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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돌아온 전쟁포로’ 소재의 달인
안현진(LA 통신원) 2013-01-18

<홈랜드>의 기디언 라프

<홈랜드>의 기디언 라프.

한국에서는 2012년 10월 시즌1 방영을 시작했고, 미국에서는 얼마 전 시즌2를 마감한 <홈랜드>는 포스트 9.11을 겪고 있는 미국사회의 불안과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모든 군인이 맞닥뜨리는 재사회화의 어려움을 날줄과 씨줄 삼아 직조해낸 놀라운 드라마다. 8년간 알카에다에 전쟁포로로 잡혔다 구출된 해군 니콜라스 브로디(데미언 루이스)는 귀환과 동시에 영웅으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인터뷰 문의가 쇄도하고, 군과 정계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는다. 한데 니콜라스를 처음부터 의심했던 이가 있으니 CIA 요원 캐리 매디슨(클레어 데인즈)이다. 하지만 조울증을 앓는 캐리의 의견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평소 9.11에 대해 강박적으로 죄책감을 가져온 캐리는 명령계통을 무시하고 니콜라스에 대해 조사를 펼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반전들은 충격적이다. 이를테면 니콜라스가 개종한 모슬렘이라는 점, 캐리와 니콜라스가 순식간에 가까워져 내연관계로 발전하는 전개 등이다. 하지만 이 반전들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캐리의 니콜라스에 대한 의심, 그러니까 니콜라스가 변절한 테러리스트로 미국에 잠입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일 것도 없다. <홈랜드>는 사회의 불안과 개인의 불행을 교차시키며 그 과정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에 대해 꾸준히 공정하게 질문한다. 니콜라스 브로디는 테러리스트인가? 그는 선인인가 악인인가?

<홈랜드>의 크리에이터 세 사람 알렉스 간자, 하워드 고든, 기디언 라프 중 가장 중요한 이름은 기디언 라프다. 그는 <홈랜드>의 원작이나 마찬가지인 이스라엘 TV시리즈 <Prisoners of War>(이하 <POW>)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 제작자, 감독으로, ‘돌아온 전쟁포로’라는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TV시리즈 두편을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라프는 2001년 영화연출을 공부하려고 미국으로 유학 왔다. 졸업한 뒤 더그 라이먼 감독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제작팀에서 일했고, 2007년 할리우드에서 <더 킬링 플로어>라는 공포영화로 감독 데뷔했다. 이스라엘에 돌아간 건 애초에 계획한 2년 뒤가 아닌 9년 뒤였다. “집(고국)을 떠났다가 돌아가면 미처 몰랐던 점이 보인다. 떠났던 사람도 남아 있던 가족도 모두 변한 것이 없기를 바라지만, 양쪽 모두 서로에게서 변한 점을 찾게 마련이다.”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 미국과 다르게 지난한 협상을 통해 전쟁포로를 구해내는 이스라엘에서, 라프는 고국에 돌아온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말하려 하지 않는 점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POW>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2명의 전쟁포로가 이스라엘에 돌아오며 시작되는 <POW>는 첫 방영 이전에 이미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3명의 전쟁포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귀환이 곧 해피엔딩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뒤 새롭게 고통받는 영웅들의 모습은 달가운 주제가 아니었다. 왜곡 없는 정공법이 <POW>의 화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야 사람들은 이 TV시리즈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POW>와 <홈랜드>의 관계는 원작과 리메이크보다는 닮은 듯 다른 형제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듯하다. <POW>가 전쟁에서 돌아온 뒤 달라진 남편을 되찾으려 싸우는 여인에게 초점을 맞춘 가족드라마에 가깝다면, <홈랜드>는 신뢰할 수 없는 CIA요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릴러다. 실제로 두 드라마의 시즌1이 상당히 닮았던 것과 달리 시즌2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매번 캐릭터를 나락의 직전까지 밀어붙이는 극적인 전개 탓에 과연 다음 시즌이 가능할까 의심스럽지만, 데뷔 첫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드라마부문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홈랜드>는 2013년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