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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나의 촬영학개론

<건축학개론> <시체가 돌아왔다> <인류멸망보고서> 조상윤 촬영감독

Filmography

2000∼2004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촬영 전공 2004∼2005 <발레교습소> <너는 내 운명> 촬영부 2006∼현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순정만화> <불신지옥> <페스티발> <체포왕> <시체가 돌아왔다> <건축학개론> <인류멸망보고서> 중 <멋진 신세계> 촬영

축하해야 하는 걸까. 위로해야 하는 걸까. 건넬 말이 마땅치 않아 그냥 이렇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요?” 조상윤 촬영감독은 멋쩍게 웃으며 “그저 민망하다”고 짧게 답한다. 자신이 촬영한 영화 3편이 동시에 극장에 내걸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해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3편(<건축학개론> <시체가 돌아왔다> <인류멸망보고서>) 모두 개봉일이 3월22일이라고 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패닉 상태가 되더라. (웃음) 다행히 그 뒤에 개봉일이 1, 2주 차이로 조정이 되긴 했는데….” 복잡한 심사를 속속들이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지난 몇년 동안 조상윤 촬영감독이 쉼없이 카메라를 들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를 시작으로 <순정만화>(2008), <불신지옥>(2009), <페스티발>(2010) 등 매년 1편꼴로 작품을 내놨던 그에게 특히 지난해는 숨가쁜 순간의 연속이었다. 봄엔 <체포왕>(2011)을, 여름까지는 <시체가 돌아왔다>를, 가을부터는 <건축학개론>을 촬영해야 했으니 말이다.

“시나리오를 받은 게 3년 전이다. <불신지옥> 프리 프로덕션 중이었는데, 이용주 감독이 설 연휴에 한번 읽어보라며 쓱 던져줬다.” <건축학개론>은 이용주 감독이 무려 10년 가까이 붙잡고 씨름했던 프로젝트다. ‘올드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시나리오였으나 그는 외려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대사의 밀도가 높고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감독, 프로듀서 등과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열악한 촬영현장을 감안한 ‘맞춤형’ 시나리오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끌렸고, <불신지옥>을 끝낸 뒤에도 주저하고 망설이던 이용주 감독을 부추길 수 있었다. “이용주 감독의 특기가 주변 설문조사다. 한 사람씩 붙잡고 집요하게 물어본다. 당시 이용주 감독은 ‘몸만 와서 연출해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은 상태였다. 나한테 <건축학개론>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다시 묻는데, 그 질문 자체가 응원해 달라는 말 아닌가. 그가 30대의 대부분을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웃음)”

<건축학개론>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로, 공간은 서울과 제주도로 나뉘어져 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시각적으로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한 방법의 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조상윤 촬영감독은 굳이 색다른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도 하나가 아닌 두개의 러브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꼈다. 처음 시작하는 누군가의 사랑과 다시 돌아온 누군가의 사랑. 그런데 이 둘을 인위적으로 더 이격(離隔)시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정서적인 측면에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제작사쪽에선 어떤 톤으로 찍을지 궁금해했지만 캐스팅 전까지 그는 이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1인2역으로 캐스팅이 됐다면 화면의 톤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을 달리 가져갔을 거다. 하지만 승민과 서연 모두 2인1역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인물을 연기하는데 굳이 과거와 현재를 다른 톤으로 찍을 필요가 없었다. 의상, 메이크업, 소품 등으로도 충분히 구별이 되지 않나.”

예민한 관객은 눈치챌 것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카메라는 안구처럼 미세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인다. 배우들이 리액션을 하는 것처럼 카메라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물의 감정이나 장면의 느낌에 따라 변화를 줬다. 만약 픽스된 화면이었다면 요즘 관객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승민과 서연이 개포동 아파트 옥상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서로의 가정사를 묻는다든지 이어폰을 매개로 더 가까워지는 순간의 OS(Over the Shoulder Shot)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감정까지 담고 싶었다.” 물론 카메라를 세밀하게 컨트롤하려면 곱절의 노동이 필요하다. 조상윤 촬영감독은 HD카메라인 알렉사(ALEXA)를 삼각대에 거치하지 않고, 2.5m쯤 되는 미니 지미집에 주로 달아 썼다. “보기와 달리 미니 지미집은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하지만 크레인이나 스테디캠을 쓸 순 없었다. 이 경우 그립팀 팀장과 사전에 합을 짜야 해서 즉흥적으로 카메라를 움직이기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카메라 움직임이 요란해져서 배우들의 연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매직아워

조상윤 촬영감독은 ‘자연스러움’을 첫째로 친다. “고기를 삶아 우려낸 육수 맛을 조미료로는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공 조명 대신 태양광을 선호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자연광을 제 맘대로 다룰 수 있는 촬영감독은 없다. <시체가 돌아왔다>의 잠수교 추격 장면 때도 자연광 때문에 애간장을 태웠다. “해질녘이 되면 스탭들은 굉장히 급박해진다. 그런데 잠수교는 바로 위에 있는 반포대교에 가려 하루에도 해가 네번 뜨고 네번 진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분수까지 터져나오고. 그렇다고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을 대충 찍을 수도 없고. 촬영을 끝내고 나서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됐다. (웃음)” 6년 전 찍었던 <인류멸망보고서> 중 <멋진 신세계>를 찍을 때의 고생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때만 해도 CG에 대해 약간의 불신이 있었다. 어떻게든 현장에서 다 건져올려야 한다는 욕심에 도심 복판에서 시커먼 타이어를 태우고, 연막탄까지 터트려가면서 찍었다. 돌이켜보면 무식한 짓인데, 한편으론 그런 무모함이 아니었다면 자연스러운 느낌이 훼손됐을 것 같다.”

<건축학개론>을 찍는 동안 그는 주변에서 적지 않은 시나리오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대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방콕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몸값 높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작품이 들어오면 이게 흥행이 될까, 얼마나 줄까, 예산은 얼마인가, 이 작품을 해서 무슨 이득을 볼까, 이런 부수적인 것부터 따지게 된다. 데뷔작을 찍을 때 돈이 없다뿐이지 하고 싶은 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는 욕심보다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이러다가 한순간에 ‘훅’ 가는 거지. (웃음) 바깥에서 볼 때는 이제 자리잡았네, 싶겠지만 실은 지금이 가장 큰 위기처럼 느껴진다. 소진된 크리에이티브를 충전하기까지는 카메라를 들지 않으려고 한다.” 조상윤 촬영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 동안 아마도 대학 시절 자신을 끊임없이 질문케 만들었던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작들을 곱씹을 것이다. 자신만의 ‘매직아워’를 기다리면서.

알렉사(ALEXA)

<건축학개론>은 아리(ARRI)사의 최신 HD카메라인 알렉사로 촬영했다. 조상윤 촬영감독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레드MX와 알렉사의 사용 비율이 7:3쯤 되는데, 알렉사로 찍어서 개봉한 첫 번째 영화는 <화차>다. 곧 개봉하는 <은교> 역시 알렉사로 촬영했다. 화소 수만 놓고 보면 레드MX가 월등히 높지만 색 재현력이나 하이라이트 표현은 알렉사가 더 뛰어나다. 거칠고 어두운 공간에서 선예도가 높은 결과물을 얻고 싶어 하는 남성영화라면 레드MX를 선호할 것이고 낮장면이 많고 소프트한 화면을 얻고 싶은 멜로영화라면 알렉사를 선택할 것이라는 게 조상윤 촬영감독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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