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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IVEW] 첫사랑은 힘이 세다

<사랑비>가 비로소 흥미로워진 이유는

2005년작 KBS 드라마 <웨딩>을 되돌아보자. 맞선으로 결혼한 부잣집 고명딸 세나(장나라)는 남편의 오랜 친구며 첫사랑인 윤수(명세빈)로 인해 속을 태운다. 자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혼으로 도피하려는 세나는 열쇠를 돌려주러 간 남편의 아파트에서 윤수의 방문을 받는다. 이미 들어왔으면서 “들어가도 돼요?”라고 묻는 윤수는 “그럼요 들어오세요. 우리집도 아니고…” 말꼬리를 흐리는 세나에게 굳이 “네…”라고 대답한다. 전작들에서 운명적인 첫사랑의 신화를 써내려간 오수연 작가지만 보다시피 <웨딩>에선 운명론의 비호를 받던 청초하고 순수한 첫사랑 그녀의 균열을 알렸으며 또 성장시켰다. 이쯤 되면 첫사랑 신화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은데… 한류 타깃인지 KBS <사랑비>는 첫사랑을 다시 호출했다. 윤석호 감독은 매 순간을 아름답게 박제하려 애쓰며 극본은 데칼코마니와 도돌이표 같은 극 구조로 운명이라는 리듬을 부여한다.

7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첫사랑 윤희(윤아)를 기억하는 서인하(장근석). 인하와 친구 동욱은 각자 윤희에게 ‘3초’ 만에 반하고 윤희는 부모님이 좋아하던 영화 <러브 스토리>의 대사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다’를 계시처럼 여긴다. 첫사랑 클리셰의 총망라라고 봐도 좋을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3초면 다음 신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라 시청하는 내내 ‘제발 그것만은! 으악!’ 등의 비명이 육성으로 터진다. 같이 보던 친구는 3초가 되기 전에 영화 <고지전>의 저격수 ‘2초’를 소환하라고 아우성이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닮았다’는 동욱의 고백에 ‘우리 부모님도 어릴 때 돌아가셨다’며 동류놀이하는 여주인공 얼굴에 화색이 돌아야 하는가는 여전히 문제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인 대목이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숨기고 고향으로 내려간 윤희와 그녀를 찾아간 인하 사이의 대화를 보자.

“그냥, 내 마음이 진짜가 아니란 걸 알게 됐을 뿐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 일기장을 보고 말하는 건 줄 모르고 그게 사랑인 줄 착각했어요. 그걸 알게 되니까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정말 소문처럼 인하씨와 동욱씨 둘 사이에서 장난친 거 맞구나.” “거짓말이잖아요. 내 말 끝까지 좀 들어줘요. 하고 싶은 말, 못한 말,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어요.” 거짓말? 아니 이건 진짜다.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도덕률을 지닌 콤플렉스 덩어리인 두 사람은 이전까지 극도로 수동적인 감정을 주고받는데 윤희의 저 대사는 일종의 자기애에 가깝던 껍질을 깨는 순간이다. 윤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며) 다시 돌아오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각자의 자식들은 우연히 만나 예의 그 3초를 변주한다.

인하의 아들 준(장근석)은 ‘아버지가 첫사랑을 잊지 못해 모두를 힘들게 했기 때문에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떠들다가 ‘우리 엄마는 첫사랑의 기억으로 행복해했으며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답하는 윤희의 딸 하나(윤아)에게 빠져든다. 오그라드는 손가락을 펴서 마저 이야기하자면, 어쨌거나 그 시절 껍질을 깬 윤희는 첫사랑이 아름다운 기억이며 하지 못한 말이 남은 인하는 첫사랑을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곧 정진영과 이미숙이 인하와 윤희로 재회할 것이다. 부모들의 사랑 vs 자식들의 사랑이라. <사랑비>는 재혼가정의 오누이나 첫사랑이 사돈풍의 가족극의 길을 갈 것인가? 신구 운명론이 부딪치는 멜로의 격전장이 될 것인가? 비로소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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