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목숨과 맞바꾼 <무서운 이야기>

이야기와 남은 목숨을 맞바꿔야 했던 셰에라자드만큼 공포영화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주인공이 어디 있을까. 민규동 감독은 그녀가 풀어낸 <천일야화>의 액자구조를 빌려와 영화 속 영화 4편을 열고 닫는다. 서걱서걱, 칼질 소리에 기척이 든 여고생(김지원)은 정체불명의 사내(유연석)에게 저당 잡힌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정범식 감독의 <해와 달>이다. 어미의 귀가를 기다리는 오누이에 관한 전래동화를 초고층 아파트촌에 입주시킨 이 영화는 문(門)과 선(線)으로 공포를 짓는다. 열린 문틈 사이로 공포는 침투하고, 관객은 어린 선이(김현수)와 문이(노강민)를 따라 문 뒤에 숨었다 다음 문으로 달음질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악몽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어른들의 분노 혹은 죄의식임이 밝혀지는 순간, 영화는 악질적 보복담에 머무르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임대웅 감독의 <공포 비행기>다. 연쇄살인마에게는 어떤 배경이 더 잘 어울릴까. 인적 드문 야외? 상공의 밀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신선한 선택인가를 놓고, 스튜어디스(최윤영)와 연쇄살인마(진태현)는 기내맞춤형 슬래셔 무비에 도전한다. 하지만 시도에 비해 결과는 심심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홍지영 감독의 <콩쥐, 팥쥐>다. <키친>으로 데뷔한 감독은 여전히 ‘식감’을 앞세운다. 핏기 어린 젓갈로 젊음을 유지하는 민 회장(배수빈)에게 공지(정은채)와 박지(남보라)는 서로 시집을 가겠다며 싸우는데, 자매는 그 화려한 식탁에 자신이 어떤 맛의 반찬으로 오를지 모른다.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가운데, 문제는 다른 가게에서 산 반찬으로 차린 밥상처럼 느껴지는 영화 자체다.

다소 무난한 세개의 이야기를 거친 뒤에야 네 번째 이야기, 곡사의 <앰뷸런스>에 탈 수 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미래로 간 영화는 이미 도래한 현재 혹은 과거에 대한 거울상이다.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딸과 그녀를 지키려 필사적인 어머니(김지영)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도 잠시, 좀비들의 습격이 이어진다. 그 폐허 속을 질주하는 ‘앰뷸런스’ 위로 시스템에 의해 버려진 것들은 유령이 되어 찰거머리처럼 들러붙고, 그 가운데 불안과 죽음의 정치가 고개를 든다. 이 신작에서 곡사는 과거의 문제의식으로 몇 걸음이나마 돌아간 듯하며, 다섯 이야기 중 시대적 공포에 대해 가장 고심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프로젝트의 성취는 전체보다 부분을 들여다봐야만 더 잘 보인다. 옴니버스를 전략적 형식으로 취하지 못하고 제작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틀로만 가져다 쓴 점은 아쉬우나, 각 감독이 견지해온 주제의식이나 스타일은 면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결과가 한국 호러장르에 새로운 불씨가 되리란 예측은 섣부른 듯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