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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스크린에 비친 현상학적 체험

제9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8월30일부터 9월7일까지 시네마테크 KOFA에서

<3 Open up>

지각은 이중적이다. 실제의 모습에 그대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감각을 통해 다른 것에 다가가려 애쓴다. 우리의 체험은 곧 지각이 되는데, 그렇기에 지각의 대상들은 우리 감각의 주관성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될 수 없다. 이 말을 조금 변형하려 한다. 우리의 눈이 카메라의 렌즈가 되고 지각의 대상은 피사체가 된다고 가정하자. 이때 스크린에 비친 환상이 바로 지각인 셈이다. 그러니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는 작가의 지각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8월30일부터 9월7일까지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리는 제9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 초대된 작품들을 살피며 이러한 현상학적 과정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변증법적이거나 행태주의적인 접근방식을 택한 작품을 찾기란 힘들다. 개별 작가들이 마치 후설이나 하이데거인 양 인간 의식에 나타난 현상을 충실히 포착했으며, 사변적 구성을 지우는 대신 직관에 의해 대상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회고전인 EX-Retro의 주인공은 구조영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니키 해믈린이다. 영국에서 그의 필름 15편이 공수됐는데, 그중 <4개의 루프>는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년간 쌓아온 그의 필모그래피는 대다수 영화의 기본 요소들을 실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프레임에 관한 실험을 한 <4개의 토론토 영화>나 빛과 시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친 농업> 같은 비교적 최신작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성향이다. 고정된 카메라의 단일 시점을 통해 현상은 애니메이션화되고, 이에 작가의 감각적 시간과 시각이 화면에 새겨진다. 한눈에 보이는 소재의 단순함과 영화 형식의 아이러니가 영화를 오히려 풍성하게 만든다.

<성수태고지>

인디비주얼 섹션에 참가하는 노재운과 입육유는 서로 다른 입지에서 아방가르드적 작가들이다. 우선 미디어 아티스트이며 홍콩에서 예술교육자이자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입육유의 작품들은 유미주의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금욕적인’ 측면을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 아니다. 그는 남들의 레퍼런스들을 빌려오고 재조합하며, 때로는 상징적인 흔적만을 남기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 교훈적 결과들을 끌어내는데, 이런 측면에서 올 영화제에서 가장 현상학과 동떨어진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한편 노재운의 작품들은 조금 더 ‘껍질’과 연관을 갖는다. 그는 <3 OPEN UP>이나 <보드리야르 인 서울> <콜링>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국의 표면을 훑거나, <다이아몬드는 여성의 가장 친한 친구>나 <여성의 정체>처럼 고전영화의 이미지들을 채집해 몽타주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이때의 몽타주는 영상의 입자를 쪼개는 방식이 아니라 쌓아가는 데에 더 가깝다. 시간을 적분하고 개념을 조합하는 노재운의 영상물은 세계를 그대로 담지 않고, 대신 스스로의 안에서 새롭게 창조해낸다.

<친 농업>

경쟁부문인 EX-Now 섹션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시간과 공간, 스토리의 변형이 바로 그다. 사건의 흐름을 중시하는 작품으로는 로리 펠커의 <건너편 아래로>와 박민하의 <단동 여행기>, 에이야 리사 아틸라의 <성수태고지>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개별적 상황들을 나열한 뒤 집합시키거나, 추상으로 분리했다가 다시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패턴으로 스토리에 집중한다. 공간의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업은 국내 작가 변재규의 <리멤버링>과 박병래의 <째보리스키 포인트>를 비롯해, 신야 이소베의 <에덴>, 이자벨 톨레나에레 <비바 파라디>, 존 프라이스의 <바다연작 #10>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조인한 작가의 <2월>에서는 빛과 시간의 상관관계를, 벤 포인테커의 <지구>를 통해서는 순간의 생명력에 대해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