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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이건 모두 내가 방송국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이다”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3-01-04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의 장항준 작가

첫 방송 시청률 6.5%. 명실공히 3사 꼴찌 출발이다. 김명민 주연, 장항준 시나리오도 소용없었다. 방송 16회차, <드라마의 제왕>은 10%도 넘지 못한 채 7~8%를 감질나게 오가고 있다. 드라마 속 앤서니 김이라면 차마 용납 못할 수치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점에 비해 해결책은 김빠지고, 그 자리엔 구태의연한 멜로와 불치병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드라마판의 폐부를 깊숙이 파고들어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시청자를 옭아맸던 초반의 기세에 비하면, 이건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신선하고 장점이 많은 작품이 <드라마의 제왕>이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집필을 한 장항준 작가(이 경우엔 감독이 아니라 작가 타이틀)를 만나 따져 물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직원들 모두 쉬는 마포의 오피스텔을 찾았다.

-선거날도 촬영을 접었다. 크리스마스이브도 챙기고. 그렇게 다 쉬고도 일정에 차질은 없는 건가. =빨리 쓰는 편이다. 빨리 결정내리고 빨리 가고, 아니다 싶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고 그런다. 이번엔 전작에 비하면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싸인>은 텍스트 삼을 만한 게 없는 데다 장소가 워낙 많아 힘이 들었다. 산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바다에 뭐가 떠 있고 이러니 정말 왔다갔다 했다. 뭔가에 막 쫓기는 기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엔 쉬운 편이다. 물론 나름대로 쉽지 않은 점도 있다. 시청률이 이렇게 안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웃음)

-그러게 말이다. 김명민이라는 흥행카드도 안 통한 거다. =안 그래도 김명민씨한테 전화가 왔다. “감독님,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더라. 그래서 “뭐가요?” 했더니, “(시청률 수치) 앞에 1이 빠진 것 같아요” 하더라. (웃음) 1회, 2회 때는 나도 놀랐다. 상상도 못할 시청률이 나오니까 ‘이거 뭔가 잘못됐나. 내가 잘못 봤나’ 싶었다. 방송국 반응도 좋아서 가면 갈수록 올라갈 줄 알았다. 안 올라가더라. 내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좀 충격이었다. 본부장님이 시청률 확인하다가 연락해서는 왜 이런 것 같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본부장님이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경험이 더 많으시니까. 길을 가르쳐주세요” 하고 선수쳤다. 그분은 괴로울 텐데, 난 어차피 더 내려갈 데도 없으니 지금은 맘이 편하다.

-MBC에서 <마의>를 방송하니, 대진운도 좋지 않다. 사극 지존 이병훈 PD가 역시 세긴 센가보다. <마의>는 이병훈 PD의 전작에 비해 호불호가 엇갈리는데도 높은 시청률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번엔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웃음) 이분(이병훈 PD)이 이제 내려가시는구나 했다. 그래서 쭉 내려갈 때 탁 치고 나가려고 했는데. 거장을 꺾는 맛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웃음) 우리끼리는 그래도 ‘평가는 좋아’ 하는데, 시청률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으니까.

-그래도 호평을 하자면, 초반 전개가 엄청나다. 스피디하게 드라마 제작을 둘러싼 방송가의 뒷이야기를 긴박하게 구성했다. 어디까지나 초반만 놓고 보면, 이번 작품은 정말 물건이다 싶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거기까지는. (웃음) 내가 원래 성격이 급해서 이야기가 머물러 있는 걸 잘 못 본다. 이야기가 막 진전되어야 한다. 방송국 편성받는 이야기가 다른 드라마 같으면 전회 분량이 될 수도 있는데 스피디한 걸 좋아하다 보니 단기간에 치고 나가는 거다. 이게 18부까지 가니 이야기가 서로 붙어 혼란스럽고 패턴이 반복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시청자가 지치는 거다. “도대체 드라마는 언제 찍냐?” 이런 반응이 오는 거다.

만드는 입장과 보는 입장 사이의 벽

-지적한 대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 형식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이 패인의 하나다. 복잡한 문제는 끊이지 않는데, 해결 방식은 앤서니가 나서서 쉽게 정리하다 보니 긴장감이 사라졌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이걸 꼭 밟고 넘어가야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시청자가 느끼기에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거장이 돼버렸다. 만드는 입장과 보는 입장 사이에 근본적으로 벽이 있는 것 같다. TV는 TV로,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이 있다. 왜 우리가 그 이면의 이야기를 봐야 하는지, 복마전 같은 권력 싸움이나 비리 같은 더러운 꼴을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애초 멜로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멜로가 전개된다거나, <추적자>처럼 악당을 단죄해야 하는 목표의식도 없어 보이는데 이런 문제들이 나오니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

-앤서니가 드라마판의 현실을 담은 캐릭터라면 정의를 구현하는 이고은 작가(정려원)는 판타지형 인물이다. 연예인병을 가진 강형민(최시원) 같은 과장된 캐릭터도 가세한다. 각각의 다른 세계를 가진 인물을 보는 재미가 장점이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쉬 어우러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맞다. 그게 문제다. 튀는 캐릭터가 많은데 이들을 융화시키는 게 쉽지 않더라.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모두가 성장한다’ 그리고 ‘각자의 캐릭터는 우리 업계, 우리 사회의 인물을 대변한다. 좋건 싫건 우린 이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단순하다. 정글 같은 방송가의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국이 대상이지만 여기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을 담는 거다. 시청자가 가장 가깝게 접하는 TV 브라운관에 나오는 드라마의 이야기에 그걸 투영하고 싶었다.

-이 드라마 속 드라마 <경성의 아침>을 만들 때, 이고은 작가가 고수하는 드라마의 법칙은 작가로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원칙이기도 할 것 같다. =그렇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십수년 동안 로맨틱코미디와 멜로의 시대였다. 그 홍수 속에서 다른 장르는 거의 없어져버렸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갈증이 생겼다. 나도 매해 좋아하는 로맨틱코미디가 없지 않지만, 다들 그것만 만드는 상황은 조금 이상하다. <위기일발 풍년빌라>와 <싸인>도 기존에 그런 색깔의 작품이 없어서 하고 싶었던 거다. 한데 지금은 판이 바뀌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많이 나왔다. 케이블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질적인 면에서 케이블 드라마가 훨씬 작품성이 뛰어난 경우도 많다. 메이저 방송사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과 좀 다르다. 난 결국 방송 3사가 예전의 경쟁력을 잃을 거라고 본다. 예전엔 케이블 시청률 10%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은 그 수치에 심심치 않게 육박한다. 3사가 나눠 가지는 파이가 절대적으로 작아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럼 이 판을 향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창작자는 자의든 타의든 현실을 직시하고 그걸 계속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걸 어떻게 바꾸시오, 하는 말은 못하겠다. 물론 주 몇회로 바꾸자, 이런 디테일한 부분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청회 가면 꼭 말할 거다. 드라마를 이렇게 많이, 자주 트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그만큼 상황이 열악하다. 오늘 찍어서 오늘 내보내고. 근데 놀라운 건 이렇게 만드는데 우리 드라마는 한류를 형성했다. 정말 궁금한 건 이 부분이다. (웃음)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우리 드라마는 미드나 일드가 가지지 못한, 욕구불만을 박박 긁어주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빠른 피드백 때문이다. 댓글이나 반응을 보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쪽으로 바꾼다. 입맞에 맞추다 보니 잘 팔리는 것이 당연하다. 영화처럼 내놓고 ‘이거 한번 먹어봐’가 아니라, ‘먹어봤는데 별로인 것 같은데’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다시 요리를 한다. 이게 한국 드라마다. 난 최대한 그걸 지양하려고 하지만, 100% 이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막바지다. 이젠 매듭짓는 일만 남았다. <싸인>에서 박신양의 최후가 논란이었는데, 이번엔 좀 쉽게 가나. =이번에도 욕 좀 먹을 것 같긴 하다. 해피엔딩이긴 한데 모든 거 다 잃고 해피엔딩이다. <싸인> 때도 박신양은 죽는 걸로 가자는 건, 신양이 형 캐스팅하자마자 이야기한 거다. 우린 원래 예정되어 있던 건데 사람들은 그걸 반전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게 시청자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 것 같다.

멜로 라인, 혹시 외압인가

-반응이 저조할 땐, 극약처방을 쓰지 않나. 앤서니 김이라면 이대로는 안 뒀을 것 같다. 시청률을 올릴 수정고는 없나. =그런 거 없다. 절대. 충무로 가서 영화감독들 만나면 그런 이야기 한다. “대중문화가 너무 소비자 위주로 넘어간다. 구매자가 끌리고 살 거 같은 것만 만든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가치를 선도하는 사람이 되자. 대중에 끌려다니지 말고 대중을 이끌어가자!” 되도록 그런 기조를 지키려고 한다. 그런 사람 한두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의 반응에 영향을 안 받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작품 속 드라마 <경성의 아침>이 겪는 외압이 실제 <드라마의 제왕>에도 적용되지 않았나. 중반 넘어서 앤서니 김과 이고은 작가의 뜬금없는 멜로 라인의 확장을 보고선, 이건 외압이다, 했다. (웃음) =그건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멜로를 후반 동력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했다. 앤서니라는 자본주의의 화신이 한 여자에게 구원을 받아 인간이 되는 이야기다. 대립각을 통해서 이 판이 얼마나 험한가, 그 속의 인간들은 얼마나 발버둥치고 있나, 그리고 그 안에서 앤서니와 이고은 작가의 가치관은 얼마나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나, 이걸 보여주자는 게 목표였다. 근데 내가 멜로를 잘 못 쓰긴 해서…. (웃음) 사실 외압을 말하자면, 내가 어느 정도로 외부의 압력을 안 받냐면, 국장과 본부장이 작업실에 와서, 뭐라고 말하면, 알겠습니다 하면서 그냥 다음회 준비한다. (웃음) 기본적으로 팀원에게 우리가 ‘갑’이라는 걸 주지시킨다. 그들은 우리가 써준 걸 찍고, 우리가 만든 세상에서 움직인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도 최후통첩처럼 압력이 세게 들어오면 ‘제가 몸살이 걸려서요’ 이러고 빠져나간다. 방송국 입장에서 나는 통제가 안되는 거다.

-애초 공중파를 염두에 둔 <위기일발 풍년빌라>가 tvN에서 방송된 전적이 있었다. 장르나 표현 면에서 공중파에서 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고, 결국 케이블로 간 대표적 케이스다. 이번 작품의 상황은 어땠나. =다행히 배우들이 이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 방송국에선 놓칠 수 없는 거다. 공중파는 예를 들자면 마트가 세개인 시장이다. 이쪽 마트에서 아이템을 놓치면 저쪽 마트르 가는 거다. 놓친 아이템이 잘 팔리면 배가 아픈 거다. <해를 품은 달>도 한 바퀴를 돌았는데 마지막으로 카드를 잡은 MBC가 대박이 난 거다. <드라마의 제왕>은 좀 독특하고 배우들도 의욕을 보이니 이건 뭔가 되려나보다 판단했을 것 같다. 오판 중에도 그런 오판이 없었던 거지. (웃음)

소름 돋는 명대사 “정의없는 힘은 폭력일 뿐입니다”

-PPL, 작가 선정, 톱 배우 캐스팅, 표절 등 드라마 제작의 구체적 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분명 수위 조절이 필요한 민감한 소재다. =사실 초반에 국장이 돈 먹고 구속되고 그런 설정 때문에 주위에서 걱정도 많았다. ‘이런 건 내가 방송국 사장이면 절대 이거 안 튼다’는 거다. 나야 계약도 했고 돈도 받았겠다. 그럼 그냥 가는 거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SBS가 정치적으로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방송국이 됐다. <드라마의 제왕>이 보여주는 방송가의 치부도 가장 거부감없이 받아들인 집단이 SBS다. ‘맞아 옛날에는 많이 이랬지.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고. 그래도 너무 세게 밀고 나가진 마’ 그러더라. 사실 정말 끔찍한 측면, 보기 안 좋은 것은 다루지 않았다. 주로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것만 넣었다. 너무 사실적으로 가면 오히려 사람들이 그걸 더 과장이라고 생각할 것 같더라.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남운형 국장(권해효) 캐릭터의 활약이 크다. MBC 사장을 겨냥한 소신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선 끝나고 권해효씨한테 전화가 왔다. 좋은 대사 줘서 고맙다고. 그럴 때 뿌듯하다. 이후에 국장이 이사회에 불려가서 연장 압력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억지로 늘려서 이야기를 훼손시키면서까지 할 순 없다. 작품성이 훼손된다” 하는 대사를 넣었다. 이사회는 당연히 “당신 미쳤어?” 하는데 ‘까라면 까!’ 하고 나간다. 결국 국장이 지지만, 기왕 방송 이야기를 할 거면 이런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하면서 가는 게 우리 정체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성과를 떠나 어쨌든 지킬 건 지키고 간 거다. 다음 작품은 구상 중인가. =벌써 (아내인) 김은희 작가는 집필 들어갔고 내년에 찍을 예정이다. 탄핵위기에 빠진 젊은 대통령이 실종되면서 그를 찾는 4박5일간의 이야기다.

-<24>가 연상된다. =맞다. 왜 우린 그런 드라마가 없지? 저거다 했다. (웃음) 그래서 만들었다. 일단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정치적으로 민감하지만 드라마적으로 아주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 이 드라마야말로 외압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면 더 좋다. 대중적으로 더 이슈가 될 테니까. 오히려 그런 점에서 더 정치적인 압력이 없을 거라는 판단도 있다. 지금은 김은희 작가나 나나 새롭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릴 찾겠지만 몇년 있으면 다른 작가들이랑 색깔이 비슷해질 거다. 그럼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난 드라마 오래 안 하려고 한다. 작가로는 이게 마지막이고, 그다음 작품이 연출 마지막 작품이 될 거고 그다음엔 영화 할 거다. 드라마도 가치는 있지만 어쨌든 난 영화가 좋다. 내 목표를 회화적으로 이미 설정해뒀는데, 60살이 돼서도 디렉터 체어에 앉아 있는 거다. 쭈글쭈글한 손 컷 1, 목주름 컷 2, 아래로 드리운 눈썹과 머리카락들 컷 3. 산속의 현장에서 빛을 받고 있는 내게 조감독이 와서 “감독님 커피입니다” 내밀면서 컷! 나이 들어서도 말만 감독이 아니라 현장에 남고 싶다. 그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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