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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화산업의 특성과 동떨어진 중재안
김성훈 2012-03-27

문화부, 음악저작권 사용료 징수 개정안 기습처리 논란

현재 영화계의 핫이슈인 음악저작권 문제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3월15일 음악저작권 신탁관리단체인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와 (사)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이하 음실연)의 음악저작권 사용료 징수 규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승인, 공고했다. 개정된 사용료 징수 규정에 따르면, 영화제작자는 극장 상영에 대한 영화음악 사용료로 ‘해당 영화의 관람객 수 × 평균관람료 × 0.97(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가금 공제) × 음악사용료율(음악 1곡의 사용량이 5초 이상 1분 미만의 경우 0.06%, 1분 이상 5분 미만인 경우 0.1%, 5분 이상인 경우 0.2%)’ 같은 방식으로 정산해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문화부가 말하는 ‘해당 영화의 극장매출 × 0.06%’ 계산법이다. 문화부 저작권산업과 김규직 사무관은 “이번 개정안은 영화계와 음저협의 입장을 모두 반영한 결과이다. 원래 음저협이 신청한 극장 매출의 0.5%를 영화계의 사정을 반영해 0.06%로 대폭 낮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영화계와 음저협의 갈등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2010년 음저협은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음악저작물 사용료 관련 공문을 보냈다. 음저협에 등록된 노래가 삽입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경우 극장은 매출의 1%를 음저협에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영화계는 음저협의 일방적인 통보에 반발했다. “극장 매출액이 1년에 약 1조5천억원이다. 한국영화 점유율을 50%라고 가정했을 경우 한국영화의 매출액은 7500억원이다. 이 금액의 1%가 약 75억원인데 이건 음악감독, 복제권 등 연간 음악 관련 비용을 전부 합친 금액보다 1.5배 더 큰 액수”라는 당시 한국영화제작자협회(이하 제협) 최현용 사무국장의 말을 보면 음저협의 결정은 확실히 한국영화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법이었다. 이후 영화계와 음저협의 실무진이 몇 차례 만나 영화음악 사용과 관련한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음저협은 “롯데시네마가 음저협이 저작권을 보유한 음원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롯데쇼핑과 롯데시네마 대표를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때문에 영화계와 음저협의 논의는 중단됐고, 지난해 12월30일 문화부는 영화계와 음저협에 중재안을 각각 전달했다. 영화계와 음저협이 문화부의 중재안을 두고 고민하던 중 문화부가 이번 개정안을 처리한 것이다.

쟁점은 음악공연료 산정 기준과 지불 주체

문화부의 개정안이 발표되자 영화계와 음저협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우선, 영화계가 보는 이번 개정안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음악공연료를 극장 매출에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원저작자가 많고, 음악을 비롯해 감독, 배우,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다양한 주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만들어지는 매체다. 각각의 주체들이 일일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면 투자액이 회수되기도 전에 권리 배분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누가 영화산업에 투자하려고 하겠는가. 또,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영화산업의 특성상 수익률이 낮은 영화는 더욱 큰 출혈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영화계가 극장 매출을 기준으로 공연사용료를 정산하는 음저협과 문화부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협 최현용 사무국장은 “복제권이든 공연권이든 음저협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 행사는 인정한다. 그러나 극장 매출을 기준으로 사용료를 지불할 수는 없다. 음저협의 실무진 역시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공연사용료를 극장에 요구해온 거다”라며 “그리고 문화부가 0.5%에서 0.06%로 낮췄다고 하는데, 그 계산법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해 영진위가 발표한 2011년 한국영화산업결산보고 자료에 따르면, 음악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국영화 평균 순제작비의 1.88%이다. 문화부는 1.88%를 영화당 평균 사용 음악 수인 30곡을 나눠 0.06%를 도출한 것이다. 이게 합리적인 계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음저협이 주장했던 0.5%든, 문화부가 개정한 0.06%든 그 수치가 많고 적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매출액을 기준으로 비용을 정산하는 방식 자체가 수익 배분이 중심인 한국영화산업의 구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영화계의 입장이다. 또 다른 쟁점은 공연권 사용료를 극장이 아닌 영화제작자가 떠안았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영화제작자가 음악저작권자와 계약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영화제작자가 영화에 어떤 음악을 사용하려고 할 때 복제권과 공연권을 일괄적으로 계약하는 방식이 있고, 영화를 제작할 때 복제권 계약만 한 뒤 영화가 개봉한 다음 공연권 사용료를 별도로 계약하는 방식이 있다. 문제가 되는 건 후자다. 이미 영화제작자가 음악 사용에 관한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개봉한 뒤 공연료를 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영화는 상영을 전제로 하는 매체인데, 상영에 따른 공연권 사용료를 또 지불해야 하는 건 일종의 이중 징수”라고 지적했다.

음저협 역시 문화부의 개정안에 불만을 표출했다. 음저협 최대준 방송팀장은 “문화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이 두 가지다. 하나는 5초 이상의 사용료가 0.06%인데, 이건 지나치게 낮은 금액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공연사용료의 주체는 영화제작자가 아닌 극장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수익 배분이 기준인 한국영화산업의 특성에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공연사용료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건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방송 역시 시청률이 낮아 광고 수익이 적게 들어와도 음악사용료는 모두 똑같이 낸다”면서 저작권법은 법의 문제이지 영화산업, 경영상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향후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직배사가 배급하는 외화에도 똑같은 공연권 사용료 규정을 적용할 것”이라며 “공연권만 해결하면 된다. 그 주체는 제작사가 아닌 극장이다. 문화부가 개정한 안에 대해 현재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고, 다음주 CGV, 롯데시네마 등 전체 상영관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신청할 것”이라고 향후 음저협의 계획을 밝혔다.

공연사용료를 극장이 아닌 영화제작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이번 개정안의 내용만 놓고 보면,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극장은 이 문제에 잠깐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성규 과장은 “지난해 음저협의 형사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일단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롯데시네마는 한국상영관협회의 뜻을 따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CJ CGV 홍보팀 김대희 과장 역시 “이번 개정안에 대한 CJ CGV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다. 우리 역시 한국상영관협회의 방침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상영관협회는 아직까지는 “두고 본다”는 입장이다.

음악 사용의 불편을 떠안게 되는 영화제작사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중재자가 싸움의 당사자 모두를 실망시키는 중재안을 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양쪽의 합의를 통해 개정안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문화부의 입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책임해 보인다. 몇몇 영화인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영진위의 소극적인 대응을 안타까워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영진위 김보연 정책센터장은 “영진위가 뭘 안 한 건 아니다. 영진위는 3월19일 긴급 위원회를 열어 이 사안의 심각성과 영화인과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논의했다. 김의석 위원장이 문화부를 찾아 이 사안에 대해 논의를 했다”며 “그동안 영진위는 음악저작권법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냈고, 관련 법률을 검토하고, 영화인들의 토론회를 지원했다. 이 문제의 경우, 이해당사자들의 이해 합의가 최우선이다. 영진위가 나서서 마음대로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영화인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끔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3월21일인 지금까지 이 문제에 영진위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은 건 아쉽다.

어쨌거나 당장 피해를 보는 건 현재 영화를 준비하거나 제작하고 있는 영화제작자와 제작사다. 제협은 “결국 음저협과 협상을 해서 새로운 합의 규정을 도출해내야 한다. 그게 협상 테이블이 될 수도 있고, 재판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분명한 건 개정안을 따를 수 없으니까 당분간은 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기게 될 것 같다”는 입장이다. 맞다. 영화인 대부분이 고민하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현재 <나는 조선의 왕이다>를 제작하고 있는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이번에 개정된 음악저작권 사용규정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최악의 경우, 앞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음악감독하고만 작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외국 음악감독과 작업하거나….” 그의 말처럼 <써니> <친구> <건축학개론> 같은, 가요가 쓰이거나 음저협에 소속된 음악감독이 작업한 영화음악이 쓰인 한국영화를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양쪽의 산업을 모두 고려한 혜안이 절실한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