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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봉작을 만나는 환희

씨네큐브 개관 11주년 기념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마이 백 페이지>

씨네큐브에서 개관 11주년을 맞아 12월1일부터 7일까지 ‘2011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을 연다. 상영작은 올 칸영화제 화제작 다수를 포함한 미개봉작 15편이다. 그중 섣불리 순위를 매기기가 망설여지는 여덟 작품을 소개한다.

우선 거장들의 신작이 유혹적이다. <자전거 탄 소년>은 다르덴 형제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례적으로 밝은 영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던 시릴은 그에게 무한한 이타심을 베푸는 사만다를 만나 생을 감내하는 법을 배운다. 복수의 돌을 맞고 쓰러졌던 시릴이 한참 만에 깨어나 자전거를 타고 길목을 스윽 돌아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종교적 뉘앙스로 충만한 성장담이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시대성 짙은 은유법을 직유법으로 고쳐 쓴 듯한 <마이 백 페이지>는 일본 전공투 세대에 대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쯤 되는 회고록이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전작들에서와 달리 풋내기 기자 사와다를 내세워 곧장 1960년대의 풍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정체불명의 과격파 리더에 홀려 무고한 죽음의 증인이 되고 만 사와다의 눈물마저 비정하다.

<케빈에 대하여>

신예들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의 재능 넘치는 신인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는 <아버지를 위한 노래>에서 로드무비 형식을 빌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동시에 죄의식에 짓눌린 영혼을 어루만진다. 은퇴한 록스타 샤이엔은 마치 속죄의식이라도 치르는 양 30년간 외면했던 죽은 유대인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국에 숨어 사는 나치대원을 찾아 나서는데, 그를 보노라면 여기가 천국이자 지옥이다. <엘리펀트>의 도메스틱 버전이라 할 만한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느슨한 플래시백보다 모자의 관계가 흥미를 끈다. 이해와 설명을 거부하는 절대 악이 당신 아들이라면 어떻겠는가. 살인마를 낳아 길렀다는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에바는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피로 얼룩진 기억을 씻어내려 애쓴다. 피골이 상접한 틸다 스윈튼이 <아이 엠 러브>에 이어 또 한번 감옥이 된 집에 갇힌 어머니를 연기한다.

배우가 주인인 영화들도 눈에 띈다. 감독으로 거듭난 패디 콘시딘의 장편 데뷔작 <디어 한나>는 신의 은총이 닿지 않는 무자비한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다. 분노를 못 이기고 우발적으로 자신의 개를 죽이고 만 조세프는 기독교 봉사단의 일원인 한나에게서 구원을 얻으려 하지만 그녀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현세의 폭력에 내세를 위한 종교가 얼마나 무용한지 새삼 일깨우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세 번째 사랑> 역시 폴 지아마티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결혼식에서 세 번째 아내 미리엄을 만나 첫눈에 반하는 바니의 사랑은 담배로 시작해 담배로 끝난다. ‘바니의 판본’이란 원제에 걸맞게 방탕하고도 지고지순했던 한 사내의 일대기를 주관적 시점에서 연애사건 중심으로 훑어내린 영화다. 로맨스보다 생활의 피로와 늙은 육신에 대한 설움이 깊어지는 후반부에 멜로 본색을 드러내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메리와 맥스>

그 밖에 애니메이션도 놓치기 아깝다. 음악애호가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의 <치코와 리타>는 쿠바산 리듬으로 입체감을 불어넣은 2D애니메이션이다. 피아니스트 치코는 보컬리스트 리타와의 만남과 이별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보며 회한의 술잔을 들이켜는데, 지나간 사랑이 보사노바, 차차차, 삼바를 타고 흐른다. 간간이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빈센트 미넬리식으로 그려낸 장면이 섞여 있다. 호주에서 날아온 클레이메이션 <메리와 맥스>는 회색빛의 애늙은이 영화다. 멜버른 교외에서 알코올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 메리와 뉴욕 한복판에서 비만한 몸을 이끌고 외롭게 늙어가는 맥스는 편지로 우정을 나누며 20년 세월을 버틴다. 그들이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심심한 위로를 주고받는 가운데 갖가지 사회적 이슈를 경솔치 않은 태도로 버무려냈다.

저무는 해를 보내고 밝아오는 해를 맞이할 때다. 미리 도착한 영화들 사이를 거닐며 인생의 가치 혹은 무가치를 곱씹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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