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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베인이 옳다

3인3색 영화 수다- 영화평론가가 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미리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비긴즈>보다는 놀랍지만 <다크 나이트>에 비하면 덜 놀라운 영화다. <배트맨> 시리즈 특유의 웅장함과 비장함은 여전하지만, 영화적 폭발력과 철학적 성찰의 깊이는 <다크 나이트>에 한참 못 미친다.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만이 전편에 비견할 만한 성취를 보여줄 뿐이다. 물론 이는 조커(히스 레저)만큼 베인(톰 하디)이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 전무후무할 절대악인 조커를 기준으로 베인이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평가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또한 베인이 조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크리스토퍼 놀란이 몰랐을 리 없다. 놀란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원하는 것은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준 (<배트맨 비긴즈>로부터의) 엄청난 도약을 다시 한번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크 나이트>의 스펙터클에 <배트맨 비긴즈>의 서사로 회귀함으로써 시리즈를 안전하게 마무리하는 것에 가깝다.

전작들에 남겨진 미해결의 문제들을 끌어들이려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과거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원인이다. 조커가 지문을 없앨 만큼 자신의 ‘기원’을 무질서의 카오스로 남겨둔 채, 오직 현재의 시간으로 충만한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실천자였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인물들에게 현재는 과거에 청산하지 못한 채무관계의 연장이다.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과거, 혹은 기억. 즉,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실패하거나 그릇된 기원의 양피지 위로 새로운 기원을 덮어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물들의 영화다. 웨인/배트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화에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을 보라. 캣우먼(앤 해서웨이)이 몸 바쳐 일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 범죄 기록을 지우기 위해서이고, 미란다(마리온 코티아르)는 좌절된 아버지의 꿈을 현재에 이식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 8년 전 조작된 가짜 영웅의 힘을 빌린 거짓 평화에 빠져 있는 고담시 역시 기원을 수정해야 한다. 과거에 방점 찍기는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반전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비밀로 감춰뒀던 과거의 사연이 반전의 형식으로 분출할 때, 웅장했던 대서사시(epic)의 후광은 녹슨 서프라이즈 쇼로 전락한다. 놀란 생애 최악의 선택.

<배트맨 비긴즈>가 그러했듯, <다크 나이트 라이즈> 역시 신화적 서사의 길을 따라 배트맨을 신화적 존재로 완성한다.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시 반복되는 ‘감금’의 모티브는 이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함축한다. 지옥에 맞닿을 만한 깊이의 땅속 감옥. 하지만 구덩이 위로 보이는 아름다운 하늘, 그것이 잉태하는 자유를 향한 희망. 베인은 헛된 희망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것이 웨인/배트맨을 그곳에 가둔 이유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이러한 희망 속에 인민주의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척하지만, 실제로 이는 가장 반인민주의적인 결론을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하다. 프랑스혁명의 기운을 빌려 현대자본주의의 첨병인 금융자본을 짓밟는 베인의 인민주의를 배트맨의 인민주의와 대립시키는 놀란의 편견은 프리츠 랑이 <메트로폴리 스>(와 <M>)에서 보여준 정치적 판단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한다. 디카페인 커피와 같은 혁명, 즉 혁명의 냄새가 나지 않는 혁명을 향한 감상적 자유주의자들의 꿈. 마치 지하 감옥을 탈출하는 웨인/배트맨을 보며 열광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지옥의 감옥에서 죽어갈 수인들의 인민주의 같은. 결국, 제아무리 평범한 영웅을 치켜세우는 척하더라도 선택받은 소수를 위해 자신의 힘을 고갈시키고 말 헛된 운명에 대한 예찬. 다시금 말하지만, 헛된 희망은 지옥의 연장일 뿐. 어쩌면 베인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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