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flash on
[flash on] 상처란 보이지 않는 것
송효정(영화평론가) 사진 백종헌 2013-06-06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화제작 <보이지 않는>의 미할 아비아드 감독

그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다뤄온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텔아비브 대학에서 영화, 문학,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여성이고 어머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영화감독이다. 미할 아비아드 감독의 <보이지 않는>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보이지 않는-폭력의 관계구조’ 섹션의 쟁점에서 가장 호소력 짙은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연쇄강간범의 피해자였던 두 여성이 32년 뒤에 만나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여주인공이 든 카메라는 증언을 기록할 뿐이다. 그 어두운 창 너머 암흑 속에 ‘보이지 않’게 잠복해 있는 폭력의 기원을 그녀와 함께 더듬어보았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두 여주인공이 32년 전에 이른바 ‘예의바른 강간범’에게 피해를 입었는데, 이 모순적 별명의 유래는 무엇인가. =영화는 두 여주인공에게 트라우마가 된 강간사건을 다루고 있다. 강간범은 저널에서 ‘예의바른 강간범’(polite rapist)이라 불렸다. 그는 여성을 강간하다 반항하는 자는 죽였고, 그렇지 않은 여성과는 데이트하듯 강제로 밤을 보내고 집에 데려다주었다. 미디어와 저널에서는 이러한 폭력 행위를 ‘예의바르다’고 설명했다. 대단히 폭력적인 범행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악행’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이러한 명명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사회문제와 여성문제를 교차시킨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이 작품이 첫 번째 극영화이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극영화를 만든 데 나름의 의미가 있는가. =이 영화에는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들의 32년 뒤가 등장한다. 다큐멘터리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터뷰하며 현재의 사람들을 쫓는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들의 기억과 감성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뒤섞었다. 과거의 장면은 실제 기록화면을 다큐멘터리적으로 활용한 것이고, 현재의 모든 인물 설정과 장면은 연출된 것이다. 모든 과거는 리얼이고, 모든 현재는 허구이다.

-주인공 한명이 방송국 편집자이고 다른 한명은 친팔레스타인 좌파 활동가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나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군 주둔을 반대한다는 나의 입장을 드러내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올리브 농사를 방해하고 그들을 쫓아내려 한다. 올리브 농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한 생계수단인데, 이스라엘 분리주의자들이 이들을 쫓아내고 올리브유 사업을 점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현재 다른 누군가를 도우면서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 한다. 현재 니라는 싱글맘이며, 릴리는 가족간에 문제가 있다. 나는 릴리든 니라든 모두 완벽한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니라는 32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려 한다. 왜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기억하려 하는가. =이상하게도 니라가 기억을 더 잘할수록 더 구체적인 것을 기억할수록 현재의 자신에 대해 더 나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제목 <보이지 않는>에서도 드러나듯 상처란 보이지 않는다. 한편 범인은 30년을 구형받았지만 10년 뒤 감형되어 출옥한다. 그녀들의 내밀한 상처를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니라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피해자들을 찾아 인터뷰한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길 꺼려한 탓에 비디오카메라는 녹음기로만 사용되었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 달라. =일주일 전에 새로운 역사 다큐멘터리 작업을 끝냈다. 19세기 유럽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1920년대 이스라엘 개척자 여성들에 대한 자료화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내가 꾸준히 관심을 두는 것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와 이 두 양식의 혼성에 관한 것이다. 한국영화로 본다면 이창동 감독의 <>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사실적이면서도 허구가 섞여 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