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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내 편 들어주는 사람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혜성이 손바닥 가득 적어놓은 말들은…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10년간 짝사랑하던 변호사에게 눈물의 키스를 하고 훌쩍 떠났던 소년이 1년 뒤, 사체 손괴와 은닉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되어 돌아왔다. 기억을 잃고,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도 사라진 소년 박수하(이종석)는 자신이 정말 죄를 저지른 게 아닐까 두려워한다. 정황도 범행동기도 증거품도 증인도 불리한 사건. 게다가 피고인이 죄를 부인할 의지도 없으니 변론을 맡은 장혜성(이보영)은 난감하기 그지없다. 지난 기억이 없는 수하에게 혜성은 그저 국선전담 변호사일 뿐이고 “아무도 내 편 안 들어줄 때,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10회, 국선전담 변호사의 의미를 담은 수하의 말에 마음이 울컥한 한편으론 어쩐지 지나치게 감상적인 정의가 아닌가 싶어 한발 물러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째서일까. 아마 평소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에게 품은 인상이나 기대가 ‘내 말, 나의 진실을 믿어주는 공명정대한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겠지. 되짚어보면, 대개 긍정적인 가치로 통용되는 믿음이나 진실, 공정함이 이 드라마에선 간단치가 않았다. 의뢰인의 말을 믿는 것을 강조하던 혜성의 동료 국선전담 변호사 차관우(윤상현)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허언증이 탄로나 도리어 피고인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고 만다. 진실도 법정에서 입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며, 이를 위한 증거도 채택되려면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재판에서 악질 중죄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되고, 죄를 시인하고 반성한다고 감형이 되는 것도 법에 기대하는 공정함과 거리가 멀다.

개인을 중심에 놓은 믿음과 진실, 공정함은 타인이 등장하면서 허물어지고 다양한 각도로 해석되고 적용된다. 하지만 ‘나’를 놓고 저쪽으로 가기는 쉽지가 않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말이 반드시 감정에 동조해 달란 뜻이 아닐 수도 있으며, 처지와 조건을 계산에 넣고 판단을 해보란 의미일 때도 경험에서 비롯한 분노나 억울함 등의 감정으로 이입하게 되는 ‘나’를 피고인, 범죄자 등의 조건에 넣어 시뮬레이션하기는 더 어렵다. 기소하고 구형한 검사가 처벌을, 판사가 판결을 내리려는 의지를 갖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쪽에도 재판의 절차와 법률에 따라 변론할 의지를 가진 변호인이 필요하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변론하고 그를 보호하는 것. 이게 결국 편들어주는 사람이었다. 1회에서 혜성(아역 김소현)의 엄마 어춘심(김해숙)은 주인집 딸을 다치게 했다는 누명을 쓴 혜성을 붙들고 말한다. “니가 했다 캐도 내가 니 지킨다. 그러니까 더도 말고 빼도 말고 딱 사실만 얘기해라.” 평범한 모정으로 흘려들었던 대사는 10회가 지나, 본래 피해자 가족이었으나 피고인 신분이 된 수하의 말과 겹쳐진다.

입장이 바뀌는 것은 수하만이 아니다. 거짓 증언으로 인한 누명을 썼던 혜성은 또 다른 사건의 증인으로, 변호사에서 피해자 가족으로, 다시 변호사로 입장을 옮겨간다. 어머니가 살해된 사건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에 유리하게 판단’하는 형사소송원칙과 변호인을 저주했던 혜성은 바로 그 원칙으로 변론하는 변호인이 되어 수하를 구할 수 있었다. 유죄, 무죄를 판결하는 건 변호사의 몫이 아니지만, 재판에서 무죄일 수도 있는 피의자를 구할 수 있도록 변론하고 법이 돌보지 못하는 약자의 처지를 대변할 수 있는 건 변호사뿐이다. 어린 혜성에게 죄를 시인하라 다그치는 이에게 반박하기 위해 손바닥 가득 볼펜으로 메모한 말들을 외우고 또 외웠을 어춘심 여사처럼, 혜성의 손바닥에도 변론을 위한 말들이 가득 적혀 있더라.

+ α

연쇄살인범의 테마곡

집요한 복수심으로 수하의 아버지와 혜성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수하까지 함정에 빠뜨린 민준국(정웅인)은 혜성을 스토킹하며 문자로 ‘I’ ll Be There’를 찍어대더니, 잭슨 파이브의 <I’ ll Be There>가 흘러나오는 휴대폰 벨소리로 빈집에 다녀갔음을 알린다. 이외에 드라마 속 흉악범 혹은 연쇄살인범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때 사용하던 음악에는 슈베르트의 <마왕>(<싸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Phantom of the Opera>(<유령>), 헨델의 <울게 하소서>(<히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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