌하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형상화한다. 와이드 스크린 장면 연출에 있어서 하나의 범례가 될 수 있을 만한 정확한 프레이밍, 마주보는 두 사람의 대화 장면마다 어김없이 거울 효과를 만들어내는 강박적인 대칭구도 역시 극단으로 대립하는 상이한 두 가지 질의 충돌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호응하는 형식임은 물론이다.

무(無) 존재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드라이버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관계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전환된다. 전반부까지 평화로운 동반자 관계로 보였던 이들이 서로 으르렁대며 잔인한 학살극이 전개된다. 드라이버의 재정적 후원자로 등장했던 버니와 드라이버, 스쳐가는 관계로 처리된 니노와 드라이버, 오랜 친구 관계로 묘사되는 버니와 섀넌에게 닥친 관계의 종말. 관계의 전환은 드라이버가 자신의 영웅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드라이버는 그 단어의 본래 뜻대로 오직 운전에만 관심을 둔 인물이다. 그는 주변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일만 수행하는데, 유일하게 그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하는 일이란 차를 모는 행위뿐이다. 카센터 수리공, 자동차 스턴트 대역 배우, 강탈 범죄의 운전사, 어느 것이든 그의 임무는 ‘드라이버’이다. 따라서 드라이버가 차를 모는 장면은 모두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레픈은 LA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레이싱 트랙의 형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LA의 야경과 도로를 촬영한 공중숏, 그래픽한 이미지의 도로들, 심지어 정갈하게 구획된 마트의 좁다란 통로를 드라이버가 걸을 때조차 카메라는 레이싱 트랙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자동차의 비전을 재현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드라이버가 아이린과 베니치오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집까지 에스코트하는 장면이다. 잔학한 폭력을 극단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면들이 즐비한 영화에서 이 시퀀스는 가장 화사하고 평화로운 시간에 해당한다. 드라이버가 모는 차는 도로에서 내려 우회하더니 강의 콘크리트 둑 아래를 달린다. 좁은 수로와 잘 포장된 협곡을 담아내면서 카메라는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강변을 레이싱 트랙으로 변형시키는 마술을 부린다.

필름 누아르의 장르적 본성이 스타일을 위해 내용을 희생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해도 <드라이브>는 단조로운 드라마를 보완하는 이같은 장치들로 텍스트의 풍부함을 성취하고 있다. 존재의 심연을 열고 신화적 세계의 주인공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영웅의 탄생은 ‘진짜 인간이자 진정한 영웅’(A Real Human Being and a Real Hero)을 찬미하는 노래 <A Real Hero>가 흐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강조된다. 혼자 있음과 갇혀 있음으로 인해 형성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서투른 불안을 표현하는 드라이버는 노랫말처럼 진짜 영웅(a real hero)이 된다. 숫기 없는 소년성 뒤에 야수의 기질을 감추고 화를 억눌러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분출하는 폭력성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학적이다. 영화의 제반 요소들이 미래에 닥칠 파국의 여파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비된 것처럼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성의 영웅들 가운데 드라이버와 가장 근사치에 있는 것은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이다.

영웅의 탄생과 관련하여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는 장면 하나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다. 전당포 털이 과정에서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도록 교사한 니노를 찾아 처단하는 시퀀스에서 드라이버는 자신이 스턴트 대역 연기에서 사용했던 가면을 쓰고 복수에 나선다. 물이 흐르듯 유려하고 평온한 노래를 배음으로 깔고 시작하는 이 시퀀스에서 드라이버의 모든 행위는 제의(祭儀)적이다. 슈퍼히어로의 제복과 같은 전갈이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니노의 차를 충격하여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함으로써 드라이버는 스턴트맨으로 참여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연한다. 자아의 아이덴티티가 없는 ‘무(無) 존재’를 형상화하는 이 시퀀스에서 우리는 장르영화에서 클리셰화된, 본체를 숨긴 히어로의 현현을 목격할 수 있다. 자신이 찍은 영화에서 그는 영웅의 대리자이지만 현실에서 그는 진짜 영웅이 되어 유보되었던 자아를 보상받는다. 라텍스 가면을 뒤집어쓰고 니노의 면전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무감각하게 악한의 명줄을 끊는 드라이버의 도상(icon)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현대의 신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순간 드라이버는 무 존재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그 자신을 변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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