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노래가 만들고 싶을 때
김중혁(작가) 일러스트레이션 비올라(일러스트레이션) 2012-12-14

3호선 버터플라이 <끝말 잇기>

한가한 시간은 언제쯤 찾아오는 것일까? 하던 일을 재빨리 마무리 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된다. 아,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그럼요, 간단하고 말고요. 참, 말이 쉽다. 한가한 시간은 쉽게 찾아오는 법이 없다. 하던 일이 끝날 때쯤이면 숨어 있던 일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더지들처럼, 아무리 뿅망치를 내리쳐도 끊임없이 올라온다.

일의 진공 상태,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순간이 불현듯 찾아오면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내 경우엔 자주 바뀌는데, 한때는 컴퓨터 게임을 했다. 장대한 서사가 있는 게임은 좋아하지 않았고, 야구나 축구나 테니스, 총격이나 격투기 게임처럼 짧은 시간 안에 승부가 결정나는 종류를 좋아했다. 대여섯 시간 동안 격렬하게 게임을 하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되고 눈알이 빠질 듯 아프고 어깨가 쑤셔온다. 한번은 닌텐도 <슈퍼마리오> 게임을 3일 동안 쉬지 않고 한 적이 있는데, 얻은 것은 게임의 완전공략과 손가락의 순발력과 허무함이요, 잃은 것은 시간과 시력이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았다. 이젠 눈도 아껴야겠고, 어깨도 잘 보존해야겠기에 일의 진공 상태를 다른 것으로 메우고 있다.

가끔 음악을 만들어볼 때가 있다. 이것만큼 시간 잘 가는 게 없다. 우선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여본다(반대가 될 때도 있다). 멜로디에 맞춰 가사를 바꿔 쓰고, 가사에 맞춰 멜로디도 바꿔본다. 이러면 네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다. 가사와 멜로디가 완성됐으면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어본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기타밖에 없으므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드럼을 깔고, 피아노를 깔고, 기타를 녹음하고 나면, 우와 다시 여섯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다. 자야 하는데, 도저히 잘 수가 없다. 노래를 불러야 한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보면 다시 가사를 바꾸게 되고, 멜로디를 바꾸게 되고, 노래는 왜 이렇게 못하는지, 몇 번째 다시 부르는 거야 이거, 다시 들어보고, 다시 부르고, 기타를 또 녹음하고, 이러다보면 밤을 꼬박 새운다. 완성된 노래는 엉망진창이지만 어쩐지 뿌듯하다. 노래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예상외로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진 못할 테지만, 세상에는 결과가 아닌 과정만으로도 흥미로운 일들이 많다. 어쩌면 모든 예술작품이 그럴지 모른다.

노래를 듣다보면 만만한 곡들이 있다. 어라, 이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노래들이 있다. 최근에 들었던 노래 중에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끝말 잇기>가 그랬다. 재미있고 쉬운 노래다. 앨범의 다른 곡들과는 사뭇 다르다. 막상 마음먹고 노래를 만들다보면 (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라서) 좌절하고 말지만 누군가에게 노래를 만들고 싶게 만드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노래도 아니고, 닿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노래도 아닌, 누군가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노래를 만드는 일은 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