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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9월21일부터 27일까지 롯데시네마 파주아울렛 등에서

<그리고 싶은 것>

<팔레스타인 점령의 적법성에 대한 보고서>

<핑퐁>

기록하다. 사전에 따르면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다. 다큐멘터리의 기본은 이 동사를 실천하는 일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들도 나름의 이유와 방식으로 어떤 사실들을 전하고 있다. ‘평화, 생명, 소통’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9월21부터 27일까지 롯데시네마 파주아울렛 등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일대에서 열릴 이번 영화제에서는 30여개국에서 온 110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투쟁에 대한 기록물로서의 다큐멘터리 다수가 눈에 띈다. <아이웨이웨이: 난 멈추지 않는다>와 <그리고 싶은 것>은 정치적 외압에 시달리는 예술가들에 대한 지지선언과 같다. 앨리슨 클레이먼 감독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중국의 ‘용자’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와의 동행을 자처한다. 공산당의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린 베이징올림픽에 중지를 먹이고, 쓰촨성 지진 때 부실공사 건물 아래 깔려죽은 수천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파헤치는 그에게 사람들은 두렵지 않느냐고 묻는다. “두렵다. 근데 진짜 두려운 게 뭔지 알기 때문에 용감해질 수 있는 거다.” 그의 우직한 태도는 카메라에까지 전염돼 있다. 권효 감독이 뒤쫓는 그림책 작가 권윤덕도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어릴 적 성폭행을 당했던 자신의 경험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낸 <꽃할머니>에 한국과 일본의 출판사들은 수차례 수정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가 그녀들의 상처를 더 후벼파는 것만 같다. 지난한 대화를 견뎌내는 그녀의 목소리를 감독은 담담하고 신중하게 경청한다. 그런가 하면 평정심을 내다버리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다. 마이클 콜린스 감독의 <내일이 온다면>이 대표적이다. 만나본 적도 없는 소녀들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필리핀의 19살 청년 파코 라라냐가. 그를 놓고 벌어지는 초등학생들의 말싸움만도 못한 법정 공방을 목격하고 있자면 카메라라는 무기가 솜방망이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팔레스타인 점령의 적법성에 대한 보고서>의 라아난 알렉산드로비치 감독도 무심한 역사를 대신해 자신만의 청문회를 마련했다. 감독은 팔레스타인에 불도저식 난입을 진행한 이스라엘 군부 소속 법무관, 판사들을 앉혀놓고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그들은 뒤에 영사되는 자료영상에 의해 과거로 소환된다. 핵심은 그들에게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또박또박 설명하는 장면이다. 피해자를 직접 마주한 권력자들은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는데, 그 클로즈업들만으로도 값진 작품이다.

한편 매키 앨스턴 감독의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은 현대판 욥기다. 커밍아웃한 게이 주교 로빈슨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만큼 파트너 마크와의 사랑도 믿는다. 하지만 공포정치에 능수능란한 영국의 성공회교는 그의 두 가지 사랑이 교회까지 분열시킬 것이라며 다른 주교들을 협박한다. 이 부당한 싸움은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인내심을 잃지 않는 로빈슨의 맑은 표정이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다.

물론 정치로부터 한발 떨어져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중 휴 하트포드 감독의 <핑퐁>은 단연 쾌활한 울림을 전한다. 각국을 대표하는 80살 이상의 탁구 대표선수들이 세계탁구챔피언대회 메달을 놓고 겨루기 위해 중국에 모였는데, 그중 시드니에서 온 100살 먹은 할머니의 정적인 플레이가 압권이다. 뛸 힘이 없어 손이 닿지 않는 공은 아예 칠 생각도 않지만 테이블 중앙을 지키고 선 자태만으로도 비상한 힘을 느끼게 한다. 실로 시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르신들은 마지막 행복을 누리는 데 충실하다.

‘무엇을’ 기록했는가가 중요한 다큐가 있고 ‘어떻게’ 기록했는가가 중요한 다큐가 있다. 올해 상영작들 중에는 전자가 많다. 후자에 대한 고민이 아쉽지만, 그 ‘무엇’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작품들이 있어 그들을 추천했다. 동시대적 사건에 무관심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일람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