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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 판(版) Weekly Note 2002
2002-01-31

내 마음의 수첩

어머 이 사람 참 실속있다…. 웬 수첩을 들고 아내가 기분좋아 한다. 국회의원 손학규 후원회에서 보내준 이 수첩에는 맨 앞장에 손학규의 캐리커처와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디서든 늘 주인되시길)라는 문구말고는 여느 일반 수첩과 다름이 없고 부록내용은 오히려 더 실하다. `정치`와 연관하여 도대체 무슨 실익은 누려본 적이 없고 전교조 전력 탓에 오히려 주변 교사들에게 `연대 책임으로` (개혁) 정치권 부실을 추궁당하는 일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졌을 아내로서는 모처럼 편하게 반색일 터다. 맞아 그 선배. 괜찮은 사람이지. 인사동에서 술친구로 만나도 옛날과 똑같아. 정말 표변이란 걸 모르는 정치인이라구…. 나는 그렇게 답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구, 무슨 `후원회` 수첩을 들고 다니면 오해받거나 정치패로 몰리는 때 아닌가. 그래서 그냥 두고 손학규의 겸손한 실용주의에 그냥 감탄만 하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수첩 겸 글 메모용 노트를 딱 한권 가졌으면 좋겠다는 열렬한 소망이 있으나 데뷔 22년이 돼서도 가져보지 못한, 그 점에서는 2중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선 어지간한 건 맘에 안 든다. 비싼 건 너무 가죽 번드르르해서 싫고 싼 건 종이의 투박한 나신(裸身)이 싫다. 무엇보다 툭하면 잃어버리는데, 그게 노이로제가 되면 시상(詩想)이고 설상(設想)이고 잡상(雜想)이고, 소실될까봐 두려워 아예 떠오르지를 않는다.그러면 소망을 이룰 방법은 딱 하나. 노트가 실할 뿐 아니라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마치 애인처럼 품고 다니느라 잃어버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수첩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짜라면 황감한 마음까지 겹쳐 절대 잃어버릴 리 없겠고…. 디자인 전문업체 크레는 일찍부터 내 소망을 이뤄줄 ‘업체’로 찍혔었다. 이 회사 대표 최만수는 디자인 실력이 초일류급인데다 성격은 정말 만만해 보일 정도로 착했던 것. 초일류라는 건 내용보다 디자인이 너무 근사해서 소문났던 졸저 <풍경이 있는 음악>, 그리고 내용보다 활자가 전화번호부보다 적은데도 너무 예뻐서 소문났던 <김정환 시집 1980-1999>가 모두 디자이너 황경희씨와 크레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건 술마셔 보면 알 테고. 어쨌거나 그렇게 알게 모르게 조른 지 3년짼가? 그 수첩이 정말 왔다. 다행히도, 판매용이다. 나도 이제 잡문말고 시의 물꼬가 좀 트일라나. 감사 또 감사….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