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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감독이 보고 싶다
2002-01-16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연출 경력이 많지 않은 감독을 보통 신인감독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몇몇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후보 요건으로 ‘연출 작품 몇편 이내’라고 못을 박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흔히 신인감독이라는 말을 데뷔감독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영화 제작현장에서 십 수년 동안 일을 해도 자기 작품 연출 경력이 없으면 신인감독이고, 나이가 중년이어도 처음 작품을 만들었으면 신인감독으로 구분한다. 또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작품을 만들어도 똑같이 신인감독으로 불리는 것이다.

영화계에서는 대체로 신인감독을 보는 눈이 두 가지다. 뭔가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기대이거나 장편 작품으로 검증된 바 없다는 우려다. 그래도 나는 우려보다는 기대가 많은 편이다. 신인감독들의 작품에서는 설사 결과적으로는 작품 속에 잘 녹여내지 못했더라도 창의적인 상상력이나, 도발적인 시도, 야심만만한 패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 등장한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은 두루 살펴보면 형식이든 내용이든 흥행이든 뭐든 나름대로의 새로움과 성과를 내놓으며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장윤현이 그랬고, 김지운이 그랬고, 박기형, 허진호, 이재용, 장진, 정지우 등이 그랬다. 또 홍상수와 이창동, 이광모 감독도 데뷔작품으로 단연 주목받은 감독들이다. 지난해만 해도 박흥식, 김대승, 윤종찬, 정재은, 김용균 감독 등 줄잡아 10여명이 데뷔작을 선보이며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흥행대작 트리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도 모두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다.

한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데뷔하는 신인감독들의 나이가 죄다 30대 이상이고 볼혹의 고개에 접어든 감독까지 있는데, 20대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신인은 신인인데, 나이까지 ‘어린’ 신인감독이면 어떨까? 이땅에 사는 20대의 감성과 눈으로 그리는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지난해 개봉작 리스트를 훑어봐도 그렇고, 내가 아는 감독들을 떠올려봐도 나이가 20대인 감독은 한명도 없다. 친분이 있는 감독 중에는 올해 30대에 진입한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든 류승완 감독이 가장 어린 셈이다. 현재 촬영중인 작품까지 포함하면 20대 후반인 <일단 뛰어!>의 조의석 감독과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의 김동원 감독이 흔치 않은 20대이다.

상종가를 구가하는 탤런트, 가수 등 연예인들은 대다수가 20대이고, 박찬호, 박세리는 물론 내로라 하는 스포츠 스타도 모조리 20대인데 유독 영화감독은 20대가 드물다. 반면 창작에 필요한 감성과 인식의 덩어리가 영화와 비슷한 문학쪽에서는 20대에 데뷔해 일가를 이룬 시인이나 소설가가 적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예술적 재능에 연륜이 녹아들어야 가능한 ‘심오한’ 작업이기 때문일까. 영화가 문학이나 미술 등 다른 매체와 달리 기본적으로 수십명의 스탭과 상당한 장비와 기술력이 필요한 ‘집단 창작’에 가까운 작업이라 본령이 다른 문제인지도 모른다. 부디, 단순히 나이 어리다는 것이 장편영화를 연출할 수 없는 결격사유가 아니길 바란다.

알고 지내는 나름대로 촉망받는 한 20대 단편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30대 중반까지는 장편 데뷔 꿈을 접기로 했는데, 그 이유가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한국에서는 나이 어린 감독이 삼촌뻘 되는 스탭들과 작품만드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아주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의 말에 수긍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