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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오디오비디오적 커밍아웃

<줄탁동시>가 소년들의 상태와 고통을 서사화하는 방식

<줄탁동시>는 그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종합적인 영화이다. 서사의 표층에 드러난 바, 거기에는 퀴어시네마의 요소에, 성장영화의 요소, 뭉뚱그려 말하면 사회 현실을 생(生)질료로 삼은 리얼리즘 영화의 요소가 두서없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영혼의 안쓰럽고 쓸쓸한 궤적은, 흔하지는 않아도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삶의 한 양태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과론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내러티브 조각들을 주제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함께 엮는 복합 내러티브 영화로 <줄탁동시>는 그 백미를 보여준다. 영화는 둘 또는 셋으로 나뉜 내러티브 조각들이 그들 각각의 사건을 주관하는 캐릭터와 사건들을 독립적으로 소유하면서 느슨하게 얽힌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선형 복합 플롯은 몰래카메라 형식을 차용한 픽션과 논픽션의 복합 구조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김경묵의 장편 데뷔작 <얼굴 없는 것들>(2005)과 에피소드의 분절화를 통해 장르의 규칙들을 탐사한 두 번째 장편 <청계천의 개들>(2008)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그러나 앞선 두 사례들보다 <줄탁동시>에서 김경묵은 이야기의 심층을 파헤치고, 세밀한 내레이션의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주제를 서사화하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앞선 두편의 복합 플롯 형식이 원초적이고 맹아적이라면, <줄탁동시>에서는 전면적이고 본격적으로 영화의 스토리텔링과 대결하려는 단단한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연속성

<줄탁동시>의 내러티브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나고 자란 본향을 상실하고 남한 땅을 유랑하는 탈북자 소년 준(이바울)과 조선족 소녀 순희(김새벽)의 뿌리 뽑힌 여정이 축을 이루는 1부, 유부남 애인 성훈(임형국)과의 애증이 파멸적인 결말로 치닫는 게이 소년 현(염현준)의 이야기가 다른 한축을 이루는 2부, 그리고 3부에서 별개의 궤도를 따라 흘러가던 두 갈래 플롯을 뜨개질하여 두 인물이 만나고, 나뉜 이야기가 종합된다. 나누어져 있지만 종국에는 정리와 종합을 향하는 구성적 통일을 기도한 흔적 때문인가, 일각에서는 연출자의 머리 속에 있는 인물과 주제의 형상화가 강박적인 도식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적 견해들이 있는 듯하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줄탁동시>의 서사 조직은 전략적이고 세심하다. 연출의 치밀함과 세심함이 구도의 강박과 도식으로 오해될 수는 없다. 도리어 거의 ‘존재없음’의 상태로 묘사될 수 있는 인물들을 데리고 ‘개념의 서사’를 구축해나가는 이 영화는 복합 서사 양식을 다양한 형태로 또 줄기차게 구사해왔던 김경묵의 성숙의 징표라고 생각한다.

<줄탁동시>에서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짜나가는 방식은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컨티뉴이티를 통한 접점들을 활용하는 비옥한 이미지의 스토리텔링과 적절히 조응하고 있다. 여기서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 위에서 인과의 논리는 교란된다. 현재와 과거, 간간이 미래가 교차하고 기준점이 불분명한 시간이 불쑥 끼어들어 혼란을 야기하는 순간들이 군데군데 있다. 생략과 비약, 구멍이 많은 내러티브 안에서 어떤 사건들은 잘리고, 하나의 시간 지대에서 다른 시간 지대로 특별한 단서가 없이 점핑하며, 그렇게 해서 생긴 공백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들이 채워나가야 하는 형태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를테면 3부가 시작되면 준과 현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3부에서 도킹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변변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2부가 시작되면 난장판이 된 현의 오피스텔이 보인다. 추정컨대 성훈의 아내에 의해 저질러졌음직한 사태의 전말은 숨겨진 채, 이야기 중간에 성훈의 아내가 오피스텔로 찾아오는 숏이 무심히 끼워넣어져 있는 식이다. 그러나 서사의 공백과 그것을 채워나가는 <줄탁동시>의 담화 양식은 텍스트의 흠결이라기보다 일관되고 특징적인 서술의 전략을 이룬다는 점이다. 설명이 되지 않으므로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서사의 공백이 암암리에 자신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두 인물의 스토리를 분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기술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틈새는 무엇으로 채워지는가를 통해 이 기능이 드러난다. <줄탁동시>에서 혼미한 시간의 지대들을 연결시키는 이음매는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연속성(continuity)이다.

예컨대 영화가 열리고 최초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이미지이다. 오프닝 시퀀스는 강남에서 강북으로 동호대교를 가로질러 달리는 준의 오토바이를 보여주는데, 이 오토바이 장면은 1부 전체를 통해 세번 반복된다. 환언하면 1부의 구성은 순희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달리는 단일한 액션이 셋으로 나뉘어 삽입되면서, 그들 사이에 스토리 시간상 과거의 삽화들이 끼워진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액자 구조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이미지가 액자의 프레임 역할을 하고, 그 안에 플래시백에 해당하는 과거가 액자 속 이야기로 낀 모양새이다. 그런데 액자의 프레임에서 액자 안으로의 전환, 역으로 액자 안에서 바깥의 프레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마다 이음매들이 그들을 연결한다. 현재와 과거, 액자의 프레임과 내부를 이어주는 일종의 ‘시간의 문’ 기능을 하는 것은 지하철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준의 오토바이 곁을 부드럽게 활강하던 카메라는 오토바이 옆을 지나는 지하철의 속도감과 굉음(사운드)을 브리지로 삼아 지하철 안 광고판에 전단지를 끼워넣는 준의 과거 시간으로 이행한다. 이 유려한 시간의 점핑은 1부와 2부 곳곳에서 관철되는 숏과 시간 이행의 논리이다. 액자 안에서 바깥 프레임으로 빠져나오는 출구 역시 지하철이다. 준은 선유도 공원에서 한강 다리 위를 지나는 지하철을 바라보는데 그 속도감을 따라 동호대교 위를 지나는 지하철로 이행하면서 동호대교 위의 준의 오토바이로 돌아온다.

이와 같은 이미지와 내러티브 시간의 조형은 둘 이상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시간 게임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조형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김경묵은 각자가 서로에게 미치는 파장을 인식하지 못한 채 동시적인 시공간을 사는 두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시청각적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통념적인 플래시백 화법을 거부하고, 이미지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시성(異時性)을 극복할 수 없는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시간과 인과율의 공백이 연결되는 방식들을 탐사하면서 동시성과 동질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서사화하는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

동시성(同時性)의 내러티브

김경묵은 의도적으로 두 갈래로 나뉜 플롯 라인을 전후(前後)에 배치하여 두 단락간의 시간관계를 혼란에 빠트린다. 1부에 해당하는 준의 시간과 2부에 해당하는 현의 시간은 명징하게 그 관계가 그려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줄탁동시>는 동시발생적인 에피소드를 병치하는 현대적인 스토리텔링 형식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데, ‘줄탁동시’( 啄同時)라는 제목에도 포함되어 있듯 동시성은 시간의 좌표 위에 주제를 서사화하는 데 있어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동시적이라면 무엇이 동시적인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던 시대 인간의 일상적 경험을 동시발생적이고 세포화된 동시성의 아이러니(Irony of synchronous monadic simultane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현대 세계에서 인간을 둘러싼 각종 현상들은 동시적으로 발생하며 암암리에 상호 연관되어 있는데, 어떠한 주체도 자신을 벗어나 일어나는 이같은 현실을 알 수 없고, 세계를 관찰자의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텍스트는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서사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동시성의 내러티브를 활용하게 되었다. <줄탁동시>에서 모호하게 처리되는 1, 2부의 조각난 삽화들을 지도그리기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들이 아주 간헐적으로 상대방의 단락에 틈입하면서 바로 이 동시성을 환기한다는 것이다. 상이해 보이는 상황 안에서 감금과 억류의 상태에 놓인 인물들이 동시적이고 동질적인 관계로 엮이는 것은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교차와 틈입을 통해서이다.

예를 들어 <얼굴 없는 것들>에서부터 김경묵에게서 비디오 이미지 또는 폐쇄회로 화면의 형상을 띤 디지털 이미지는 자주 일어났는데, 여기서도 어김없이 이들이 등장한다. 1부 준의 에피소드에는 2부의 주인공 현이 자신에게 ‘수치를 줄 수 있는 행위를 해달라’는 한 여인을 모텔에서 만나 SM을 하면서 그 광경을 캠코더로 찍는 일화가 삽입된다. 단선적 경로를 그리던 서사에 어떤 예고도 없이 끼어드는 놀라운 비선형 일화의 개입은 2부 준의 에피소드에도 있다. 캠코더로 자질구레한 생활사를 기록하는 준이 자위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뒤, 우리는 한 화장실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윤간을 당하는(심의에서 문제가 된 바로 그 장면이다) 준의 모습을 갑자기 대면한다. 1부 준의 에피소드에서 현이, 2부 현의 에피소드에서는 준이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팝업창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얼핏 맥 락을 상실한 것 같은 이와 같은 두 인물의 교차는 한편으로 동시적이고 동질적인 그들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연결하려는 내레이션의 의도를 보여준다.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을 네트워킹하는 것도 가능하다. 디제시스상에 제시된 정보에 의거한다면 두 사람은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요컨대, 1부 디지털 이미지로 재현되는 SM 시퀀스의 여인은 완악한 주유소 사장에게 노임을 받지 못한 준이 찾아간 노동사무소에서 “본인이 직접 해결해보라”고 준을 회유하는 근로감독관 여인, 바로 그녀이다. 이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여인이 준의 이면 앵글과 같은 현과 채팅으로 만나 모텔에서 SM을 실행한다.

그렇다면 2부의 화장실 시퀀스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준의 얼굴을 찍는 카메라는 누구의 것인가? 순전한 추정에 불과하지만, 디제시스상으로 그것은 현의 캠코더일 가능성이 있다. 준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디지털 이미지를 기록하는 주체이고, 몰래카메라에 심취해 있다. 화장실 시퀀스로 넘어오기 직전의 숏, 자위하는 모습을 캠코더에 기록하는 이미지와의 연결을 고려하더라도 화장실신의 카메라는 현의 것이라는 심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2부에서 현이 중년의 게이 남자와 노래방에서 만날 때, 노래방 복도를 청소하는 것은 순희이며, 1부와 2부의 끄트머리에 삽입된 손글씨로 적은 일기 역시 각 단락의 주인공이 아니라 맞은편 주인공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들어가 있다. 디지털 이미지와 SM 여인, 노래방의 순희와 손글씨들은 1부와 2부 사이를 교차, 틈입하면서 두 소년을 만나게 하는 가교가 된다.

추상의 서사

결국 이같은 교차와 틈입의 근원적 효과를 문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시간과 상태를 부여받지 못한(stateless) 인물들의 아이덴티티, 이 추상에 가까운 개념을 서사화하려는 작의와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다. 준과 현의 삶을 하나의 서사로 보았을 때, 그 서사에는 자기 안의 타자들이 무시로 출몰하여 시간의 정지와 지속이 다양하게 변주된다. 김경묵의 앞선 영화들에서 종종 그래왔듯이, <줄탁동시>의 심층적 의미는 알레고리에 근거해 있다. 준과 현, 순희까지를 포괄한 인물군은 동시적인 시공간에서 머물지만 교차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분열된 자아이며 다른 곳에 있지만 공존한다. 이 부유와 유랑의 상태를 통해 묘사하려는 것은 지속적으로 내면을 향하고, 밖으로 분출되지 못한 채 웅크린 타자들의 사자후(獅子吼), 곧 커밍아웃을 향한 애절한 운동이다. 커밍아웃이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허락된다면, 김경묵의 영화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바로는, 그의 영화적 테마는 커밍아웃의 형상화에 있었다. 이것은 단지 그가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일기 형식을 띤 고백조(調) 이야기들 속에 그 자신이 부벼왔던 삶의 조건과 내면적 풍경에 대한 표출을 창작의 근간으로 삼아왔다는 걸 의미한다.

추상화가 가진 일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물이 하나의 관념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인간이기에 앞서 피와 살을 입은 관념으로 존재한다. <줄탁동시>의 준과 현은 이와 같은 관념을 표현한다. 겉으로는 탈북자이고 게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물질성과 구체성을 상실한 추상적 관념이다. 국적, 주소, 성별, 뿌리가 없는 방외자. <줄탁동시>의 혁신성 또한 직접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을 서사화했다는 것에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 본질이 허망과 슬픔이라는 점에서 두 인물의 방랑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여기서 그들을 연결짓는 것은 시간의 파괴력과 그 불가회성을 그려내는 서사구조의 정밀함이다. <줄탁동시>는 사건의 단선적 배열로 이루어진 연속체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 정보들이 상호 링크되어 그물망을 형성하며, 내러티브 공간의 안과 밖, 현재와 과거, 일상과 판타지를 가로지르면서 ‘커밍아웃’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의 서사화에 도달한다.

하나의 관념이나 추상을 이야기로 풀어내기까지는 형상창조의 과정이 긴요하다. 신들이 접합되는 지점들에 대한 설계, 시간을 배열하고 그 이행을 주관하는 이음매들의 적절한 호응, 교차의 전략과 방식에 따라 이같은 스타일의 효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숏과 숏이 잘리고 이어지는 지점들이 표나지 않게 심어져 있고, 시간과 인과율의 공백을 메우는 오디오비주얼 이미지의 스토리텔링이 곁들여지면서, <줄탁동시>는 바깥을 향하는 확산형의 움직임(즉, 커밍아웃)을 묘사한다. 상당한 재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감독 김경묵의 가능성은 이처럼 걸어다니는 관념이라고 할 이 소년들의 상태와 고통을 서사화하는 조형의 방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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