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전시
[전시] 파상력의 묘미

< No comment >

, 정재호, Oil on canvas, 140x140cm, 2010년.

기간: 2월17일까지 장소: 서울대학교 미술관 문의: www.snumoa.org

최기창 작가의 2채널 영상 <Eye Contact>는 정면을 바라보는 두 인물이 각각의 화면에 등장한다. 두 사람은 상대와 눈싸움을 하듯 눈동자를 고정시키다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영상 속 인물들은 사실 누구를 마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작가가 촬영 영상 중 무작위로 선택한 것이다.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인물들이 화면에 순차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상대는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가 되는 셈이다. 줄리아 포트의 애니메이션 <The Event>는 작가의 의도에 따르면 종말론적 러브 스토리의 구현이지만 회색 화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사건을 진전시키지 않는다.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뚝뚝 끊어지지만 서로 엇나가는 이미지들에 압도된다.

지금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는 <no comment전>은 누가 찾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찾을 확률이 높다. 동시대 활동하는 미술 작가 열다섯명의 작품들은 별 공통점이 없이 자기 세계를 드러내면서 묘하게 겹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작품에 담긴 주제가 아닌 ‘충돌 이미지’라는 형식에 전시 기획의 모티브가 있기 때문에 각 작품들이 만나 별다른 스토리텔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전시의 장점이다. 작업에 등장하는 파편화된 이미지들과 설치작품들은 특별한 연속성이 없다. 하지만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후련해지는 감각이 솟아난다. 정재호의 회화가 보여주는 시원한 충돌 이미지들은 ‘쾅’이나 ‘쨍’ 하는 소리에 근접한 청각적 효과가 있다. 오재우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맥주, 담배, 잉크 등)의 조합을 통해 충격과 발견의 시를 새로 쓴다. 오렌지주스 ‘콜드’와 ‘HOPE’라는 이름의 일본산 담배를 이어붙여 작가는 ‘차갑게 식은 희망’이라는 문장을 조합한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구성력이 아닌 ‘파상력’(破像力)을 드러낸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모교를 비롯해 거의 모든 학교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꺼려졌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극장과 미술관, 박물관에서 하는 흥미로운 일들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은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전시장과 박물관을 찾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