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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문화혁명: 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
2002-01-31

신기루에 바친다

유럽 문화사에서 르네상스라든가, 록음악에서 60년대처럼 모든 것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순식간에 절정까지 치닫는 시기가 있다. 과거의 낡고 획일적인 관습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혁명의 시간이. 할리우드에서 그런 시절은, 70년대였다. 세계를 휩쓸었던 68혁명의 여진에 힘입어 프랜시스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 ‘영화의 자식들’은 할리우드를 접수했다. 이미 거대한 공룡이 되어 비틀거리던 할리우드가 살아남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낡은 것은 모두가 사악하다`란 명제로 `올드 할리우드`에 덤벼든 `영화의 자식`들은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자유롭고, 실험적이며 `개인적`인 메이저 영화를 만들어냈다.<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지 라이더> <라스트 픽처 쇼> <대부> <매쉬> <내쉬빌> <천국의 나날들> <재즈의 모든 것> <애니 홀> 등등. 그러나 할리우드의 문화혁명은 권불십년으로 마감했다. 그들의 동료였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선도한 블록버스터의 위력에 휘말려 패퇴하고, 할리우드는 다시 공산품 생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헐리웃 문화혁명>은 영광스러운 시기였던 70년대의 백서다. 이 책에는 워런 비티가 영화사 사장의 발밑에 엎드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제작비를 구걸할 때부터 `올드 할리우드`를 경멸하던 동료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였고 동시에 제도권이었던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의 구세주로 등장하는 과정, 코폴라와 그의 영화사 조트로프사의 흥망성쇠 등 70년대 할리우드의 앞과 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욕설이 난무하는 일상대화, 감독과 배우의 적나라한 스캔들, 제작사와 감독의 애증,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장들의 관계가 거침없이 전개되어 읽다보면 환멸을 느끼고, 한숨을 짓다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일면 순진하면서도 강박과 일탈, 분노로 가득했던 70년대의 영화는 바로 그들의 삶이기도 했던 것이다.<프리미어>와 <아메리칸 필름>의 편집장을 지낸 저자 피터 비스킨트는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스튜디오 직원은 물론 영화인의 친인척까지 할리우드의 수많은 인물들을 직접 만나, 선정적이며 공격적인 질문들을 던져 받아낸 모든 이야기를 <헐리웃 문화혁명>에 풀어놓았다. 영원한 친구도 동지도 없는 복마전 할리우드의 생생한 일화를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담아놓은 <헐리웃 문화혁명>을 읽고 나면, 할리우드가 어떤 곳인지 조금 감이 온다. 데이비드 린치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말하듯, 할리우드는 누구나 꿈꾸는, 그러나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신기루인 것이다. 영광스러운 70년대는 또한 자신의 재능에 취한 거장들이 스스로 자멸해가던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어떻게 보면 <헐리웃 문화혁명>은 흥밋거리인 가십의 연속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는 가장 소중하게 다뤄진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노심초사하는 광대의 불안한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섹스와 마약, 로큰롤 세대라는 말처럼 그들의 `도발적`인 일상은 곧 그들의 영화세계였고, 스스로를 파멸시켜갔다. 그걸 읽는 기분은 <부기나이트>를 보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만을 담아낸 <헐리웃 문화혁명>은 저널리즘이 영화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헌사다. (시각과 언어 펴냄)김봉석/영화평론가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