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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넥타이, 서른다섯살 남자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김도훈 2012-02-24

넥타이를 샀다. 엔지니어드 가먼츠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미국 의류회사의 넥타이다. 질 좋은 울로 제작된 니트 넥타이고 색깔도 차분하다. 가격은 그리 차분하진 않다. 그래도 이 넥타이는 관혼상제용으로 어쩔 수 없이 샀던 첫 넥타이와는 의미가 다르다. 내가 구입하고 싶어서 구입한 첫 번째 넥타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다니는 글공장에는 넥타이 따위 필요없다. 만약 내가 슈트를 쫙 빼입고 출근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누가 돌아가셨니?”라거나 “어떤 말도 안되는 인간이 오늘 같은 날 결혼해?”라고 물을 거다. 그런데도 넥타이를 구입했다. 어른의 아이템을 하나쯤 갖고 싶어서다.

서른다섯살 남자가 어른의 아이템 운운하는 게 좀 웃기게 들리리란 건 잘 안다. 하지만 이 직장에서 일하다보면 점점 어른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씨네21>에 대해 폭로하자면 이 직장의 많은 30~40대들은 결혼은 했으나 아이는 갖지 않거나, 결혼도 하지 않거나, 심지어 연애도 하지 않고 영화와 글과 취미에 몰두한다. 부산 동래구 사모님인 어머니는 이 모든 게 서울이라는 교양없고 여유없는 북쪽 지방도시의 이상한 특질 정도로 이해하시는 것 같다. 하긴, 내 고향 친구들은 이미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이젠 유치원에 갈 나이의 아들딸이 있는 부모가 됐다. 일반적인 ‘어른스러움’의 개념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삶을 살아가는 서울 잡지쟁이들의 세계란 동래구 사모님의 일반적인 이해도를 훌쩍 넘어서는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넥타이를 맸더니 뭔가 목이 콱 조여오는 느낌이 꽤 괜찮았다. 목이 조여지자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누군가가 내 목을 콱 부여잡고 ‘이젠 어른이니까 앞으론 좀 어른스럽게 살아야지?’ 하고 윽박지르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나쁘지가 않았다. 게다가 세상에는 수많은 넥타이 매는 법이 있었다. “그 친구는 글이 약간 김훈투인데 가끔은 김혜리투가 나오기도 해”라는 말 대신 “그 친구는 항상 윈저 노트를 하다가 가끔 더블 노트로 개성을 뽐내더군” 같은 대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새로운 어른의 세계로 입문한 나는 포 인 핸드 노트를 구사하지만 언젠가는 윈저 노트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어른답게 넥타이도 많이 살 거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얼마 전엔 이베이로 넥타이를 두개나 구입하는 어른스러운 짓을 벌였다. 배트맨과 스폰지밥이 프린트된, 아주 어른스러운 넥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