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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영화의 정신을 만나다
송경원 2011-12-07

12월9일부터 15일까지 필름포럼에서 ‘2011 스페인영화제’

<게르니카의 나무>

스페인영화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다. 독특한 색감, 성애에 대한 과감한 묘사, 논쟁적인 소재,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유머감각 등이 그것이다. 파격이라 불릴 만한 신선한 스타일을 연신 선보이는 스페인영화는 언제나 새로운 영상미학의 선두에 서 있었다. 오늘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같은 유명 감독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까지 그 저변에는 실험영화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애정과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동료 영화인들의 수많은 걸작이 자리한다.

오는 12월9일부터 15일까지 필름포럼에서는 다양한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스페인영화제가 열린다. 필름포럼과 한-스페인 문화교류센터 주최로 마련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전위와 실험정신의 화신이자 스페인영화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페르난도 아라발 특별전이 준비되었다. 12월10일 페르난도 아라발 감독의 방한에 맞춰 진행될 특별전에는 <죽음 만세>(1970), <난 미친 말처럼 걸을 것이다>(1972), <게르니카의 나무>(1975) 등 비교적 잘 알려진 대표작은 물론 2편의 다큐멘터리도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1932년 모로코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아라발은 영화감독, 제작자, 시인, 소설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분출한 인물이다. 극작가로 더욱 유명한 그는 잔인하고 외설적인 내용에 탐닉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단순한 사디즘이 아닌 유머와 몽상이 버무려진 전위 행위에 가깝다. 반파시스트이자 무신론자였던 그는 혼란과 무질서를 신봉하며 초현실주의적 예술을 여러 영역으로 확장하는 운동을 펼쳤는데 그의 첫 번째 영화로 잘 알려진 <죽음 만세>가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난 미친 말처럼 걸을 것이다>

<죽음 만세>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판도와 리스>(1968)보다 2년 뒤에 나왔지만 내용상 전작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편 모두 아라발 자신의 희곡과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인 만큼 주제면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다. 각본을 맡았던 <판도와 리스>와 마찬가지로 소년 판도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 만세>는 소년의 성장담에 첨예한 사회비판 요소를 뒤섞는다. 공산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던 아버지를 군부에 밀고해서 죽게 만든 자가 다름 아닌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판도는 충격에 빠진다. 이후 기억과 환각의 혼돈 속에서 특유의 성적 환상이 섞여 들면서 섹스, 폭력, 종교적 이미지들이 잔혹한 형태로 결합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포착된 충격적인 이미지들은 단순한 자극을 넘어 순수의 영역에 다다르고자 하고 이것이야말로 아라발이 극한까지 밀어붙인 초현실주의 경향에서 길어 올리고자 했던 순수예술의 한 지점이다. <나는 미친 말처럼 걸을 것이다> 역시 이와 같은 도발적 창조 행위의 연장선에 서 있다. 문명인 아덴과 자연인 마블의 교감과 동성애는 환상 위에서 교차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지닌 세속적 허위와 초월적 아름다움이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개봉 당시 상영금지는 물론 관객의 폭동마저 일으켰던 동성애, 신성모독 등의 스캔들은 외피일 뿐이다. 어쩌면 작품 속 과도한 묘사가 그리 파격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지금이야말로 이 영화들을 다시 살펴볼 적절한 때일지도 모른다.

그외에도 클래식 대표작으로 후안 안토니오 바르뎀 감독의 <사이클리스트의 죽음>(1955)과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벌집의 정령>(1973)은 물론 동시대 스페인영화를 대표하는 호세 루이스 게린 감독의 <실비아의 도시에서>(2007)와 에로티시즘 영화의 거장 비기스 루나 감독의 <내 이름은 후아니>(2006)도 함께 상영된다. 특히 올해 전주영화제에서도 소개된 <실비아의 도시에서>는 극영화, 다큐, 실험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린 감독이 <이니스프리> <그림자 열차> 이후 다시 개인적인 형식으로 복귀한 영화다. 스트라스부르의 다양한 젊은 여성들을 관찰하는 이 영화는 사소한 것을 통해 관객 스스로가 사유케 하는 힘이 있다. 쉽게 접할 수 없을 이색적인 시네아스트들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동시에 스페인 영화 정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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