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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다시,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 리모더니스트 영화

<In Passing>

지난 11월13일 뉴욕의 쿼드 시네마에서는 흥미로운 옴니버스영화 한편이 공개됐다. 제시 리처즈가 제작을 맡고, 7명의 감독이 연출한 <In Passing>이 그것. 일상생활이나 주변의 공간을 관조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이다. <In Passing>을 주목하는 이유는 제작을 맡은 제시 리처즈의 ‘리모더니스트 영화선언’을 구체화한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2008년 발표된 ‘리모더니스트 영화선언’은 모두 15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스터키즘(Stuckism)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1999년 빌리 차일디시와 찰스 톰슨의 주도 아래 시작된 스터키즘은 기본적으로 구상회화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이는 곧 미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리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2001년 스터키즘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제시 리처즈는 영화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닉 왓슨, 해리스 스미스 등과 ‘리모더니스트 영화’에 관한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초창기 그들은 주로 영화의 ‘주관성’에 관한 논의를 했다. 그들에게 주관성은 영화의 본질이고, 영화의 정신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영화미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정신성’을 구현해온 작품과 작가들을 새롭게 찾아내기 시작했다. 표현주의영화, 1950년대 일본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장 비고, 벨라 타르 등이 그들이 생각하는 영화의 본질을 가장 잘 구현한 작가라는 결론을 내렸다(제시 리처즈는 특히 ‘불완전함’에 대한 일본의 미적 관념 ‘와비 사비’(侘·寂)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즉 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새로움’을 의미하는데, 리모더니즘은 그 ‘새로움’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리모더니스트들은 그런 관점에서 위에 언급한 작가와 영화들을 재해석한다. 그들은 리모더니스트 영화를 정신적·주관적 영화이며, 삶과 자연의 소소한 순간에 가치를 부여하는 영화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곧 휴머니티이며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포맷은 슈퍼 8mm 영화라고 본다. 그래서 슈퍼 8mm 영화 제작집단인 ‘칠름 게릴라 시네마’(Chill’m Guerrilla Cinema) 그룹을 높이 평가한다. 리모더니스트 영화선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In Passing>은 이러한 리모더니스트 영화의 지향점에 동의하는 7명의 감독, 하이디 비버, 크리스토퍼 마이클 비어, 딘 카바나, 로이 레잘리, 루즈베 라쉬디, 피터 리날디, 케이트 슐츠가 모여서 만들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최소화하고(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기록해나간다. 그리고 <In Passing>의 제작사는 ‘시네마 파운데이션 인터내셔널’(CFI)이다. 올해 1월 설립된 CFI는 토비아스 엘리아 모건, 벨라 타르, 라브 디아즈, 제시 리처즈 등이 모여 만든 단체로, ‘인권’과 ‘새로운 영화언어 창조’를 목표로 설립되었다. ‘영화운동’과 ‘제작’을 겸하는 단체인 것이다. 영화운동 혹은 인권 차원의 사업으로 ‘#오큐파이 시네마’(#Occupy Cinema), ‘화이트 메도스 프로젝트’(The White Meadows Project) 등이 있다. #오큐파이 시네마는 미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화운동이다.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Vimeo)에 ‘월가를 점령하라’에 관련된 동영상을 올리거나, 거리에서 상영회 등을 연다.

제작은 현재 ‘오르톨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오르톨란 프로젝트는 인권을 주제로 한 장편영화 9편을 3년 내에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그리고 지난 11월13일 CFI가 동조하는 리모더니스트 영화운동 컨셉의 영화 <In Passing>을 제작, 발표했다. 제시 리처즈는 현재 토비아스 엘리아 모건에 이어 CFI의 대표를 맡고 있다.

리모더니스트 영화는 이제 새롭게 논의되기 시작한 영화미학이고, 또한 영화운동이다. 그리고 이를 주창하는 이들은 대안적 영화의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스토리’가 강조되고 ‘스토리’가 범람하는 시대에 영화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근원적 질문이 영화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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