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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멜로를 할 줄이야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1-12-13

김수현 감독 인터뷰

-두 번째 작품이 개봉으로 따지자면, 8년 만이다. =지난해에 제작했으니 제작 기준으로는 7년 만이더라. 그것도 부산영화제 때 인터뷰하면서 알았다. 그 시간이 의미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데 모두들 질문이 ‘그동안 뭐하셨어요?’더라. (웃음) 준비하던 작품이 제작사(튜브픽쳐스) 문제로 엎어졌고 개인적으로 볼 때 계속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을 뿐이다. 시나리오 과정부터 3년 걸렸다. <귀여워> 때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이번엔 시나리오도 드라마를 따라가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역시 시제가 너무 번잡했나보다. 기억이나 상상, 현재, 과거가 맞물려 있어서 역시 혼란을 준 것 같다.

-이번엔 어떤 반응이던가. =그동안 순해졌나보다. 지루하니까 순해졌다고 보나보다. (웃음)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다. 워낙 설정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막상 정사장면의 묘사가 주는 강도는 세지 않다. =프레임을 제한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김)효진이 본인도 영화를 보고 아쉬워했던 것 같다. 나중에 ‘좀 편하게 할걸’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더라. 여배우라는 것,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 같고, 이런 연기에 경험이 없어서 부담스러운 점도 있었을 거다.

-아버지와 세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한 여자와 달리 이번엔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점이다. =난 <귀여워>도 남자들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피해>는 여성의 거창한 문화, 여성성에 대한 도전이지만 이것 역시 전작에서 소재나 환경, 분위기를 달리해서 이어지는 형태였던 것 같다. 여성성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고, 또 도전일 수도 성찰일 수도 있다. 영화에 그런 점을 긍정적으로 담고 싶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 남겨진 것들에 관한 감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본격적인 멜로다. =사랑 이야기는 그동안 한번도 리스트에 올랐던 적이 없다. 멜로는 관심도 없고 해도 잘할 수 있는 소재나 주제는 아니었다. 동성애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경계 밖, 소외되고 터부시되는 대상. 그래서 멜로라고 하더라도 해볼 만한,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다.

-여성의 내면을 파고들어야 하는 점에선 불리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사항들이 고려됐을 텐데. =남성 감독이 여성 문제에 다가서려면 인터뷰나 조사 같은 게 충실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여성들의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다룬 영화들을 보니 갑갑한 면이 있더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억눌린 걸 담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더라. 그러느니 좀더 보편적으로 풀자 싶었다. 인권을 떠나 상반된 곳으로 가더라도, 나중에 욕을 먹더라도 내 수준에서 가자 그렇게 결정했다. 과감하게 취재했던 것들을 생략했다. 도망친 것 같은 생략이다.

-그 결과 성적소수자의 문제라기보단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에 가까워졌다. 장점일 수도 있지만, 굳이 퀴어물로 표현해야 했을까란 생각도 든다. =시나리오에 내가 모르는 게 많다. 머리로 써서 그런 것 같다. <귀여워>의 캐릭터나 정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내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에 비해서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 감성만 너무 앞세워서 나가면 자칫 오버될 수 있고 진부해질 수도 있어서 더 조심스럽게, 유약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시나리오 자체도 접근이 부족하지만, 시나리오에 쓰인 내용만큼도 접근하지 못할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건 여성간의 사랑이건 꼭 내가 경험을 하고, 그런 가운데서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는 입장 같은 것들이 그 속에 묻어 있다. 나한테 있어서 동성애는 이성과 관계맺는 게 힘들어서 선택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성의 역할이 뚜렷한 반면, 남자들이 차지하는 역할은 많지 않다. 특히 최민용의 갑작스런 퇴장이 걸린다. =최민용은 자기 몫을 다하고 퇴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 시대의 마초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캐릭터다. 배려와 소통을 하지만, 결국 그게 자기중심적인 한도에서 배려와 소통을 하는 남자들이다. 이번에 재편집을 할 때 중국집 시퀀스를 많이 덜어냈는데 전체적으로 남자들 이야기가 많이 없어졌다. 사실 그 장면은 자연스럽게 두 지우가 알아갈 수 있는 자리라 생각해서 내가 고집한 장면이다. 시트콤같이 좀 우스꽝스러운 느낌도 줄 수 있었고. 영화 속 남자들이 거의 꽃비와 관련되어 있어서, 그러면서 꽃비가 맡은 ‘지우’의 말수가 줄어들고 역할이 축소됐다.

-<귀여워>가 황학동 철거촌이라는 사실적인 공간에서 판타지적인 장면들을 연출했다면, 이번 작품은 태초의 공간 같은 물의 이미지로 판타지를 극대화한다. =<귀여워>는 황학동 철거지역이 주는 공간 자체가 캐릭터였던 영화다. 굳이 미술적으로 손을 대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성이 된다. 또 그때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런데 이번에는 공간이 하나의 캐릭터성을 부여받았다기보다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취향이 중요한 점이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그런 것 때문에 판타지에 신경을 썼다. 캐릭터들의 외로움을 표현하다보니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촬영 전에는 바다에서의 느낌을 더 살리려고 했는데 많이 표현되지 못했다.

-시제가 기억과 결부되어 구성되어 있다. =<귀여워>도 <창피해>도 영화 속 시간이 얼마인지 잘 모르겠다. 세월과 시간이 농축된 드라마라기보다 한 3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창피해>는 현재와 과거가 있지만, 사랑은 단 며칠 동안의 일이다. 일주일이 될 수도, 아주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걸 나조차 잘 모르겠더라. 많은 일이 일어날 뿐, 순서와 과정을 밟는 것과는 좀 다르다. 기억이라는 게 사랑의 전체에서 제대로 짚어볼 수 있는 상태나 순간이 필요하다. 2년 뒤 미래에 있었던 이야기를 앞에 붙이고, 원래 현재였던 걸 다 과거로 배치할 수도 있다. 기억과 과거는 퍼즐 맞추듯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뒤죽박죽이 되고 결과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좀더 어려워진 것 같다.

-설정 자체로 볼 때 굉장히 자극적인데도, 전개하면서 그 설정 자체는 흐려진다. 보통의 영화가 스토리텔링을 할 때 가질 수 있는 방식과는 지극히 상반된다. =난 한 가지 이야기로만 끌고가는 게 버겁다. 늘 수위를 높게 잡아서 시작하고 결국엔 그걸 수습하는 과정이 돼버린다. 점점 올라가서 곡선이 생겨야 편하게 주고받는 호흡이 생길 텐데. 캐릭터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고, 그 속에 내재된 상처를 가져와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하다보니 나도 애를 먹었다. 자연스럽게 사건들을 통해서 그 마음들이 보여지면 나도 쉽고, 보는 관객도 쉬울 텐데 말이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이니, 개봉까지도 쉽지 않았다. =<귀여워> 때는 좀 힘들었다. 술도 많이 마셨고. 지금은 한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답답함, 조급함이 없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부분도 있으니까. 시장에 내놓는 것도 순탄하게 잘될 거라는 기대는 안 했던 것 같다. 상업영화시장에 내놓기에 자신만만한 소재는 아니었으니까. 분량을 좀 줄여달라고 해서 조금 덜어내고 나니 오히려 잘됐다 싶다. 배우들도 진작 이렇게 하지, 하면서 오히려 반기더라.

-일종의 타협인 건가. =반성도 많이 해서 이젠 남이 써준 시나리오를 해볼까 싶은 생각도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게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는 존재하고 나머지를 내 스타일로 가져가는 거다. 영화가 100을 표현한다면 감독의 목소리가 5~10만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 나머지 90은 다른 무언가에 할애되더라도 말이다. 당장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5~10이다. 100으로 채우면 버겁고 무거워질 뿐, 영화를 위해 함께 고생한 이들에게 도움이 안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지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그런 결심하에 하는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부지런히 찍으시는 감독님들도 많지만, 난 영화 한편 하는 데 더딘 편이다. 아직은 제목만 정했다. <죽여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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