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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만화의 광포한 쾌락
2002-02-07

세기초 만화의 어떤 경향 3

80년대 스포츠 극화와 기업만화가 불러일으킨 호쾌한 바람에 비하면, 90년대 한국 남자만화의 나날은 지지부진했다. 대본소 공장제 만화가 열심히 파들어간 그 자리가 찬란한 금광의 터전이 되기는커녕 그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90년대 중반 <드래곤 볼> <슬램덩크> 등의 도움으로 열린 만화 단행본 시장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고, 연이은 각종 파동으로 인해 지금은 무릎뼈가 꺾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그들 속에서 새로운 발전의 흐름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만화 작가군의 한 부분은 외형적, 기교적인 면에서는 일본만화에 비해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본만화의 영향력이 한국만화와 일본만화의 외형적인 차이를 거의 없앴다는 점은 우리에게 만화적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자괴감을 갖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독자성을 잃어버린 대가로 훌륭한 실력을 가진 그림작가가 일본이나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동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을 만한 장애는 없어졌다. 당연한 결과로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만화가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아직은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들 중 누군가가 만화 메이저리그의 올스타로 선발되는 영광을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아일랜드> <신 암행어사>의 윤인완·양경일 콤비, <프리스트>의 형민우, <교무의원>의 임광묵은 현재 가장 세련된 외형의 만화로 한국만화의 국제성을 시험해나가는 만화가들이다. 그런데 제각각의 개성있는 선들을 갈고 닦아가는 이들의 작품이 분명한 하나의 경향으로 읽힐 정도로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스토리 작가 윤인완, 그림작가 양경일 콤비는 이들 중 가장 대중적인 경향의 작품을 펼치고 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퇴마사의 이야기 <아일랜드>에 이어 우리 고전을 전혀 새로운 각도로 재해석한 <신 암행어사>는 말끔한 입체형의 주인공들과 잔혹한 괴물들의 싸움을 엇갈리게 배치하면서 복합적인 감각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캐릭터의 외형이나 작품의 전개방식에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들의 경향에 부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장점일 것이다. 외형적으로 돋보이는 것은 역시 양경일의 그림실력이다. 하지만, 일본 스토리 작가와 결합한 <좀비 헌터>가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와 활력없는 조연 캐릭터들 속에서 다소 지루한 사건의 연결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양경일 세계의 내러티브를 가장 잘 구사해내는 콤비 윤인완의 존재를 절대 무시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임광묵의 <교무의원>은 여러 면에서 미완의 작품이긴 하지만,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다양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섞어가면서도 독창성을 획득해나가려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다. 이후의 작품행로가 어떠하든 임광묵은 양경일의 대중노선 외곽에서 한국 남자만화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 그리고 더욱 바깥에는 형민우의 <프리스트>가 있다. 흑백의 장편 스토리 만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프리스트>는 영미권의 서부물과 고딕호러의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낯설지만, 만화가의 훌륭한 데생과 격렬한 이야기 흐름은 상당한 흡인력을 만들어낸다.

통합적인 판타지의 세계

<프리스트>의 고딕호러, <교무의원>의 초현실 판타지, 그리고 <아일랜드> <신 암행어사>의 퇴마 판타지. 얼핏 외형적으로는 다른 영역의 벽을 쌓고 있는 듯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면 이들은 매우 비슷한 종류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만화들은 각종 요소들이 뒤범벅되어 있는 통합적인 판타지의 세계를 구현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악으로 뒤덮여 있는 무질서의 공간이다. 남성 주인공은 약간의 콤플렉스와 함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선악의 양분법에서 벗어나 있다. 베고, 찌르고, 쏘고, 터뜨리고, 부수는 폭력의 선혈이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만화 전반에 강력한 비트를 만들어낸다.

한편으로 이들 만화는 무협 전통에 뿌리박은 한국만화의 남성성을 분명하게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선악을 넘어선 광포한 쾌락의 세계를 안내한 것은 아마도, <데빌맨>에서부터 시작되어 <베르세르크> <무한의 주인> <배가본드> <지뢰진>으로 이어지는 일본만화의 한 맥락일 것이다. 형민우의 작품은 기독교와 서구 호러의 세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괴물의 형상화와 세계관에서 상당한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일본 만화가들 역시 벡신스키, 기거 등 유럽 호러 판타지의 피를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떠한 만화든 완전한 독창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들 만화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기시감과 모방의 흔적을 어느 정도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그토록 복잡하게 설정한 세계가 겉멋만이 아니라면, 그 철학적 기초를 분명한 이야기로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껍질은 화려하지만 아직 그 알맹이는 알 듯 말 듯한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