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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의 인디라마] 화면에서도 인과의 틀을 부쉈더라면

<달팽이의 별>, 일상에서 감정의 무늬를 찍어내려 한 감독의 야심

조영찬은 시청각장애인이고 김순호는 척추장애인이다. 나이는 김순호가 훨씬 연상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의 주인공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두 사람은 시골에서 연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김순호가 다 준비해주고 조영찬은 기다린다. 이들의 일상은 대개 이런 식이다. 김순호가 조영찬의 수발을 들어준다. 흔하게 표현하자면 두 사람의 밀착된 관계의 힘을 사랑이라고 해야겠지만 나는 그들의 관계에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두 사람을 저토록 한몸처럼 묶여 있게 하는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부부라고 하지만 김순호가 조영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영찬을 사랑해주고 보호해준다. 그녀의 그늘 아래서 조영찬은 당당하다. 그는 시를 쓰는 예술가이다. 눈과 귀가 막힌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수단으로 세계를 감각하며 자작시에서 자신을 ‘우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눈과 귀가 달린 것이 보편적 인간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에게 조영찬의 신체적 결함은 결핍이겠지만 그는 두 눈 다 뜨고 보며 두 귀로 듣는 우리가 비정상은 아닐까, 라고 그의 자작시에 쓴다.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 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이 글자들이 조합된 문학성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도 거기 진실이 있다는 걸 안다. 영화를 보는 우리 대다수의 감각이 일정하게 불구라는 걸, 조영찬의 시는 지적한다. 그리고 <달팽이의 별>을 연출한 이승준의 카메라는 조영찬과 김순호가 서로를, 세상을 감각하며 충만하게 사는 삶의 행복을 일방으로 쭉 펼쳐놓는다.

드러내지 않는 장애인 부부의 현실

육체적 불구로 인한 결핍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 결핍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줄 줄 알았던 관객에게 이 영화는 거꾸로 그런 것은 있지도 않다고 아예 봉합해버린다. 주인공 부부의 지인들인 장애자들이 집에 놀러와 주인공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장면에서 조영찬과 김순호는 예외적 개인들이라는 게 드러난다. 그들의 지인들은 이들 부부의 행복을 부러워한다. 결혼하고 싶어 하는 동료에게 조영찬은 자신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었노라고, 그것은 외로움이라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느냐는 현실적 속인의 질문에 그는 외로움이 준비였다고 시치미를 뗀 답을 한다. 사소한 장면이지만 자신의 현실적 생활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의 캐릭터가 묻어난다. 다른 지면이나 이 영화의 극장 GV 현장에서도 곧잘 나오는 질문이지만 이승준 감독은 주인공 부부의 생활에서 드러나는 어려움이나 그들의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달팽이의 별>에는 주인공 부부의 행복한 모습만 나온다. 김순호가 몸이 아파 혼자 병원에 가서 애로사항을 의사에게 상담하는 장면도 있고 방 안의 형광등 전구를 갈아 끼우기 위해 꽤 번거로운 절차를 두 사람이 낑낑대며 해결하는 장면도 있지만 여기에 무게중심이 있는 건 아니다. 영화 후반, 조영찬이 김순호의 도움 없이 혼자 차를 타고 외출하는 장면도 있으나 이 장면에 서 강조되는 건 둘이 한몸처럼 다니는 그들의 일상이 언젠가는 종결될 것이라는 데 대한 아쉬움이다. 조영찬이 외출해 있는 동안 김순호는 혼자 밥을 먹는데 반찬이 거의 없이 맨밥을 먹고 있다. 조영찬과 함께 식사할 때면 나름 짜임새있는 식탁을 차려놓고 그에게 밥을 먹여주던 그녀는 조영찬이 없을 때 빈약한 식사를 한다. 그 빈약한 식사는 조영찬이 없음으로써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그녀의 마음상태의 반영처럼 보였다. 굳이 잘 차려먹고 싶지 않은, 파트너가 없으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어머니나 아내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김순호의 마음의 심연이 궁금했다. 그녀는 의심할 나위 없는 천사다. 그녀는 조영찬의 눈과 귀를 대신하며 문학수기 공모에 떨어지는 서투른 문학가 조영찬의 가장 성실한 애독자이고 그가 자신의 일상 삶에서 그녀와 함께 누릴 것을 제안하는 감각적 삶의 충일함을 받아들여 만끽하는 짝이다. 그렇다 해도 그녀의 삶의 피로는 화면에서 감춰져 있다. 내 눈에는 조영찬보다 김순호의 피로가 더 많을 것으로 보였다. 그녀는 눈과 귀가 다 보이긴 하지만 척추장애자이며 그다지 몸이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편의 일상을 위해 헌신한다. 그런 것이 조영찬의 외로움을 메워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로움도 채워줄 수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녀의 피로와 곤궁만큼이나 예술적인 삶을 사는 남편의 우주인다운 감각적 기개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배리어프리 버전이 궁금한 이유

이 글을 쓰면서 새삼 그녀의 천사 같은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근원적 트라우마를 끝내 건드리지 않은 이승준 감독의 윤리적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우선, 당사자인 김순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카메라를 껐다고 말했다. 사석에서 들은, 그녀가 장애자가 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었다. 스스로 진정한 외로움을 절실하게 느껴봤다면 타인의 외로움도 잘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전제에 동의한다. 이 영화는 그 전제에 기대어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그다음, 감독 스스로가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나 동인을 캐내어 현재의 행동을 설명하는 인과적 논리의 전형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로 드러내든, 화면으로 드러내든, 인과적 설명의 논리는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지만 동시에 우리가 기대하고 쳐놓은 어떤 틀에 갇히게 된다. 인과적 논리의 표피적 설득력을 우리는 지금 숱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있다. 감동하게 되지만 또한 구경거리로 즐기는 소모의 함정을 피하지도 못한다.

<달팽이의 별>은 명확한 인과적 논리를 거스르면서 등장인물의 심리학을 배제한 채 줄기차게 그들 행동의 표면만을 반복하며 우리를 설득시키려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 공감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우주인이라고 자부하는 아마추어 문학가 조영찬과 그의 아내이자 공동 삶의 설계자이자 어머니이자 연상의 아내인 김순호가 자잘하게 일상에서 만드는 감각의 무늬를 전시하는 것이다. 확실히 극장에서 보면 보고 듣지 못하는 남자주인공을 대신하여 그가 감각하려 애쓰는 공기가 영화라는 시청각적 공명의 통로를 통해 더 확대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감독 이승준의 윤리적, 미학적 선택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연출을 삼갈 수밖에 없는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그가 너무 과신한 건 아닌가라는 의심도 거둘 수 없다. 내레이션이나 고백적 장치를 통해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것은 촌스럽고 전형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 등장인물에게 폭력적인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대체로 극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의 일상에서 거대한 감정의 무늬를 찍어내려 한 감독의 야심은 지나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로 수영을 즐긴다는 조영찬이 몸에 끈을 묶고 바다를 수영하는 모습을 찍은 카메라는 시적이며 적당한 울림을 주지만 연출하지 않고도 화면에 감각의 무늬를 띠게 하려는 감독의 무모한 야심이 읽힌다.

조영찬의 시는 선언적이다. 그는 자신을 당당하게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걸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선포한다. 그와 김순호가 꿈꾸고 만끽하는 감각의 충만함은 대다수 우리에게 결핍된 것이지만 그걸 화면에 보여주는 것도 사실은 엄청난 관념이다. <달팽이의 별>은 우리에게 결핍된 것을 일깨운다. 행복의 상태에 대해서도 재정의한다. 감독 이승준은 명시적인 설명 없이 그걸 해냈다. 그런데도 약간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화면에 보여지는 것만으로 감각의 충만함이 설명될 수는 없다. 스토리의 인과를 무시한 것처럼, 보여지는 화면의 논리에서도 인과의 틀을 좀더 과감하게 부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정해진 틀대로 설명하느니 생략하는 것처럼. 아니면 더 많이 설명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김창완의 자세한 내레이션이 들어간) 배리어프리 버전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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