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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내가 저랬다면 말이야…

장태주를 중심으로 <황금의 제국> 보기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의 후반부로 갈수록 ‘서 회장 어록’도 늘어갔다. 가족을 잃은 소시민 백홍석(손현주)의 정의를 응원하는 한편, 노회한 재벌총수가 회고하는 권력과 대중의 속성에 탄식 섞인 동의를 보태고 있으려니 어쩐지 기분이 묘하더라. 서 회장(박근형)이 운을 떼기 시작하면 ‘또 옛날얘기 시작’이라고 지레 바리케이드를 쳤던 것도, 일방적인 회고담 속에서 그가 점차 영향력있는 괴물, 흑막의 최종보스가 되어가는 것에 반발심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박경수 작가의 특장이었던 회고담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지난 얘기다. <황금의 제국>은 재벌의 성장과 후계다툼으로 시계를 돌리고, 이해가 얽힌 이들의 시점을 보탠다. 성진그룹 최동성 회장(박근형)의 회고에 또 다른 진술이 겹치며, 그의 인생과 재벌기업의 윤곽이 드러난다. ‘신림동 판자촌 출신’ 장태주(고수)는 최 회장과 가장 먼 곳에서 출발해 그의 삶을 따르는 인물이다.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밀면 가게를 잃고 농성장을 지키던 아버지가 화재로 숨지자, 태주는 시공사인 성진건설의 사장 최민재(손현주)에게 복수하고 가게도 다시 열었다. 하지만 태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추적자…>에서 강동윤(김상중)의 목표가 서 회장의 권력이었던 것처럼, 태주는 성진그룹의 주인 최동성 회장의 자리를 노리며 최민재와 연합한다. 1990년 이후의 굵직한 경제사를 도박사 같은 마인드로 관통하는 태주를 비롯해 최 회장이 지목한 후계자 서윤(이요원) 등 그룹 패권을 놓고 다투는 이들의 구체적인 행위가 죄다 경제사범급인 드라마.

또한 <황금의 제국>은 전작에서 생업을 미루고 투표하기 위해 뒤늦게 긴 줄을 섰던 사람들의 지난 시간도 복기한다. 미용실 TV를 보다 투표하러 달려가던 사람들은 <황금의 제국>에선 파마를 하며 부동산 정보를 뒤적이고 있는 장면으로 반복된다. 주기적으로 투표하는 역할이 주어질 뿐, 긴 줄을 섰던 갑남을녀들은 <황금의 제국>에선 ‘정보’에 따라 땅을 사고, 재건축으로 늘어날 평수에 미래를 꿈꾸던 사람들이다. 그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자산증식의 타이밍을 엿보았을 테고. 이 대목에 청교도적인 죄책감을 갖거나 욕망을 준엄하게 꾸짖을 생각은 없다. 엄청난 부귀영화를 바란 것도 아니며 가족이 공유할 안락함과 여유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일할 이유가 뭐가 남는가. 이렇게 소시민적인 욕망을 긍정하거나 상한선을 긋고 나면, 멈출 줄 모르고 욕망의 스케일을 넓히는 장태주를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육십 평생 늘 패배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이겨보겠다고 나선 장태주는 모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매번 승리하고 있다. 자산을 다 잃은 것 같다가도, 다시 베팅해 몇배로 돌아온 이익을 손에 쥔다. 근현대사의 불행을 한몸에 짊어진 캐릭터는 종종 보아왔지만, 이렇게 갖은 찬스를 죄다 잡는 경우는 처음 봤다. 어쩌면, 장태주란 인물은 90년 이후 경제사의 대목마다 기회를 잡길 원했거나, 못잡은 기회를 한탄하는 갑남을녀의 심경을 압축해 실현하는 역할이 아닐까?

유권자들에게 ‘권력으로 가는 일직선’을 제안했으나 끝판대장인 서 회장 앞에선 한낱 ‘주인을 무는 강생이’에 불과했던 강동윤 이후, 장태주가 가는 길은 최동성 회장의 권력, ‘황금의 제국’으로 향하는 또 다른 일직선인 셈이다. 태주가 모든 기회를 다 털어먹고 난 뒤는 어떨까? 갑남을녀의 자식인 나는, 집안의 전 재산인 트럭을 끌고 강원랜드에 간 아버지를 경멸하는 자식마냥, 그가 도박을 그만두길 원하지만 본전은 따고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심정이 되더라.

+ α

여기도 유산 싸움이…

성진그룹 일가의 싸움은 엄청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의 권위를 승계하기 위해 금치산자로 몰아붙이는 자식들을 보다가, 문득 아주 작은 규모의 유산싸움이 떠올랐다. 김정수 작가의 4부작 드라마 MBC <쑥부쟁이>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부의금을 나눠 갖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집안 대표로 공부하고 출세한 장남은 시골에 혼자 남은 어머니를 붙잡고 “내가 사우디에서 암염을 한 움큼씩 집어먹으며 고생한 건 아무도 모른다”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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