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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이탈리아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베니스영화제 80주년 기념 ‘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 추천작 8

2012년 제69회 베니스영화제의 주요 작품들을 서울에서 보게 됐다. 모두 21편인 상영작은 세 부문으로 나눠 있다. 올해 베니스의 상영작 가운데 이탈리아 작품들을 선보이는 ‘베니스 69’, 그리고 고전들을 새로 복원해 공개하는 ‘베니스 클래식’, 마지막으로 올해의 8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고전이지만 희소성을 가진 작품들을 묶은 ‘80!’ 등이다. 이탈리아영화의 현재, 그리고 고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행사는 개관 10주년을 맞은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으로, 12월12일부터 2013년 1월6일까지 진행된다. 상영시간표는 127쪽 참조.

<특별한 하루> 감독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 2012년 / 89분 / 컬러 / 15세 관람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지나는 연예인 지망생이다.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왔는데, 유력 정치인이 돕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의 일정이 자꾸만 연기되는 바람에 지나는 한없이 기다리는 입장에 놓인다. 그날 지나를 호송하는 젊은 운전사가 마르코다. 거의 하루를 함께 보내며, 냉담하던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는데, 바로 그때 정치가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 프란체스카 코멘치니는 멜로드라마에서 매력을 드러내는 감독이다. 그녀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02년 제노바 서방 8개국 정상회담 반대 시위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청년에 관한 다큐멘터리 <카를로 줄리아니, 청년>을 발표하면서였다. 다큐멘터리이지만 어머니와 아들의 사랑을 강조한 멜로드라마 형식이 돋보였다. <특별한 하루>도 멜로드라마로, 지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사이, 이탈리아의 계급 갈등, 세대간 착취, 연예계와 정치계의 오염된 결탁 등의 문제들도 성찰하게 만들고 있다. 프란체스카 코멘치니는 이탈리아 코미디의 거장인 루이지 코멘치니의 딸이다.

<아들이었다>

<아들이었다> 감독 다니엘레 치프리 / 2012년 / 90분 / 컬러 / 15세 관람가 다니엘레 치프리 감독은 현재 이탈리아의 가장 뜨거운 감독 가운데 한명이다. 혼자 활동할 때보다는 ‘치프리와 마레스코’라는 이름으로, 프랑코 마레스코와 공동연출할 때 더 유명하다. 두 사람은 모두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출신인데, 사진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중 1995년 지금은 컬트가 된 작품인 <브루클린의 삼촌>을 발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아들이었다>는 다니엘레 치프리의 단독 연출작으로, 올해 베니스의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역시 팔레르모를 배경으로, 1970년대의 어느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피아가 무심코 쏜 총에 딸이 맞아 횡사하자 아버지는 낙담한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가장과 가족 모두는 들떠서 돈이 도착하기 전에 사채를 빌려 쓰기 시작한다. 치프리 특유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풍자가 돋보이는 블랙코미디다. 사진작가 출신인 치프리의 감각적인 화면잡기 솜씨는 여전하고, 주연 토니 세르빌로의 연기는 압권이다.

<잠자는 미녀>

<잠자는 미녀>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 / 2012년 / 110분 / 컬러 / 15세 관람가 실제로 17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았던 어느 여성의 마지막 6일 동안 일어나는 네 가지 사건이 서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안락사’의 테마가 네 이야기 모두에 들어 있다. 죽으려는 여성과 그 죽음을 막으려는 남자 의사, 의식불명에 빠진 딸을 구하려는 스타 여배우, 당의 지시에 반하여 자신의 뜻에 따라 투표하려는 상원의원, 광기에 빠진 동생을 돌보며 식물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투약에 찬성하는 시위를 벌이는 청년 등 네 사람의 에피소드를 묶은 것이다. 현 이탈리아 영화계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노장인 마르코 벨로키오의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사회문제를 들춰내는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고, 마음의 아픔을 그려내는 감성은 아찔할 정도로 깊고 넓다. 매력적인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토니 세르빌로(상원의원), 이자벨 위페르(스타 여배우), 마야 산사(죽으려는 여성), 알바 로르바허(상원의원의 딸) 등이 출연했다. 촬영은 <아들이었다>의 감독인 다니엘레 치프리가 맡았다.

<팔코네 기숙사> 감독 파스쿠알레 시메카 / 2012년 / 30분 / 컬러 / 12세 관람가 파스쿠알레 시메카 감독은 시칠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 진보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2002년 자본주의 진영의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 맞서, 반자본주의자들이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한 ‘세계소셜포럼’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담은 일련의 작품들로 진보적 영화인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극영화에도 참여해 2000년 이탈리아 노동조합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코를레오네 플라치도 리초토의 살해사건을 그린 장편 <플라치도 리초토>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팔코네 기숙사>는 30분짜리 단편으로, 반마피아 행정을 주도하다 살해된 조반니 팔코네 판사의 이름을 딴 기숙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제 11살인 안토니오는 장학금을 얻어 팔레르모에 있는 팔코네 기숙학교로 간다. 축하받을 일인데, 막상 도착해보니 어려운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감히 팔코네의 명예에 반하는 행동을 꾀한다.

<마테이 사건>

<마테이 사건> 감독 프란체스코 로지 / 1972년 / 116분 / 컬러 / 15세 관람가 1970년대 이탈리아 정치영화의 대표작이자, 올해 베니스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프란체스코 로지의 대표작이다. 엘리오 페트리의 <노동자 계급 천국에 가다>와 함께 1972년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공동수상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이탈리아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국영에너지회사의 대표 엔리코 마테이의 삶을 다룬다. 서방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인 위치를 갖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행보를 자주 보였던 마테이는 승승장구하던 1962년 갑자기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사고원인이 공중폭발인지(살인), 추락인지(사고사)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사건이다. 로지는 취재, 다큐멘터리, 재구성 등의 형식을 섞어 마테이 사건의 진실을 관객에게 묻고 있다. 엔리코 마테이 역으로 나온 배우는 장 마리아 볼론테로, 로지와 더불어 좌파 영화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에겐 <황야의 무법자>(1964)의 악당 역으로 더 알려져 있다.

<돼지우리>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 1969년 / 99분 / 컬러 / 청소년 관람불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대표적인 알레고리 드라마다. 두개의 에피소드가 연결돼 있다. 먼저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황야를 돌아다니는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처음에는 황무지에서 뱀, 곤충 등을 먹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고, 그의 살과 피를 먹는 식인을 배운다. 그의 식인 행위는 점점 발전하고, 결국 이웃의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이 청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이런 말을 유언처럼 남긴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사람을 먹었으며, 그 기쁨에 몸이 떨린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현대의 독일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돼지와 수간을 하는 변태 청년이 주인공이다. 물론 그의 성적 기질은 비밀이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 전력이 있는 갑부로 재산 늘리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다른 나치 출신 사업가와 기업합병을 축하할 때, 청년은 돼지우리에서 수간을 시도하다, 그만 돼지들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식인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의 특성에 대한 통렬한 비유이다.

<마지막 밤>

<마지막 밤> 감독 유리 라이즈만 / 1936년 / 100분 / 흑백 / 12세 관람가 유리 라이즈만 감독은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뒤인 1924년에 감독으로 데뷔했고, 불과 26살에 만든 장편 <대지는 목마르다>(1929)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서방에까지 알려졌는데, 특히 ‘10월 혁명’ 20주년에 맞춰 발표한 <마지막 밤>은 지금도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받는다. 1917년 10월의 그날을 배경으로, 두 가족, 곧 노동자 계급 가족과 부르주아 계급 가족에 의해 관찰되는 혁명의 사건들이 대조된다. 두 가족 사이에 위험한 사랑이 끼어드는 멜로드라마적 요소도 들어 있다. 그날은 한 가족에게는 옛 질서가 무너지는 마지막 밤일 것이고, 또 다른 가족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최초의 밤일 것이다. 라이즈만 특유의 서정적이고 심리적인 묘사는 혁명의 영웅적 성격 못지않게 개인의 정서적 파장에도 강조점이 찍혀 있다. 영화제쪽이 소유하고 있는 희귀본으로, 전쟁 이후에도 냉전의 분위기를 넘어 동구권과도 꾸준한 관계를 유지해온 베니스의 전통을 짐작할 수 있다.

<닫힌 페이지>

<닫힌 페이지> 감독 지아니 다 캄포 / 1968년 / 98분 / 흑백 / 12세 관람가 지아니 다 캄포는 영재 소리를 듣던 감독이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거의 잊혀져 있다. 영화도 겨우 세 작품만 만들었다. 1986년 <곡식의 냄새> 이후 지금까지 신작을 내지 않고 있다. 대신 그는 추리작가인 조르주 심농의 전문가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닫힌 페이지>는 23살 때 만든 장편 데뷔작으로, 이른바 ‘68 혁명’ 시기의 이탈리아 청년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부모가 이혼하며 아들을 가톨릭 기숙학교로 보내버리는데, 아들은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억압에 시달린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이곳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아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가족과 교회가 억압적인 제도의 상징으로 비판되는 작품으로, 발표 당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장 비고의 <품행 제로>,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그리고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오마주의 작품으로도 읽힌다. 역시 베니스가 보관하고 있는 희귀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