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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스무살의 나에 대한 반성문”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2-04-05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

2년 전 이용주 감독으로부터 <건축학개론>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불신지옥>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이던 그는 동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내 의견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절박했다. “이 영화를 해야 다음 영화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건 그가 큰 산에 봉착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첫 작품으로 평단의 관심을 얻었지만 당시 그는 고작 관객 25만명을 동원한 신인감독이었고, 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상업적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당시 내가 어줍잖은 시선으로 우려했던 지점은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건축학개론>은 그가 거의 10년을 매달린 프로젝트였고, 주변의 만류엔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수정고 파일만 몇 백개가 존재하는 <건축학개론>은 그에게 결코 놓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다. 그는 내 의견을 새겨듣겠다고 했지만 몇달간 시나리오 작업 끝에 완성된 최종고는 유부녀였던 서연(한가인)이 이혼녀가 된 것을 제외하곤 거의 그대로였다. 서연은 과거의 첫사랑 승민(엄태웅)을 찾아갔고 둘은 매일 밤을 때론 설레고 때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대학 1학년 때의 풋풋했던 기억 너머의 여행을 시작한다. 완성된 영화는 레전드급 멜로가 되었다. 승민과 서연의 기억을 헤집어 찾아낸 첫사랑의 원형, 그 재연은 많은 이들에게 그걸 자신의 사랑이라고 치환할 수 있는 마술을 부린다. 강의실 뒷문으로 들어선 긴 생머리의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던 찰나의 공기, 술 취한 밤 여자친구의 집 앞에서 목놓아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쪽팔림, 이어폰을 나눠 꽂는 순간 그녀와 내게 전이됐던 떨림의 입자들, 버스정류장에서 나눴던 수줍은 입맞춤, 그리고 그녀의 한마디가, 표정 하나가 풀 수 없는 수학기호처럼 여겨졌던 순간들. <건축학개론>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상세 보고서다. 왜 하필 그는 지금 이때, 불쑥 잊고 있었던 기억을 불러와 잘 살고 있는 우리를 흔들어놓으려고 했을까. 파장을 불러올 멜로, 이용주 감독의 첫사랑 개론에 참관한다.

-10년을 매달린 프로젝트였는데 도대체 문제가 뭐였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90년대 정서의 사랑 이야기가 20대 메인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큰 영화였다. 몇번 현실화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번번이 캐스팅과 투자에 실패하면서 무산됐다. 그 10년 동안 시나리오 고치는 게 일이었다. 서연이 자기 집 뼈대를 두고 신축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초고를 얼마나 남겨놓을지가 중요했다. 가능성을 평가해준 명필름을 만난 게 천운이었다. 명필름에서 안되면 충무로에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격려보다는 만류가 컸겠다. 특히 데뷔작 <불신지옥>이 흥행엔 실패했지만 장르영화로서의 가능성에 후한 평가를 받았던 터라 다른 제안도 많았던 걸로 안다. =모두들 그만하고 딴 거하라고 했다. 상당히 일리있는 충고라고 생각했다. <불신지옥>을 만들기 전까지 시나리오 돌린 세월만 5년이었고, 나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 <불신지옥> 뒤에는 얘기한 대로 제안받은 프로젝트가 많았다. 장르쪽으로 재능이 있으니 상업적인 영화를 한편 만들면 좋지 않겠냐는 거였다. 당시 나도 <건축학개론>을 꼭 하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었고 뭘 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명필름에서 하자고 했을 때까지도 측근인 이해영 감독은 도시락 싸와서 말렸다. 내가 딱 3개월만 해보겠다, 1고만 써보겠다고 했었다.

-도대체 어떤 고집이었나. =이건 지금 아니면 못 만들겠더라.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한 동기부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관심사 중에 사랑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고 사랑에 대한 시선이 바뀐 거다. 초고를 본 봉준호 감독(이용주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에게 2006년에 수정한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도 벌써 봉 감독님이 눈치채더라. “너도 나이 먹었구나.”

-기존 충무로 멜로 장르에 대한 도전의 의미도 있었을 것 같다. =멜로 제작을 안 하는 게 답답했다. 충무로엔 멜로가 없다. 혹자는 드라마에서 다 보여주니 굳이 영화까지 멜로를 할 이유가 있냐고도 한다. 내 생각은 달랐다. 내가 봐서 재밌는 거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불신지옥> 끝나고 나서 봉 감독님에게 “<플란다스의 개> 망하고 <살인의 추억> 할 때 이거 망하면 안된다는 전략적 고민이 있었냐”라고 물었다. 내가 지금 거기 봉착한 것 같다고. 봉 감독님이 단호하게 “없다!”고 하더라. 그게 보장 안되니 영화판이고 그래서 다들 영화하는 거라고. 생각해보니 <살인의 추억>도 범인이 없는 스릴러였으니 당시엔 굉장히 위험한 프로젝트였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근데 재밌는 건 그래서 내가 “다시 <건축학개론> 하겠다”라고 했더니 봉 감독님이 우려 섞인 시선으로 “<건축학개론>? 진짜 하려고?” 하더라. (웃음)

-10년이면 사랑에 대한 자신의 사고도 바뀔 수 있는 긴 세월이다. 시나리오에도 그 변화가 반영됐을 텐데. =초고는 좀더 달달했다. 초고엔 삼각관계도 없었다. 난 둘 사이의 질감을 원했는데 다들 너무 밋밋하다고 하더라. 완 성본엔 그래서 승민의 약혼녀 은채(고준희)와의 갈등이 들어갔는데 결국 편집에서 다 뺐다. 초고 때 걸로 가게 된 거다. 나는 이런 질감이 좋은데 다른 걸 좋다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부딪혀 긴 여행을 한 거다. 아, 참 그리고 초고에서 승민과 서연이 93학번인 걸로 돼 있었는데 제작시기가 늦춰지면서 지금의 96학번이 됐다.

-멜로는 특히 캐스팅이 관건이다. 톱배우들이 더블 캐스팅엔 인색한 편인데 그걸 감행했다. 효과도 있었고 한계도 있었을 것 같다. =더블 캐스팅은 진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배우가 현재와 과거를 다 보여주면 지겹지 않았을까.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 애초 그걸 작정했다. 그럼에도 처음엔 더블 캐스팅은 엄두를 못 내겠더라. 산업적 이유가 컸다. 멜로니까 당연히 A급 배우가 들어와야 하는데 A급 배우들 중 누가 반쪽짜리 역할을 하겠나.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하려면 중간급 나이의 남녀배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또래의 배우가 많지 않다. 서너명이 거절하다보면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게 된다. 다행히 엄태웅이 오케이해서 가능해졌다.

-완성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서연이 과거의 첫사랑을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판타지 아닐까. 영화의 전체 골격은 결국 승민이라는 20대 남자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의 회귀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현재의 사랑보다 순수하게 각색된다. =이 영화 만들 때 이런 규정이 있었다. 과거는 있었던 일이니까 ‘real’이라면 현재는 이런 사람이 찾아온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설정의 판타지로 가자. 현재의 설정은 이렇게 판타지지만 두 남녀가 겪는 일들은 굉장히 일상적이어야 한다. 대신 기억은 미화되는 한편의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데 미화하려는 그런 규정을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썼다.

-승민은 끝내 서연에게 욕을 내뱉으며 등 돌리게 했던 과거 그날 밤 ‘사건’에 대해 현재에도 묻지 않는다. 첫사랑에 관해서 비슷한 방식의 사고를 가진 남자를 그린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병훈(엄태웅)이 첫사랑의 여자를 몰아붙여 찌질함을 보여준다면, 승민에게선 첫사랑의 기억을 깨지 않으려는 일종의 고상함이 엿보인다. =답을 이렇게밖에 못하겠다. 내가 좀 그렇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엄태웅은 사실은 자기가 잘못하고 은폐하려는 거니 일종의 범죄다. 반면에 승민은 진실을 두려워하는 남자다. 서연이 다른 남자와 한집에 들어가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를 거부하는 비겁한 남자다. 가서 확인해도 될 텐데 그러지 못한다. 스무살 때 나도 그랬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내 지난날의 반성문 같은 영화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혼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정작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꺼져줄래!” 하고 도망가는 그런 남자다. 나 역시 유사경험이 있었고 그게 비겁하고 쪽팔리다고 생각했다.

-연애가 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면 승민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결론난다. =난 새로운 해답을 믿지 않는다. 성장과 무관하게 난 현재의 만남을 통해 “너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만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이 살아가면서 소중하다고, 어쩔 때는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찌질하다, 과거 지향적이라고들 하는데 난 “그러면 안돼?”라고 묻게 된다. 항상 세련되게 앞만 보고 살아야 하는가. 찌질하지 않은 척, 과거 지향적이지 않은 척, 쿨한 척하는 것이 지향해야 할 가치처럼 여겨지는 것. 이게 옛것을 부수고 새 아파트를 짓는 지금의 개발논리와 뭐가 다른가.

-영화에서 건축과 사랑의 상관관계는 곧 공간과 기억에 대한 것으로 치환된다. 기억과 맞물린 과거의 공간, 특히 정릉을 기점으로 한 영화의 배경이 주는 의미가 크다. =90년대를 꺼내는 게 내겐 너무 자연스러웠다. 승민과 홀어머니, 승민이 살던 오래된 집, 오래 산 동네, 버스 종점. 나한테서 차용해온 것들이다. 사실 이야기의 시작에 그런 게 있었다. 서울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자. ‘서울’이라고 뭉뚱그려 대답하기에 서울의 농도는 너무 제각각이다. 강북에서 오래 산 사람은 동네가 경계가 된다. 그런데 강남 살던 사람은 강남이 한덩어리다. 그들에게 고향은 우성3차, 개포 주공이다. 반면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좀 다르다. 그들은 서울을 그저 ‘서울’로 본다. 강북은 강북대로 강남은 강남대로 호기심이 있다. 그들에게 서울은 자기 거주지, 직장 혹은 학교. 그러고 나서 홍대, 압구정 등의 유흥지같이 점으로 인식된다. 강북 강남에 대한 부채감이 없기 때문에 강남에 대한 저항감도 강북 사람들보다 덜하다. 지방에서 온 서연이 강남으로 이사 가면서 “압서방(압구정, 서초동, 방배동) 좋잖아” 하고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15년 뒤 한곳에 살았던 승민은 서울을 떠나 미국행을 결심하고, 부유했던 서연은 정착욕을 가지고 첫사랑을 만나 고향 제주에 집을 짓는다. 결국 그게 이 영화의 기본 골자다. 과거는 도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현재는 공간을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거다.

-제주도 집에도 역시 그 공간 개념이 골격이 된다. =서촌과 북촌, 그리고 강남에서도 오래된 아파트가 있는 구반포. 개발논리와 상충되는 이야기지만 난 그걸 그대로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개념이 제주도 집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편집에서 빠졌는데 서연이 승민에게 “이것 좀 남겨, 저것 좀 남겨” 하니까 승민이 “지금 양서연 생가 보존하냐?” 고 따지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에서 집을 지을 때 승민과 서연이 계속 부딪히고 고민한 게 결국 원래의 집을 얼마나 남길까에 관한 티격태격이었다. 벽돌벽을 남겨둔 건 서연이 어릴 때 키를 쟀던 추억의 공간, 지붕을 남겨둔 건 제주도 집들과의 컨텍스트(맥락)를 생각해서였다. 한 가지 원칙은 하이엔드의 건물은 짓지 말자는 거였다. 지금 완성된 집이 적당히 합의된 리노베이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 역시 이 정도 합의를 거쳐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낡은 집, 나의 연애, 어머니와의 관계.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정서가 다분히 엿보인다. =딱히 영향을 받았다고 보긴 그렇고, 허진호 감독의 취향과 비슷한 거 같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보면 보편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은 감정들이라 이해가 많이 된다. 나 역시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차이는 있다. 허진호 감독 영화에서 한석규나 유지태는 효자다. 나는 효자가 아니었다. 앞서 이 영화가 내 스무살의 반성문이라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한테 집 한채 물려주는 게 목표다. 그런데 영화 속 어머니와 살던 집의 ‘찌그러진 문’은 다시 펼 수가 없다. 그 집을 보면 어머니 같은 거다. 이걸 일구기 위해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런 것도 모르고 대학 때는 여자 때문에 죽을 만큼 괴로워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이 되는 거다.

-영화 속 파편화된 기억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는 역시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었다. 과거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훌륭한 접착제 구실을 한다. =반드시 <기억의 습작>이어야 했던 건 아니었다. 초고 쓸 땐 아바 노래를 염두에 뒀다. 그런데 제작이 밀리고 96년으로 설정이 바뀌면서 노래도 새로 선정했다. 곡 선택 때 내 세대 사람들에겐 기억에 남는 곡일 것, 요즘 젊은 세대들한테는 적어도 들어본 노래일 것이란 기준을 세웠다. <기억의 습작>이 너무 영화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가사라서 간지러워 보일 우려도 있었지만, 영화와 잘 맞았다. 잘 선택했다 싶다.

-이 노래는 영화에서 순기능이 분명 크다. 그런데 감정을 몰아가지 않는 영화의 전반적 기조에서 보자면 얘기한 대로 두 주인공이 <기억의 습작>을 듣는 장면은 좀 과장된 리듬이기도 하다. =그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팬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오열장면 같은 것도 어디서 컷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좀더 가야지 관객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더 감동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명필름이 그걸 말리더라. 그러면 영화가 촌스러워진다고. 내가 “흥행을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라고 묻자 심재명, 이은 대표가 “흥행이 뭐가 중요하냐 영화가 중요하지”라고 하더라. 세상에 무슨 이런 제작사가 다 있나. (웃음)

-낡은 아파트의 구조를 십분 활용해 공포를 유발한 <불신지옥>이나 연애와 건축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건축학개론> 모두 건축을 뼈대로 한 작품 같다. 장르는 달라져도 건축과 출신의 공간 개념이 적용된 것처럼 보인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난 좀 생각이 다르다. <불신지옥> 때 건축적인 구성이라고 평가돼서 좀 의아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질문은 내 전력에 대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영화감독으로 공간을 제어하는 건 전공유무와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다. 다만 이번 영화에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정도의 작정은 있었다. 스스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시사 반응이 좋다. 25만 관객 동원한 <불신지옥>과 달리 흥행의 조짐이 보인다. 다음 작품 들어가기도 수월해질 징조다. =난 지난 10년을 소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일 하다 늦게 영화계에 들어왔고 입봉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만드는 데 욕심은 없다. <불신지옥>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워준 작품이라면, <건축학개론>은 지난 10년간 트라우마를 털게 해준 작품이다.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세 번째 작품은 콤플렉스나 트라우마 없이 할 수 있는 첫 작품일 거다. 분명한 건 여기서 넋 놓으면 안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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