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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윤리학] 배우 그리고 친구 사이(1)
장영엽 이기준 사진 최성열 2013-02-25

<분노의 윤리학> 문소리, 곽도원, 김태훈, 조진웅의 유쾌한 수다

“너나 잘하세요.” <친절한 금자씨>의 이 대사는 <분노의 윤리학>의 다섯 등장인물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살인자 주제에, 스토커 주제에, 바람 핀 주제에, 남들 등쳐먹는 주제에,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남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을 ‘다 같은 나쁜 놈’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전적으로 배우들의 몫이었다. <분노의 윤리학>은 베테랑 배우 문소리, 곽도원, 조진웅, 김태훈과 청춘스타 이제훈이 선보이는 5인5색 ‘악인 캐릭터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영화다. 장면마다 배틀을 벌이듯 서로 충돌하고 엉켜들며 캐릭터의 색깔을 사수하던 네 배우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군 복무 중인 이제훈은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아등바등 싸우던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인간적으로 너무 친한” 네 배우들의 수다는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네 사람 모두 같은 소속사지만, 평소에도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들어 이 자리에 함께 불렀다.

조진웅_내 경우에, 문소리 선배와는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 때 알게 됐다.

문소리_우리 둘 다 같은 구청 직원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공무원으로 일하는 모습은 거의 안 나오고 회식하는 장면만 나왔지. 만날 밥상 차려놓고, 횟상 차려놓고. 그 구청은 꽤 회식을 자주 했다. (웃음)

김태훈_나는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에 5년 전에 들어왔다. 당시 진웅이가 나보다 먼저 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점점 배우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할 때였다. 곽도원 선배와는 <아저씨> 때 처음 만났는데, 내가 너무 좋아해서 만날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문소리 선배는 <박하사탕> 때부터 좋아했고, 서로 안면도 있었다.

문소리_태훈이의 형 김태우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서, 태훈이랑도 친하게 지내왔다. 곽도원씨와는 <분노의 윤리학>에서 부부로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인사하자마자 바로 취조실에 들어가서 싸웠다. (웃음)

<분노의 윤리학>은 그야말로 캐릭터영화다. 다섯 인물의 사연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배우간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영화다. 이런 캐릭터극에 함께 출연하며 어떤 기대감이 있었나.

문소리_나는 캐릭터들이 강렬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겠다는 생각과 원톱이나 투톱영화가 아니라서 배우들이 함께 연기하기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두 가지 생각이 상충했다. 조진웅 그런데 그런 게 배우들의 로망이지 않나. 영화 <쎄븐>을 보면 크레딧에 스페셜 액터로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이 마지막에 뜬다. 많은 신에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의 주춧돌이 되는, 말 그대로 ‘신 스틸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이런 영화엔 있다.

곽도원_나는 맨 처음에 문소리씨가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빨리 대본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 좋은 배우라 함께 연기하면 어떨까 궁금했다. 예전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출연했을 때 내 분량은 다 편집되고 등만 나왔었는데. (웃음) 그때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를 일주일 동안 계속 따라다녔다. 쉴 때는 뭐 하고 쉬나, 숏 들어가기 전에 호흡은 어떻게 잡나 이런 것들을 다 살폈다. 워낙 잘하는 배우라 좀 배우고 싶었다. 그랬던 것처럼 문소리씨도 경험해보고 싶은 배우였다.

문소리_곽도원씨와 처음 만나 취조실 장면을 찍은 날, 난 무슨 기자를 만난 줄 알았다. 뭔 질문이 그렇게 많아? (웃음) 처음 만나서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도 그 장면이 무척 재밌었다. 첫 리허설하고 느낌이 희한해서, 박명랑 감독에게 이전에 곽도원씨가 등장하는 장면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얘기를 들어보니 느낌이 확 오더라. 난 세게 안 가려고 했는데, 도원씨가 너무 세게 가서 나도 덩달아 강하게 연기를 하게 되더라.

곽도원_소리씨와 연기하면서 역시 굉장히 놀랐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 함께한 연기를 되뇌어보게 되더라. 진웅이나 태훈이는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진웅이는 워낙 능글능글하고(웃음), 태훈이는 이야, 정말…. 왜 그런 말이 있잖나. 영화는 90% 이상 책상에서 만들어진다.

일동_그런 얘기가 있었어? 처음 듣는데.

곽도원_그런가. (웃음) 어쨌건 그 말처럼 태훈이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책상에서 공부하듯이 연기를 준비하더라. 태훈이의 대본을 보면 적어놓은 것이 빼곡하다. 나중에 보면 대본이 너덜너덜해져 있더라.

김태훈_이건 진짜 거짓말이다. 나는 대본에 하나도 안 적어놓는데. (웃음)

문소리_그것보다 태훈이는 현장에서 푸시업을 많이 하더라. 영화 후반부에 벌거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묶여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 앞두고 열심히 하던데.

김태훈_예전에는 ‘일반 사람 역할인데 뭐 그렇게까지 몸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영화에서 뒷모습이 전라로 나오는 장면을 찍었는데 몸관리를 안 했더니 너무 추하더라. <분노의 윤리학> 촬영할 당시에는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때문에 몸을 좀 만들어놨었는데, 그게 아까워서 겸사겸사 (푸시업을)한 거다. 영화 보면 알겠지만 너무 근육질이라 부담스러운 몸은 아니다.

곽도원_진웅이를 현장에서 보면 참 신기한 게, 정말 긴장을 안 하고 편안하게 연기한다는 거다. 배우는 글로 쓴 캐릭터를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처음 촬영에 들어가면 당연히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게 낯설다. 그래서 몸에 긴장이 오기 마련인데 진웅이는 참 편안하게 연기한다.

문소리_그래도 본인은, 늘 새로운 현장에 갈 때마다 전학생 마음이라 긴장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조진웅이 있는 촬영현장이면 어딜 가나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 있다.

김태훈_진웅이는 현장에서 과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래서 지난번에 술 먹으며 “야, 너 참 멋있다”고 말해줬다. 나도 책상에서 공부만 하지 말고 남들에게 잘해줘야 하는데. (웃음)

<분노의 윤리학>의 시나리오를 미리 읽을 기회가 있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캐릭터들의 모습이 시나리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색깔이 캐릭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야 할까. 각자의 역할을 준비하며 어떤 고민들을 했나.

문소리_촬영을 앞두고 감독님이 책을 한권 건넸다. 천국과 지옥의 풍경을 괴기스럽게 묘사한, 화가 히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책이었다. 그림에서 심판자적인 시각이 엿보였는데 그걸 보고 선화에 대한 이미지가 한번에 다가오더라. 개인적으로는 선화(문소리)가 너무 극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의 감정, 태도가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진웅_나는 명록(조진웅)이 말이 너무 많은 게 마음에 좀 걸렸다. 그런데 그걸 역으로 생각해보니 이 친구는 말로 항변하고 싶은 일이 많겠구나 싶기도 하더라. 더불어 명록이 제시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과하게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아예 이 캐릭터의 새로운 점을 찾아내기보다는 전형적인 면모를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곽도원_박명랑 감독이 나에게는 자신이 아는 교수의 습관이나 동작의 디테일들을 자세하게 얘기해줬다.

문소리_남자배우들이랑은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눴더라. 감독과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남자배우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줬다. 그런데 선화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해. 히로니무스 뭐 이런 책만 들이밀고 가버리고. (웃음)

김태훈_박 감독이 나에게는 뜻밖에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를 추천해줬다. 노다메가 치아키를 쫓아다니는 장면의 느낌들을 참고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책을 보고 현수의 모습에 대해 감독님과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개별 질문을 해보자. 현수(김태훈)는 보기 드문 유형의 살인자다. 사랑하던 여자를 죽이고도 도망치기는커녕 그 여자를 스토킹한 정훈(이제훈)을 쫓으며 사건에 자발적으로 휘말린다. 그런 행동의 의미를 배우로서 어떻게 해석했나.

김태훈_현수가 진아를 죽인 것도,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진 행동들도 우발적으로 저질렀을 거라 생각했다. 현수는 한마디로 자기합리화에 빠진 인물이다.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 믿는. 그러다가 점점 흥분이 가라앉으며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무슨 일을 한 건지 겁도 나고. 그렇게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이 서서히 공포로 변해가며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게 현수가 겪는 감정의 변화라고 봤다.

곽도원씨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검사, 드라마 <유령>의 형사처럼 주로 누군가를 취조하거나 뒤쫓는 역할로 주목받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맡은 수택은 그 정반대의 캐릭터다. 수택은 여대생과 내연관계에 있던 교수이자 살인자로 몰려 내내 감옥에 갇혀 있다. 특유의 카리스마를 배제한, 힘을 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곽도원_문소리 선배에게 참 고마운 게 내가 힘을 뺄 수 있게 해줬다.

문소리_도원씨와 취조실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시나리오에서 보던 수택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래도 수택이 사랑에 대한 지고지순한 순정이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도원씨와 같이 연기해보니 느낌이 다른 거다. 내연녀 살인혐의로 잡혀들어간 남편(수택)이 자살하겠다고 하면 선화가 “용기도 없으면서”라고 한다. 그때 도원씨가 갑자기 일어나서 안경을 벗고 취조실 책상에 자기 머리를 찧는다. 시나리오상엔 없는 장면이었는데,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세트 뒤의 벽들이 다 흔들릴 정도로 미친 듯이 행동하는 수택을 보니 실소가 절로 나오더라. ‘저 새끼, 하다하다 별짓을 다 하는구나’ 싶은 마음. 내 마음속에서 문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어머, 저거 아프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수택의 아내처럼 ‘가관이다’ 하는 표정이 나오더라.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다. 앞에서 연기를 잘해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지.

곽도원_관객이 보기에는 배우가 액션과 액션을 거듭해서 이어지는 장면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배우는 리액션, 리액션, 리액션을 하고 있는 거다. 남편이 그 꼴로 처절하게 살려달라고 하는데 부인이 앞에서 자존심을 긁는 소리를 하니 그런 반응이 절로 나올 수밖에. 나로서는 아내가 강하게 나오니 더 찌그러지게 되고, 더 비겁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씨에게 궁금한 게 생각났다. 수택이 잡혀 있을 때 선화가 들어와서 “그 여자애랑은 어떤 체위로 했냐”고 취조하듯이 묻잖아.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심리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던데.

문소리_선화가 다른 인물보다 한참 뒤늦게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캐릭터잖나. 나는 이 아내가 오랫동안 감옥에 갇힌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서 만나러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나 싶더라고. 이놈을 어떻게 자근자근 씹어버릴까 며칠 밤을 못 자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마치 배우가 장면을 연출하듯이, 백화점에 가서 어울리는 옷도 사입고 백도 들고 화장도 하고…. 그렇게 준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체위로 했냐”는 질문도 남편을 궁지로 몰아가는 아내의 시나리오 중 일부였을 거다. 그런 심한 질문까지 던지면서 남편이 얼마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가 보는 거지.

곽도원_취조실 안의 기운이 정말 대단했다. 이런 생각도 들더라. ‘야, 내가 이런 드센 여자랑 결혼을 했다면….’

문소리_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는 여자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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