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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할리우드 액션의 탑건

토니 스콧 1944~2012

현지시각으로 8월19일 오후 12시30분경, 미국 캘리포니아 산페드로에 위치한 빈센트 토머스 다리 위에서 한 남자가 몸을 던졌다. 지나가던 누군가는 스포츠광의 별난 도전이라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이 세상에 붙들어둘 안전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두 시간 넘는 수색 끝에 로스앤젤레스 항만 경찰들이 그를 건져올렸다. 토니 스콧 감독이었다. 향년 68살. 비보가 알려진 뒤, 그와 <스토커>의 제작자 대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박찬욱 감독이 전해온 일화도 비감을 더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딱 한번 만났는데 목발을 짚고 나타난 거다.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한 거였다. 하도 많이 다쳐서 몸이 성한 데가 없는데 마지막 남은 성한 곳마저 다치고 말았다며 껄껄 웃더라.” 평소에도 암벽 등반이나 오토바이 타기 등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겼던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위험천만한 스턴트에 자신을 내맡긴 셈이다.

30년간 15편의 작품 남기다

그에게 최고의 스턴트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1995년 <크림슨 타이드>가 개봉했을 무렵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삶의 가장 큰 스릴은 연출”이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일이 아침에 일어나 영화 찍으러 가는 거다. 그 두려움이 내 원동력이다.” 그는 1983년 <악마의 키스>로 데뷔한 뒤 30년간 그 공포에 맞서왔다. 백전백승은 아니었지만, 그의 필사적 몸부림은 그가 만든 15편의 영화에 골고루 새겨져 있다.

그를 영화계에 끌어들인 것은 그의 맏형 리들리 스콧이었다. 자신을 따라 미술을 전공한 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자 했던 동생에게 형은 페라리라는 값비싼 미끼를 던졌다. 그렇게 형과 함께 광고와 뮤직비디오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다 할리우드에서 치른 첫 시험이 <악마의 키스>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관객과 평단 모두 그를 외면했고, 어느 제작사도 그를 찾지 않았다. 제리 브룩하이머만이 그를 알아보고 <탑건>을 맡겼다. 하지만 여전히 평단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2009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를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영국에서 온 광고쟁이들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스타일의 과잉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받았다.” 그러다 1993년 <트루 로맨스>가 나왔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본과 크리스천 슬레이터, 크리스토퍼 워컨 등 걸출한 배우들과의 협업 아래 탄생한 영화는 너무 단순해서 기이한 로맨스이자 박력 넘치는 액션영화로서 그간의 혹평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역동성과 서사의 힘으로 완성한 액션

그가 남성 액션 감독으로서 남다른 위상을 확립한 건 1998년작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때부터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스타일의 정제(精製)였다. 불필요한 대사나 소모적인 감정 묘사는 그의 영화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고, 정서가 아닌 행위, 양식이 아닌 서사의 힘이 그의 영화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스파이 게임>은 최적의 대사와 눈빛 교환만을 허용하는 과묵한 첩보물로서, 과유불급의 모범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작품 <데자뷰> <펠햄 123> <언스토퍼블>에 이르러 그는 극도로 경제적인 운용을 통해 자신만의 모멘텀을 체득한다. 숏의 절약이 심화된 만큼 서사의 가속이 붙으면서, 속도광으로서 그가 지닌 기질이 영화의 리듬으로 기입된 것이다. 세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시간과 싸움을 벌이는데, 영화의 시계는 결코 그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바로 그 엄격함이 이제는 유작이 되어버린 <언스토퍼블>에 이르러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유독물질을 싣고 시속 70km로 질주하는 화물열차 하나만 가지고 100분을 한 호흡으로 관통해버리는 이 영화는 속도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남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역작이다. 그외 그가 형과 함께 ‘스콧 프리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수십편의 영화와 <넘버스> <굿 와이프> 같은 드라마도 두꺼운 부록을 형성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력가속도에 몸을 실었다. <탑건2>와 <와일드 번치>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그와 함께 영원히 태평양 아래 잠들게 됐다. 그것은 누군가가 영화에 대해 그렇게 표현했듯, 계획된 사고였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그의 죽음에 그의 영화를 환기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의 친구 혹은 지지자들에게 그의 죽음이 유독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불과 이틀 전 그와 함께 <탑건2>의 촬영 후보지를 방문했던 톰 크루즈는 “토니는 나의 진정한 친구였으며 그가 정말 그리울 것이다”라고 깊은 상실감을 드러냈고, <탑건>과 <데자뷰>에서 함께했던 발 킬머도 “당신은 내가 함께 일해본 가장 마음씨 좋은 감독이었어요. 그리울 겁니다”라며 슬픈 마음을 전했다. “토니 스콧의 영화는 더이상 없다. 비극적인 날이다”라고 트윗을 남긴 론 하워드 감독에 이어 리처드 켈리 감독도 “토니 스콧은 최고의 멘토였다”고 애도의 메시지를 띄웠다. 감독이자 인간으로서 쉬지 않고 죽음과의 레이스를 벌여온 토니 스콧. 그의 무모하지만 감동적이었던 승부의 순간들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다음호인 870호에는 그의 팬을 자처하는 오승욱 감독의 추모기사가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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