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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우습지 않은 웃음의 길이, tvN <코미디 빅리그>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분명히 느낀 것 중 하나는, 노래 못하는 가수도 연기 못하는 배우도 스타가 될 수 있지만 개그 못하는 개그맨은 스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뻐서 연기를 시작할 수도, 예뻐서 노래를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쁘다고 웃기는 걸 시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코너를 대박 내고, 유행어를 띄우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개그맨들은 그 분야의 진짜 실력자들이다. 그들에겐 정말 재능이 있고, 그들은 죽도록 노력한다.

비범한 연기력으로 인기 코너 여럿을 탄생시켰던 한 개그우먼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무대에서 빵 터뜨리고 나면 내려오자마자 ‘다음주엔 뭘 하지…’ 하는 걱정부터 들어요. 녹화 끝나고 술 한잔하면서 오늘 무대 평가하고 서로 수고했다고 좋은 얘기 하다 ‘다음주 분장 뭐 할까?’ 하면 바로 정적이 흘러요.” 그리고 인터뷰의 말미에 그는 말했다. “술자리 같은 데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다른 여자들에겐 하지 못할 말 같은 걸 쉽게 할 때가 있어요. 대뜸 ‘웃겨보세요’라는 것뿐 아니라 외모 비하적인 말도 스스럼없이 하죠. 우리가 그렇게 우스운 존재는 아닌데.”

그렇게 말하던 순간에조차 호탕하게 웃던 그는 요즘 “할리라예~!”라는 고성과 함께 거대한 패딩점퍼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tvN <코미디 빅리그>의 ‘내겐 너무 벅찬 그녀’에서 ‘김꽃두레’를 연기하는 안영미의 포스는 무대에 실제로 있지도 않은 할리 데이비슨의 환영마저 느끼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불필요한 지방이라고는 한 점도 붙어 있지 않은 것처럼 스키니한 몸매에 코뚜레처럼 요란한 피어싱, 매직펜으로 마구 그려 넣은 문신을 하고는 눈을 희번덕이며 “가안디(간디), 완전 말랐어. 완전 섹시해. 간디 작살!”이니 “우리 집에 불났대요. 바퀴벌레 올 킬! 오 예!” 따위 ‘무식하고 무개념한 비행청소년의 전형’ 같은 대사를 웅얼대는 연기에서는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한껏 러블리하게 꾸몄지만 어딘가 촌스러운 스타일에 남의 말이라곤 한마디도 귀담아듣질 않는 블로거 ‘미소지나’ 김미려 역시 희대의 캐릭터다. 공개 오디션으로 맞선녀를 고르는 부잣집 못난이 도련님 ‘양세형 우쭈쭈 우쭈쭈’와 만나자마자 “우유를 선택한 당신, 모성애가 강하고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군요?”(미소지나의 혀 짧은 발음으로는 “우유들 떤땍한 당띤, 모덩애가 강아고 엄마들 그디워하고 있군뇨?”)라며 다 안다는 듯 흐흐대며 웃는 여자라니, 괴이하면서도 묘한 기시감이 느껴져 오싹할 정도다. 특히 요즘 제일 유행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슈슈케(<슈퍼스타 K3>)요, 슈슈케! 오.로.지. 슈슈케!” 라며 격하게 흥분하는 미소지나의 모습에서 잠시 흠칫했다. ‘슈슈케’ 열성 시청자인 나도, 혹시 저런가?

이토록 강렬한 캐릭터들의 등장을 포함해 <코미디 빅리그>가 흥미로운 것은 시즌 우승팀에 주어지는 1억원의 상금보다도 매회, 매 코너 점수를 매겨 하위권 코너들은 재방송에서 편집해버리는 시스템에 있다. 동료들의 녹화를 지켜보는 개그맨들의 모습, 매 순간 평가받는 무대 뒤의 치열한 고민이 프로그램 중간중간 비춰질 때마다 웃음 사이의 긴장감이 전해진다. ‘불만고발’이라는 새 코너로 5주 만에 처음 상위권에 오르던 날 눈물까지 흘렸던 개그우먼 이국주는 마지막 녹화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말했다. “(엉덩이로 양은냄비를 찌그러뜨렸을 때) 녹화 중에는 아픈 걸 알지도 못했다. 느꼈더라도 티를 내면 안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순간, 그 개그는 끝이기 때문에.” 우습지 않은 웃음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머니볼>의 명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이래서 개그맨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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