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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동양적인 움직임과 감정을 맛보라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3-04-17

발레 <라 바야데르> 주역 맡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

솔로르는 어리석은 남자다. 제아무리 출세가 좋다 한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니키아를 버리고 라자왕의 딸 감자티에게 가다니. 니키아의 아름다운 춤을 보고 브라만은 신까지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가. 못난 남자! 발레 <라 바야데르>를 보는 내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선택한 솔로르를 원망했다. ‘인도의 무희’라는 제목대로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극이다. 본 공연을 하루 앞둔 4월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 바야데르>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블록버스터 발레’라는 소문대로 이 작품은 120여명의 무용수와 200여벌의 의상이 투입되어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프레스콜이 끝난 뒤 니키아 역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수석무용수 김리회씨를 만났다(<라 바야데르>는 4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3막 군무에 잠깐 무용수로 출연한 것 말고 계속 객석에서 프레스콜을 지켜봤다. =객석에서 동료들을 지켜보는 게 더 긴장된다. 무대 위에서 하고 있는 저 동작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으니까.

-<라 바야데르>는 국립발레단이 18년 만에 올리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클래식 발레 중 몇 안되는 동양(고대 인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서양 무용수들이 잘 모르는 동양적인 움직임과 감정을 필요로 한다. 평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번 기회에 할 수 있게 돼 기쁘다.

-2년 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누리예프 페스티벌에서 <라 바야데르>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이번 공연의 파트너인 정영재씨와 함께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갔다왔다. 그때는 러시아 무용수들과 춤을 췄기 때문에 동양적인 색깔이 강하지 않았다. 반면 국립발레단 동료들과 함께 이번 공연을 준비해보니 그때와 느낌이 다르더라.

-이 작품은 인도 무희 니키아가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리회가 연기하는 니키아의 모습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사랑을 위해 춤추는 니키아!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처럼 일반인이 익히 알고 있는 작품과 달리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발레에서 보기 힘든 안무가 많았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으며) 발레에서는 손가락을 이렇게 움직이는 동작이 없다. 보통 발레 동작은 신체가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두손을 양어깨에 갖다대는 것(신을 숭배하다는 뜻)처럼 땅을 향해 신체를 구부리는 동작이 많다.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해석한 <라 바야데르> 동작의 특징은 무엇인가. =니키아와 감자티가 싸우는 장면을 예로 들자. 다른 안무가 버전에서는 그 장면을 손가락으로만 표현하지만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손을 비롯한 몸, 표정 등 신체의 모든 움직임을 동시에 해야 한다. 무용수에게는 힘든 안무이지만 관객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니키아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솔로르 역을 맡은 남자 무용수와의 호흡이 중요할 것 같다. =정영재씨와 호흡을 맞춘 지 2, 3년 된다. 오랜 시간 함께 손발을 맞춰서 그런지 지금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어떤 움직임을 할지 정영재씨가 잘 안다.

-국립발레단 간판 발레리나였던 김주원씨가 나간 자리에 들어간 새로운 수석무용수다(현재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는 김지영, 김리회, 이영철, 박슬기, 이동훈, 이은원, 정영재 등 총 7명이다). =밖에서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매 작품 최선을 다해 배역을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2003년 선화예술중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예술 영재로 발탁됐다. 그리고 200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단 한번도! 슬럼프도, 사춘기도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발레를 해왔던 까닭에 다른 게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제일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 =2008년쯤 발등에 금이 가는 스트레스성 골절이 왔다. 발레 토슈즈를 오래 신다보면 생기는 증상이다. 그것 때문에 6개월 정도 쉬었다.

-2010년쯤인가. <백조의 호수> 공연 때 실수를 많이 해서 힘들어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슬럼프라고까지 하긴 좀. 다른 무용수들도 모두 겪는 일이다. 당시 파트너와 호흡이 맞지 않아서 그랬다. 너무 힘들었다. 많은 분들이 내 공연을 보기 위해 오신 건데. 이후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국립발레단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가 많다.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 =물론 선배들만큼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있다. 그러나 선배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관찰하면서 내게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후배들에게서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시구도 화제였다. 청바지 광고를 찍은 적도 있고. 발레 외에 해보고 싶은 분야는 뭔가. =지금은 발레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는 가방과 옷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

-안무가로서 무대에 올리고 싶은 작품은 뭔가.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어린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발레 작품을 기획해 보고 싶다.

-내일부터 공연이다. 어떤가. =떨린다. 공연을 생각하면 계속 떨린다. 무용수들은 연습할 때 안 하는 실수를 무대 위에서 할 때가 있다. 긴장되니까. 아, 모르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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