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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일] 독설의 신

<미스터 고>의 성충수, 배우 성동일의 변주된 얼굴

<씨네21>도 이런 촬영은 처음이다. 표지를 장식한 디지털 캐릭터를 인터뷰할 수는 없는 노릇. <미스터 고>의 고릴라 링링(오른쪽) 대신 <씨네21> 스튜디오를 찾은 건, 그를 영입한 에이전트 성충수 역의 배우 성동일이었다.

도대체 옆에 있지도 않은 고릴라를 어떻게 바라보라고 주문해야 할지 손홍주 사진팀장이 고민하기도 전에, 성동일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배우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촬영현장에서 가상의 고릴라와 함께 호흡하고 연기해왔다는 걸.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 이어 김용화 감독과 함께하는 세 번째 작품이지만, 오는 7월17일 개봉하는 <미스터 고>는 배우 성동일에게 다양한 이유로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올여름 가장 뜨거운 블록버스터의 중심에 선 그를 만났다.

신 스틸러에서 중심부로

“형, 미안해.” 김용화 감독은 성동일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감독과 배우로서 벌써 세번째 협업이지만, 영화 포스터에 한번도 배우 성동일을 등장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미녀는 괴로워>에선 ‘미녀’ 김아중이, <국가대표>에선 한국 대표 스키 선수로 분한 다섯 배우들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미스터 고>에선 고릴라 링링이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동일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스터 고>의 경우엔 개의치 않을 법도 하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고릴라와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딘 중국 소녀 웨이웨이. 언어의 한계를 지닌 <미스터 고>의 두 주인공을 대신해 이 영화의 판을 짜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동일이 연기하는 야구 에이전트 성충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와 자신이 적을 둔 두산베어스 야구팀을 구워삶아 한국 최초의 고릴라 야구선수를 영입하는 성충수는 <미스터 고>의 또 다른 핵심 인물이다. “내 대사가 전체 시나리오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5%다. 나는 원래 짧게 등장하고 툭 치고 빠지는 걸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이번 영화를 하며 메인 캐릭터를 맡은 친구들이 참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웃음)” 그의 말처럼 <미스터 고>는 매력적인 ‘신 스틸러’ 성동일이 아닌, 여름 극장가 블록버스터영화의 중심부에 당당히 선 주연배우 성동일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1루

감독 김용화라면 콜

성동일이 <미스터 고>의 출연을 결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가대표>를 끝낸 뒤 2년 넘게 김용화 감독을 못 만났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구 좋아하냐고 물어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더니 ‘야구 좀 보라’더라. 그러더니 <미스터 고>의 촬영을 한달 정도 남기고 ‘야구영화 합시다’ 하기에 오케이했다.” <미녀는 괴로워>부터 김용화 감독 영화의 페르소나를 도맡아온 성동일의 감독에 대한 신뢰는 단단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장점은 부각시켜주는 여러 장치들”을 김용화 감독의 영화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출연료, 출연료 하지만 김용화 감독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형, 이 정도만 받아’ 하면 ‘알았어’ 할 정도로 김용화 감독의 작품에는 무조건 출연하자는 입장이다.”

2루

인간 사냥꾼 성충수를 향해

벤츠를 타고 나타난 모델 같은 외모의 에이전트. 성충수라는 인물을 좀더 알기 위해 만났던 미국 야구 에이전트의 모습은 성동일의 상상 속 “덩치 크고 나이 많은 아저씨”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분을 만난 뒤 생각했다. 아, 샤프해야겠구나. 이 영화를 찍으며 16kg를 감량했다. 촬영 끝나는 날까지 하루에 한 시간씩 땀복 입고 뛰었다.” 슈트를 빼입은 냉철한 모습의 성동일이라니! 자신에게도 익숙지 않은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성동일은 미드 <안투라지>의 인기 캐릭터, 아리 골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직원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독설을 퍼붓지만,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고 알고 보면 인간적인 면도 있는 에이전시 대표 말이다. 에피소드마다 속사포 같은 대사를 쏟아내는 아리처럼 절도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성동일은 “아를 어로 말했으면 다시 촬영할 정도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소화해야 했다. 그의 전작들이 애드리브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성동일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미스터 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 사냥꾼’ 성충수로 분한 그가 쏟아낼 독설의 향연이다.

3루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다

<미스터 고>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귀한 현장이었다. 디지털 캐릭터 링링 때문이다. “고릴라 대역을 연기하는 친구와 한번, 그 친구의 행동 반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한번, 회색 공(그레이볼)과 털로 된 공(퍼볼)을 각각 고릴라 위치에 두고 한번씩” 총 네번을 연기해야 한컷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성동일에게 그보다 더 고역이었던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인 고릴라를 상대로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 느낌대로 편하게 연기를 해왔는데, <미스터 고>를 통해 상대 배우를 보고, 공감하고, 느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게 가장 큰 수확이다.” 존재하지 않는 고릴라의 움직임과 행동을 상상하며 성동일이 배운 건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다시, 홈

절실하게 살아온 대로

“형 살아온 대로 연기하시면 됩니다. 절실하게.” <미스터 고>의 촬영을 앞두고 성충수 역할에 대한 김용화 감독의 주문은 간단명료했다. 그는 <미스터 고>의 성충수와 마찬가지로 <미녀는 괴로워>의 최 사장, <국가대표>의 방 코치 캐릭터를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배우 성동일을 염두에 두고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독 김용화 감독의 영화 속 성동일은 기존에 그가 보여줬던 능글맞거나 센 캐릭터들과 달라 보였다. 세상과 맞서 싸우며, 삶의 고단함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 특히 “<국가대표>의 방 코치와 <미스터 고>의 성충수는, 나아가는 방향이 다를 뿐 자신이 속한 바닥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절실함은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이다. 그건 다작의 배우로 거듭나기까지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야 했던 인간 성동일의 변주된 얼굴이기도 하다.

그런 성동일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성충수가 퇴장하는 장면이라고. “성충수가 모든 걸 편안하게 내려놓는 순간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가장 나다운 것 같다. 이제까지 재미있고 세고 독특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는데, 진짜 성동일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그 장면에서 나오더라. 이제껏 연기하면서 이렇게 편하게 임한 순간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라마 <은실이>의 ‘빨간 양말’ 양정팔로 주목받은 뒤, 배우 성동일은 강렬한 캐릭터를 관객의 뇌리에 아로새기며 지난 15년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가드를 올리고 숨가쁘게만 달려온 그의 이완된 모습을 목도하게 될 영화, <미스터 고>가 더더욱 궁금해진다.

링링은 내 친구

성동일이 뽑은 <미스터 고>의 한 장면

성충수는 돈이 아니면 이 사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선수들마저 팔아먹기 때문에 극중에서 ‘인간 사냥꾼’이라고 불린다. 모든 야구인이 성충수를 손가락질할 때, 유일하게 그를 위로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는 건 고릴라 링링이다. 성충수가 막걸리를 마시며 링링에게 한탄을 늘어놓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아들처럼, 친구처럼, 가족처럼, 링링을 상상하며 촬영에 임했다. <미스터 고>에선 인간이 <동물의 왕국> 보듯 고릴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릴라의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 군상의 모습이 많이 보여진다. 링링이 관객을 많이 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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