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so what
[SO WHAT] 편견의 유령들
전계수 2012-10-19

최근 우리의 독도와 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로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일장기와 일본 제품이 불태워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원정 온 극우단체 회원들이 백주에 위안부 소녀상 앞에 말뚝을 꽂는 등 온갖 파렴치한 작태들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 나는 이런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최근 벌어진 영유권 갈등의 핵심에는 동북아 삼국의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편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국가간의 상호 조약이나 국제 법령 등을 어느 때든 편의적으로 무시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막무가내로 징징거리는 교양없는 이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일본인들을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저열한 역사의식으로 아직도 남의 땅을 기웃거리는 후안무치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중국은 일본을 사악한 사기꾼으로, 일본은 중국을 무지한 무뢰배로 여기는 듯하다. 동북아에 널리 퍼진 이러한 편견의 유령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끊임없는 갈등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리고 있다.

편견에 대한 얘기에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10년 전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2년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일본인 동료들은 하나같이 친절했고 내게 우호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일본에 가기도 전 솔선해서 독신자 아파트를 알아봐주고 나와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 한국어와 한국 역사 공부를 시작한 동료가 한명 있었다. 그는 내가 일본에서 체류하던 내내 아낌없는 선의를 베풀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그와는 거의 매일같이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한국에도 대여섯번 놀러왔었다.

5년 전인가, 한국에 놀러온 그를 데리고 청계천에 갔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청계천 주변은 사람이 정말 많았고 이리저리 흥청거렸다. 청계천 끝자락에 위치한 그의 숙소로 가던 길에 그가 무심코 이런 말을 던졌다.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늘 쓰레기가 많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쓰레기가 있죠”라고 대꾸했다. 그랬더니 그가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특히 더 많아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평소 그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매우 불쾌했다. 그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일본인이라 여겼던 그의 입에서 이런 썩은 편견이 툭 튀어나오다니. 나 역시 그에게 일본에 대해 썩은 농담을 하나 던지고 싶었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랬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친구의 멘털을 붕괴시킬 만한 치명적인 농담을 던지지 못했던 내가 지금 생각해도 분하고 등신 같다.

아무튼 한국을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그 친구도 무의식 속에 그런 생각들이 새겨져 있는데 한국에 무지한 다른 일본인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며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난다. 편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영국이 프랑스를 비웃고 프랑스가 독일을 조롱하면서도 서로 낄낄거릴 수 있는 건 스스로도 그게 편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생기는 여유일 것이다. 동북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이렇게 낄낄거리는 날은 올 수 없는 것인가?

아니 근데 그건 그렇고 가카는 왜 독도를 느닷없이 방문해서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고 이 분란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그 저의는 알겠다만 정말 막판에 여러 가지로 지랄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