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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공상과학영화의 새로운 리얼리티
황두진(건축가) 2012-01-05

건축, 드라마, 스타일 모두를 절묘하게 구현한 <가타카>

<가타카>

공상과학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타카>는 드라마와 스타일 모두가 기억나는 흔치 않은 영화다. 유전적으로 선택된(=조작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몇몇만 뽑아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보내는 우주프로그램에 유전적으로 열성인(즉 자연 태생인) ‘부적격자’가 은밀히 지원한다는 것이 전체 이야기의 골자다. 그러면서 좌절과 희망, 도전, 우정, 희생, 사랑, 기만 등 일반적인 공상과학영화에서 찾기 어려운 주제들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주제들이 장소적 배경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건축가가 보기에 이 영화는 건축을 매우 잘 읽는 사람이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우주 프로그램의 본부인 가타카로 등장하는 건물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년작이자 유작인 마린 카운티 시빅 센터다. 그의 작품 연보에서 가장 뒤에 위치하며 동시에 가장 큰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 건물은 라이트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그리 자주 거론되지는 않는다. 넓은 대지에 수평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평소 대평원의 지평선을 흠모했던 그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건물 구석구석의 스케일 편차가 심하고 완만한 아치들이 중첩된 조형방식 또한 뭔가 어색하다.

<가타카>

하지만 영화는 건물의 이러한 특징을 고스란히 영화의 내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정 시대의 특정 지역과 연관시킬 수 없는 그 외계적 느낌이라든지 크고 작은 공간의 교직, 그리고 천창을 통해 보이는 우주선의 발사 궤적 등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상투적 공상과학의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공상과학적 리얼리티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타이탄으로 발사되는 그 순간에도 우주인들은 우주복이 아닌 칼같이 다린 정장 슈트를 입고 있다. 언뜻 들으면 완전히 실패할 설정일 듯하지만 오히려 영화의 성격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건축과 영화와 스타일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단 하나의 예를 꼽으라면 단연 <가타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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