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상상력, 그 한계를 넘다
송경원 2011-11-30

2011 최강애니전, 11월30일부터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전세계 최강 애니메이션이 한자리에 모인다. 침체되어 있던 한국 애니메이션이 올해 부흥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애니메이션의 다양성과 저변을 넓히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선봉장 역할을 도맡았던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올해도 전세계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수상작을 초청 상영하는 ‘최강애니전’을 개최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2011 최강애니전은 ‘나는 최강 애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 4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를 대상으로 하던 것에서 나아가 올해는 10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까지 저변을 확장했다.

총 32개국 장·단편 128편이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는 양적인 측면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질적 향상도 함께 도모한다. 비단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만이 아니라 남미의 작은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찾아온 작품처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을 전세계 숨겨진 보석 같은 애니메이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누쿠필름의 아버지이자 인형애니메이션의 거장 라오 하이드메츠를 비롯해, 영국 감독 토머스 힉스, 아시아 청소년애니메이션&코믹콘테스트 위원장 왕류이가 방한하여 관객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애니충격전’만의 전통이자 특징인 감독 인터뷰를 빼놓을 수 없다. 비주얼 중심의 단편애니메이션이 다수이다 보니 영상을 통한 의미 전달이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를 보완하고자 수상작 사이사이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같은 해설은 단지 참조사항일 뿐이지만 생소한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세심한 배려야말로 ‘최강애니전’을 이끌어가는 힘이자 매력이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없다. 낯설어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한자리에 모인 세계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만 가져오시라. 11월30일부터 닷새간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 서울애니시네마에서 다채로운 애니메이션의 향연이 당신을 기다린다.

최강 패밀리: <픽셀의 세계> Pixels

2010년│2분35초│프랑스│패트릭 장 오늘날 비주얼 실험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임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흔히 실사영화라 불리는 라이브 액션 시네마조차 CG 없이는 존재하기 힘들다. 2011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 그랑프리에 빛나는 <픽셀의 세계>는 정교한 CG가 현실과 영상의 경계를 허무는 지금 8비트 픽셀의 습격을 흥미로운 영상으로 선보인다. <테트리스> <팩맨> <갤러그> <벽돌깨기> <동키콩> 등 추억의 비디오 게임 속 8비트 세계가 어떻게 현실을 뒤덮는가를 보여주는 이 창의적인 작품은 이미 인터넷에서 하루 1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모았다. 패트릭 장 감독의 전복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가운데 애니메이션의 매력과 가능성을 십분 담아낸다.

최강 패밀리: <루미나리> Luminaris

2011년│6분10초│아르헨티나│후안 파블로 자라멜라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생명의 숨결 혹은 움직임의 환상)인 이유. 단지 사진과 그림의 차이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구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루미나리>는 ‘움직임으로서의 환상과 경이’를 간직한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전구 공장에 일하는 한 남자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꿈이 있다. 회사에서 매일 조금씩 재료를 몰래 가져와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남자는 계획을 이루기 전에 그만 들켜서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결국 꿈과 환상과 사랑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초기 영화의 개념마저 포괄하는 움직임의 마법과 아름다운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 2011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단편부문 국제비평가협회상(FIPRESCI상)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최강 임팩트: <폴로가 만든 로봇> Polo’s Robot

2010년│9분10초│오스트레일리아│피터 로위 묵시록적 메시지를 담은 우울한 감성동화. 폴로는 외부와 격리된 채 발명에만 몰두하며 살아간다. 작은 새 한 마리만이 유일한 친구인 그는 어느 날 작고 귀여운 로봇 하나를 만들고 그날부터 파국이 시작된다. 그는 모든 것을 삼켜서 작게 만들 수 있는 로봇을 걱정하여 묶어두지만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만다. 호주에서 날아온 이 차분하고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 동화의 감성을 유지한 채 확장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까지 나아가 있다. 암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한 2D 특유의 감수성만큼 눈에 띄는 건 바로 그 문제적 메시지다. 2011 멜버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최강 임팩트: <우리 강아지 튤립> My Dog Tulip

2009년│1시간22분│미국│폴 피어링어 2011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그랑프리는 한편의 가슴 따뜻한 애니메이션에 돌아갔다. J. R. 애컬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리 강아지 튤립>은 인류 최고의 친구인 개와 사람의 교감에 관한 영화다. 부부이자 공동연출자인 폴 피어링어와 산드라 피어링어 감독은 어설픈 의인화 대신 한 늙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개의 본성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연필, 잉크,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그림체에 속도나 현란함도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야기와 잘 어울리며 울림을 증폭시킨다. 상업애니메이션의 표준적인 그림체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비틀리고 불안정한 선들은 역설적이게도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3년의 시간 동안 직접 손으로 그린 5만8천장의 드로잉이 프레임마다 깃들어 풍요로운 감성을 자아낸다.

라오 하이드메츠 특별전: <커밍 오브 오라클> Coming of Oracle

2011년│13분│에스토니아│라오 하이드메츠 인형애니메이션의 대가 라오 하이드메츠 감독의 최신작. 2011 최강애니전에서 세계 최초로 상영된다. 허리케인에 휩쓸려 가죽이 벗겨진 채 지내는 것이 당연한 지옥(혹은 천국)에 떨어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상상의 극단을 직접 이미지화한다. 인형이기에 가능한 특별한 질감과 표현력으로 기존 애니메이션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선사하는 한편 기발한 결말로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도 준비되어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최강 마니아: <막시> MOXIE

2011년│5분15초│영국│스티븐 어윈 2011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독립단편 부문 그랑프리 수상작. 파격과 실험정신에 가치를 둔 오타와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이다. 아기 곰의 시체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사들을 보여주며 출발하는 이 영화는 영국 특유의 냉소적인 감성을 담아낸다. 불장난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기 곰 막시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러티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친 질감의 흑백 영상과 과격한 대사들은 자기 파괴와 외로움에 대한 감흥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미지의 자유연상에 대한 가능성과 독립영화 특유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작품.

최강 마니아: <증오의 말로> Paths of Hate

2010년│10분│폴란드│다미안 네노프 성인의, 성인을 위한, 성인에 의한 섹션의 작품답게 다소 강하고 자극적인 영상과 묵직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 첫 영화 <The Aim>(2005)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다이만 네노프 감독은 아이러니하고 짧은 상황 속에서 인간 내면의 단면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다. 두 전투기 조종사의 도그 파이트(Dogfight)를 그린 이 작품은 전투기 연료가 떨어져버린 순간마저 서로를 걷잡을 수 없이 증오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조종사들의 목적없는 분노를 포착했다. 속도감 넘치는 전투기전의 화려한 영상은 물론 후반부에 직접적으로 묘사된 인간의 악마성이 던져주는 충격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파괴적 영상의 진수를 선보인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