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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영객잔] 슬픔은 어디서 보아야 하는가

<가족의 나라>가 극영화 형식을 취하고 성취해내지 못한 것들

7년 전 어느 밤에 서간체 형식의 짧은 칼럼 하나를 쓴 적이 있다. 양영희의 다큐 <디어 평양>에 관한 것이었는데 양영희가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그려낸 방식에 대해 내가 느낀 감동을 적었고 그 표현 중에는, “당신의 영화가 보여준 만드는 자로서의 ‘나’와 카메라와 대상으로서의 존재 그 사이에서 뛰던 관계의 맥박을 나는 쉽게 잊기 힘듭니다”라는 감탄의 표현도 있었다.

양영희는 왜 아들들을 북송시킨 아버지의 과오를 역사의 자리에서 냉정하게 다시 생각하지 않는가. 그건 일종의 회피가 아닌가, 하고 비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위의 칼럼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웬만한 영화평론가보다 뛰어나고 날카로운 영화적 안목을 갖춘 유명감독 한분이 사석에서 내게 위의 칼럼을 언급하며 그와 같이 <디어 평양>을 비판했다. 내게는 그 영화의 어떤 결여된 객관성을 지적하는 말로 들렸는데, 그 비판이 일견 정당하다고는 생각했어도 공감은 끝내 못했던 것 같다. 그 영화의 주관적 특수성을 그 감독은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고 나는 용인했던 것 같다.

이런 오래된 기억들을 새삼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 건 양영희의 첫 번째 극영화 <가족의 나라>를 보고 나서다. 이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울음바다가 된 극장 안의 풍경을 전해주었다. 깊은 식견과 섬세한 필력을 지닌 문학평론가 정홍수 선생께서 이 영화를 보고 손수건을 다 적실 만큼 눈물을 흘렸다고 말해주셔서 그 의견이 궁금한 나머지 나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냉큼 평문부터 청탁 드리기도 했다. 내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 영화의 감흥을 미리 말해주었다.

그런데 영화를 본 나는 결국 울지 못하였다. 눈물을 흘리고도 욕이 나오는 영화들이 많지만 이 영화의 눈물은 감동과 직결되는 것이라 솟지 않은 눈물이 더 난감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그 뒤에는 궁금했다. 눈물에도 스포일러가 있어서인가. 혹시라도 풍문이라는 예방주사를 너무 맞아 둔감해진 것인가. 혹은 재일 한국인과 북송사업에 관한 나의 역사적 무지나 무관심 때문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나 홀로 감성의 가뭄에 시달리는 것인가.

역사적으로는 불우하고 한 가족의 일생으로서는 안타깝고 영화적으로는 수준 이상의 격식을 갖춘 이 영화를 말하며 비 공감의 고백을 늘어놓는 건 욕먹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피하지 못할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내가 신뢰하는 다른 이들의 눈물의 가치를 폄훼하지 않으면서 나의 그 감정적 난처함의 경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다큐 감독이 극영화를 택하는 이유들

다큐를 만들던 감독이 왜 극영화를 만들게 되었을까.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양영희의 차기작이 극영화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사적으로 들었던 생각이다. 다큐 감독으로 연출 경력을 시작했으나 극영화 감독으로 돌아섰던 폴란드의 거장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자서전에서 자신을 다큐에서 극영화로 옮겨가도록 만든 일화 하나를 전하고 있다. 그가 <스테이션>(1981)이라는 다큐를 촬영 중이던 때다. 새벽녘에 그를 찾아온 경찰이 전날 밤 촬영팀이 촬영한 필름들을 무작정 압수해갔고 시간이 지나서야 돌려주었다. 얼마 뒤에야 키에슬로프스키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자신들이 촬영하고 있던 그날 그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살해하고 토막 내어 가방에 나눠 담은 한 소녀가 시체가 담긴 가방을 그 역의 사물함 어딘가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에 그 행각이 담기진 않았지만 그는 카메라가 왼쪽으로 조금이라도 돌아가기라도 했다면 자신의 영화가 범죄행위를 입증하는 경찰의 정보 제공물 신세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다큐가 태생적으로 세상의 증인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 어두운 일화다.

하지만 오로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일화를 전하며 키에슬로프스키는 더 중요한 생각을 밝힌다. 요약건대, 그의 카메라가 누군가에게 더 다가가기를 원할 때마다 대상은 더 멀어지거나 마음을 닫는다며, 그의 기록의 카메라가 사랑을 그리고 싶다고 하여 사랑을 나누는 인물들의 침대에 들어갈 수 없고 죽음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여 누군가가 죽어가게 할 수는 없으니, 그러한 결핍감을 이유로 다큐를 떠나 극영화로 가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러 차례 인용된 바 있는데, 다큐 <>을 촬영하던 중에 극이 필요하다고 느껴 <스틸 라이프>를 연출한 지아장커는 다르지만 또 유사하게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그 사람의 생활을 찍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방어하려고 합니다. 내가 그의 비밀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야기가 필요해집니다.” 양영희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를 대고 찍히는 모습을 보는 과정이다. 섬세하고 미묘한 순간이 있지만, 대상이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주지 않으면 말로 되어 나오지 않는다. 반면 극영화는 마음속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놓는 과정이다.”

기록하는 것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질 때 그 다큐의 감독들은 극영화의 세계로 갔다. 반면에 어떤 위대한 다큐 감독들은 기록할 수 있는 것을 최선으로 기록해내서가 아니라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패하여 인정함으로써 어떤 극영화보다도 위대한 다큐를 만든다. 우린 위대한 다큐 감독 김동원과 <송환>의 예를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다큐에서 극으로 옮겨간 이들은 다큐가 할 수 없는 일을 극이 하게 하라는 명제를 신봉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다큐에서 극영화로의 이런 이동에 관하여 말할 때 사실의 기록을 중시하는 공고한 객관적 세계(다큐의 세계)에서 상상적 허구를 허용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세계(극의 세계)로 옮겨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두편의 다큐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에서 <가족의 나라>로 옮겨간 (그리고 다음 영화도 극영화를 계획 중이라는) 양영희의 경우도 그러한가 생각해보면 이 경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예컨대 양영희는 지난 두편의 다큐를 만들면서 객관에 의존하는 것을 처음부터 자신의 창작 반경 안에서 주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주관 안에서만 보는 데 몰두한 것 같다. 그 점은 <디어 평양>에서 특히 매혹적인 장점이었다. 양영희의 다큐는 원래부터 강력한 주관성의 힘으로 작동했다.

그렇다면 양영희의 극영화는 어떠한가. <가족의 나라>는 다소 놀랍게도 주관적이기는커녕 자기의 이야기를 매우 객관적으로 그리고자 한 것 같은 인상을 일차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실은 의아하다. 양영희가 다큐에서 극영화로 가면서 그녀 자신이 원했던 것,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 또는 비밀 또는 하지 못한 말들, 그건 객관적 태도로는 얻어지기 힘든 것이라고 그녀 스스로 결론내리고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객관이 아니라 여전히 주관의 문제에서,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지금으로서는 이 논의를 조금만 더 잠정적으로 끌고 가보자.

카메라가 고수하는 특정 시점에 대한 의문

물론이지만 어떤 극영화는 충분히 사태를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가족의 나라>도 그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북송선에 실려 북한에 가서 살고 있는 리에의 오빠 성호는 뇌에 종양이 생겼다. 북한의 의술로는 치료받을 가망이 없어진 성호는 치료를 받기 위해 겨우 당국의 허락을 얻어 일본에 왔다. 하지만 체류 기간으로 허락받은 3개월 중 단 3일 만에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이렇게 슬프기 그지없는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비교적 차분한 톤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몇 차례 감정적으로 폭발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3일간의 일상을 그저 수긍하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그 전반적인 차분함이 양영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적 태도로 지켜보려 했다는 인상을 주며 한편으론 담백해서 좋다는 감상도 얻어낸다. 영화를 본 동료 기자도 이 영화의 장점은 그런 담백함에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같은 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서사와 인물을 다 말하고 나서도 <가족의 나라>를 말하기 위해서는 결국에 말해야 하는 것, 그건 영화가 어떻게 이 이야기와 인물들을 보여주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문제는 이른바 시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가족의 나라>에는 주요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시점이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감정의 격류가 흐르는 몇 장면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고 있다. 초반부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우리는 성호가 옛 일본 집으로 찾아드는 걸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성호가 차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집으로 걸어가면 어머니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성호를 몇 발짝 거리를 두고 쫓아가던 카메라는 성호와 어머니가 만나는 순간에 성호의 왼쪽 뒤편으로 휙 하고 돌며 모자의 상봉을 그 자리에서 비춘다.

혹은 성호가 여동생 리에에게 북의 공작원이 되어주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한 다음 그에 화가 난 리에가 성호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도 유사한 시점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차마 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무안함과 죄책감을 삭이는 성호의 누운 왼쪽 옆모습을 역시 비슷한 거리에서 담아내고 있다. 한편, 결국에 자신을 북송시킨 아버지에게 성호가 화를 참지 못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결국 하는 말은 그것뿐이로군요”라고 결정적인 대사를 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카메라는 종전의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자리에서 그를 잡는다. 카메라에 담기는 저 인물들에게서 서너 발짝 떨어진 비스듬한 뒤쪽 특히 왼편에서의 시점이 유독 <가족의 나라>에서는 많이 등장한다. 왼쪽과 뒤편이라는 자리가 중요하기보다는 그와 같은 고정된 시점의 자리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시점>이라는 개론서를 쓴 조엘 마니는 시점에 관하여 우리의 상식에 준하여 이런 설명을 한다. 가령 죽은 나무나 바위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걸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 각도에서, 내 자리에 와서 보세요. 자, 어떤 것이 보이나요? 당신에게도 그 형상이 보이죠?”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 표현 자체가 시점의 구성 원리를 경험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시네아스트는 카메라를 단지 가장 좋은 시선의 지점에 위치시킬 뿐 아니라, 관객에게 ‘자신의’ 시각과 ‘자신의’ 시점을 전달할 수 있는 장소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시점이란 물리적 의미의 시점을 뜻하지만, 심리적 의미의 시점, 나아가 정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의 시점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그는 적고 있다.

영화의 카메라가 특정한 자리에서의 물리적 시점을 고수할 때 거기에는 그 대상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창작자의 이해의 지평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양영희는, 카메라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기를 바라면서 극영화를 만들게 된 양영희는, <가족의 나라>에서 우리를 그 자리로 자주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 여기로 와서 보세요, 제가 있는 자리로 와서 보세요, 그래야 저들의 마음이 잘 보입니다, 저들의 슬픔이 잘 보입니다.

<가족의 나라>의 이 특정 시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거기에는 얼마간의 기원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비교대상이 될 만한 영화로 <워낭소리>를 들 수 있다. <워낭소리>는 다큐인데도 불구하고 극화를 강조하기 위해 인위적인 시점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감성을 자극했다. 그러니까 다큐의 카메라가 할 수 없는 극적 시점의 구조라는 <워낭소리>의 이 활용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감을 백배 더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 영화를 기만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비교컨대 <가족의 나라>에서의 쟁점은 시점이 놓인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가족의 나라>는 <워낭소리>와 반대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워낭소리>가 다큐에 극영화적 시점숏을 도입한 것이라면 <가족의 나라>는 극영화에 다큐적 시점을 도입하고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객관적이라는 인상에 큰 몫을 한다. <가족의 나라>에서의 핵심은 시점숏의 교차가 아니라 시점, 언제나 몇 발자국 떨어져 대상과 그들의 무리를 지켜보는 일관된 보기의 자리다. <워낭소리>에서 시점숏의 도입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부류와 그걸 느낀 부류가 감동의 크기가 달랐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이 시점의 자리에 갑갑함을 느끼지 않는 부류와 그렇게 느끼는 부류의 감상은 차이가 날 것이고 나는 아무래도 후자였던 것 같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다큐적 시점으로 인하여 <가족의 나라>에 관한 나의 감성적 감상은 오히려 방해 받은 것 같다.

(극영화에서) 슬픔은 풍요로워야 더 슬프다

영화의 창작자 중 누구라도 그 자신이 특별히 선호하는 시점의 자리는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기질과 취향과 사상의 문제인 데다 그 밖에 우리가 더 알 수 없는 요건들에 의해 결정되는 미묘한 문제다. 그런데 그때 핵심이 될 만한 물음은, 특히나 그것이 극영화일 때, 그 시점의 자리로 인하여 저 극화된 서사의 세계가 어떻게 보이게 되느냐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조건이 한 가지 있다. 극영화에서의 시점은 전적으로 시점 자체의 자리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저 극이라는 세계의 독립적인 소우주를 자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암묵적인 자리로 스스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다큐가 기록을 전제하듯이 극영화는 극의 자율이 기본적 전제다. 그러므로 이때의 시점은 기본적으로는 보여서는 안되며, 아니 그렇더라도 적어도 스스로를 드러내 무언가를 강제하거나 강박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극의 세계를 보장하는 기초적인 극영화 안에서의 시점의 약속이다. 모던 시네마의 시네아스트들이 카메라가 놓인 시점의 자리를 일부러 종종 드러내는 경우는 그 극영화의 약속을 일부러 위반하여 자기반영적 성찰을 얻기 위해서였다.

앞서 말한 <가족의 나라>의 그 시점은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잘 숨겨지지 않을 뿐 아니라 숨겨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인 양 시종일관 강조되어 드러난다. 나로서는 그 특정 시점이 그렇게 자기의 자리를 계속 고집할 때 개인적으로 저 시점의 공고함으로 인해 극의 세계에 있는 인물들이 어딘가 주눅 들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종종 받게 되었다. 그건 극의 인물들이 처한 갑갑함과는 별개의 갑갑함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시점의 자리로 인하여 저 극의 세계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우린 말했다. <가족의 나라>에서는 그 특정 시점의 결과로 마치 무대 위에 올라 있는 배우들이 리허설을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가족이 모이거나 친구가 모였을 때 혹은 오빠와 동생이 모였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관계가 이뤄지는 중요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리와 떨어져 자리를 잡고 조망하면서 그들이 대사를 할 때 그 대사의 향방을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며 이 상황을 관찰하고 중계하는 누군가 매개가 있음을 수시로 일깨우고 있다.

이 점을 두고 대상을 다루는 양식은 다큐에서 극으로 바뀌었으나 그 카메라의 존재론적 역량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디어평양>에서 카메라에 들어오는 것은 양영희의 눈을 대신하여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나라>에서 카메라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 직접 들어오는 것이어야 한다. 다큐가 위대한 것은 거기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지만 극영화가 자유로운 것은 거기 카메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의 나라>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극영화의 이야기가 다큐의 시점에 시종일관 묶여 있다는 인상이다. 카메라가 있지만 그것의 존재는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무매개성이 극영화의 가능성이라고 할 때, 어딘지 모르게 <가족의 나라>는 그 무매개성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매개하려고 하고 있다. 이야기가 지어졌다면 시점도 지어져야 하는데 양영희는 이야기는 짓고 시점은 기록하는 쪽으로 놓아둔다.

이 시점을 관찰과 중계의 시점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관찰과 중계의 시점이 지닌 어떤 거센 힘이다. 이 이야기가 다름 아니라 다큐로부터 그리고 양영희 자신의 실화로부터 파생한 것이라는 점을 이 관찰과 중계의 시점을 빌려서 계속 특권적으로 행사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그러니 관찰과 중계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그 시점의 자리에서 개입과 권위의 효과를 느끼게 된다. 여기에는 지금 펼쳐지는 이 극이 자기의 극적 세계를 스스로 조직하고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창작자가 갖고 있는 이상한 두려움이 있다. 정작 극을 취했지만 이것이 실화였음을 강조하려는 이 자세는 저 허구의 기적적인 자율성을 다큐적 시점으로 다스리려 하는 것 같아서 나의 사례처럼 몰입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는 감상을 낳기도 하는 것 같다. 관찰과 중계의 역할을 넘어 어떤 관할의 무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그 무의식은 사실의 권위로, 다큐의 권위로 극을 관할하려는 무의식이다.

이 점을 두고 양영희가 원치 않았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혹은 다큐를 만든 감독이었기 때문에 극영화로 전환하면서도 바꾸지 못한 단순한 습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나라>에 주관이 작 동하였는데 그 주관이 긍정적 주관으로 이행되지 않고 부정적 주관으로 작동한 결과, 어떤 시각적 법령의 자리가 형성된 것만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앞으로 양영희의 극영화를 옥죄게 될 시각적 대타자의 자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양영희만의 긍정적 원근법적 자리가 될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가족의 나라>에서는 이 시각적 법령의 자리가 영화에 가능했을 무수한 조화를 가로막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의 눈물은 그 조화를 목격하지 못해 실패한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 둘러대고 싶어진다.

양영희가 극영화로 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결국 조화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인물들의 내밀함을 드러내는 극적 기적을 바랐으나 그것이 시각적 대타자의 시선에 붙들려 적당한 격조 안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니 이 영화에 관해서라면 인물들의 마음 상태가 조화롭게 드러났다기보다는 몇개의 감정적 대사가 있었고 그 대사가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가장 특권적인 자리에 카메라가 있었고 그로써 내면의 외화라는 성취를 이뤄냈다고 믿게 하는 최면술이 작동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양영희 영화만의 특별한 면모로 승화될 수도 있는 일이겠으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다소 메마르며 상투적인 그 인상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연출자의 주관으로 세우되 저 인물들 사이의 물질적 관계 사이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 결국 양영희가 바란 건 이 조화였는데 이 영화엔 그게 없다고 나는 느꼈으니, 다큐에서는 통하지 않을 말이지만 극영화에서는 억지를 부릴 만한 말을 하나 하고 싶다. 슬픔은 풍요로워야 더 슬프다.

영화의 맥박이 다시 뛰기를

몇년 전 어느 주말 아침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국경의 남쪽>이라는 한국영화를 보았다. 한 남자가 사랑을 약속한 여인을 두고 탈북했고 서울에 정착했다. 남자는 곧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는데 이윽고 북에 두고 온 여인이 필사적으로 경계를 넘어 남자를 찾아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둘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의 사랑이라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어떤 역사의 가정법도 통하지 않는 임시적 만남과 헤어짐이 주는 슬픔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나라>와 비교 가능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북에서 온 여인이 남자에게 화가 나서 고작해야 화단의 돌을 몇개 집어 힘없이 던지는 저 순박한 행위를 했을때, 그때 그녀의 다소 굵은 음성과 무표정한 포기와 원망이 돌 몇개 에 실려 그렇게 촌극으로 끝나고 말았을 때, 어마어마하게 큰 감정과 운명의 소용돌이에 대한 극단적 반응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미숙하고 촌스러운 저 행위가 그녀의 마음을 행위로 확 하고 드러낸 것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의 나라>가 <국경의 남쪽>보다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연출자의 능력 범위를 순간 벗어나 생성되어버린 <국경의 남쪽>의 그런 자율적 기적의 순간이 <가족의 나라>에서는 더 절실했다고 나는 느낀다.

물론 <가족의 나라>에 그런 장면이 하나 있다면 그 시점의 자리를 끊임없이 벗어나 감정을 몰아오는 성호의 얼굴 혹은 배우 이우라 아라타의 얼굴일 것이다. 하지만 와카마쓰 고지의 <11•25 자결의 날>에서는 극단적 우익주의자이며 탐미주의자였던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를 연기하였고 지금 여기에서는 가냘프고 허약한 희생자를 연기하는 아라타의 얼굴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디어 평양>을 본 다음 감동에 젖어 “당신의 영화가 보여준, 만드는 자로서의 ‘나’와 카메라와 대상으로서의 존재 그 사이에서 뛰던 관계의 맥박을 나는 쉽게 잊기 힘듭니다”라고 과거에 썼던 건 그 관계의 거리감이나 그 거리를 포착하는 감독의 자리가 정확해서가 아니라 부정확하다 해도 자유롭고 생생하게 느껴져서다. 카메라와 대상의 생생한 거리와 그 거리를 찰나에 뛰어넘는 의외의 기적적인 디테일들이 함께 약동하는 걸 느껴서다. <디어 평양>은 그런 맥박이 느껴졌고 <가족의 나라>에서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양영희 영화의 맥박이 다시 뛴다면 그때 또 무엇이라도 감탄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둘러대는 수밖에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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