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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토 코플리] 미확인 돌발 생명체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3-08-29

샬토 코플리

“샬토는 가장 전문적인 배우이면서 또한 가장 정신 나간 사람이기도 하다. 분명 그 둘 중 하나일 텐데(웃음) 아무튼 그에게는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정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엘리시움> 홍보차 샬토 코플리와 함께 방한한 맷 데이먼은 그에 대해 “뭔가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그로 하여금 배우로서의 독창성을 지니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디스트릭트9>과 <A특공대>를 통해 단숨에 할리우드 메이저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는 것 같은 그의 존재는,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의 입에서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게 만든다. 그만큼 그가 지금껏 연기한 캐릭터는 어떤 계보로 쉽게 파악되지 않는 독특함이 있다. 미확인 비행물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엘리시움>의 샬토 코플리는 영화 속 맷 데이먼의 반대말이다. 오직 살기 위해 엘리시움으로 가려는 맥스(맷 데이먼)를 가로막는 주인공이 바로 크루거(샬토 코플리)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질병이 없는 선택받은 1%의 세상 엘리시움으로 떠나려는 사람들을 처단하는 악당이다. 엘리시움의 총리(조디 포스터)로부터 은밀한 임무를 부여받는 비밀 용병이자, 버려진 지구에서 살길 거부하고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무단 이민자들을 닥치는 대로 처단하는 무뢰한이다. 엘리시움을 모두에게 개방하려는 맥스와 그를 저지하려는 용병 크루거는 그렇게 뜨겁게 충돌한다. 닐 블롬캠프는 <디스트릭트9>(2009)과의 테마의 연장선에서, ‘절친’ 샬토 코플리의 변화를 덧씌우며 <엘리시움>을 보다 강렬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닐 블롬캠프는 이번에도 그의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 <디스트릭트9>에서 눈빛부터 팔까지 괴상하게 변해가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엘리시움>에서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디스트릭트9>보다 더하지는 않지만 보다 강력한 ‘한방’이 있다. 샬토 코플리는 “닐이 ‘이번에는 네 얼굴을 날려버릴 생각이야’라고 말하며 웃더라. 무슨 장면인지 나중에야 알았다”며 웃었다. 그 역시 얼굴이 날아가버려 맥스와 마찬가지로 엘리시움의 치료기계가 필요해진 것. 그러니까 맥스와 크루거 모두 애타게 엘리시움을 찾아 떠도는 부랑자들이다.

남아공의 사샤 바론 코언

<엘리시움>을 위해 삭발을 하고 문신을 새긴 맷 데이먼의 변신 못지않게 샬토 코플리도 놀라운 변신을 감행했다. <디스트릭트9>과 <A특공대>에서 봤던 수다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용병’의 모습이다. 맷 데이먼과 달리 고난도 액션 안무와 스턴트 훈련이 처음인 그는 살인적인 강도의 트레이닝을 무사히 소화했고, 생생하고 실제적인 결투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살인기계’나 다름없는 크루거가 어색한 동작을 보이는 순간 맥스와 크루거의 대립구도는 완전히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또한 냉소적이고 악랄한 용병 크루거를 연기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거친 악센트를 연습했고, 인종차별 정책이 존재하던 시절의 남아프리카 방위군 부대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복장과 턱수염으로 캐릭터를 완성했다. 외양만으로는 그가 과연 <A특공대>의 괴상하고 종잡을 수 없는 ‘머독’이었나 싶다.

샬토 코플리가 말하는 크루거의 핵심은 ‘과도한 공격성’이다. 거의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드라마 안에서 그 공격성은 이야기의 굴곡과 선명한 합일을 이룬다. 상황 변화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 일촉즉발의 상황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는 크루거라는 캐릭터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살아온 남아공의 과거 환경 자체가 무척 위험했다. 길에서 총 맞는 사람도 봤고, 누가 나에게 총을 겨눈 적도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총을 겨눈 경험이 있다. 일상의 폭력성이랄까. 현대사회라고들 하지만 남아공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일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디스트릭트9>에서 남아공의 영웅을 연기했다는 자부심이 있는데(웃음)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스타일의 악센트를 기본적으로 구사하면서 동유럽 악센트까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3개의 악센트와 톤을 사용한다. 이전부터 악센트 구사는 연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점에서 <엘리시움>은 단순한 변화 이상으로 큰 공부가 된 작품이다.”

샬토 코플리는 <디스트릭트9>을 통해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동안 거의 혼자서 ‘남아공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샤를리즈 테론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그만큼 샬토 코플리의 등장은 ‘어디서 저런 배우가?’라는 공통된 호기심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2005)에서도 호흡을 맞춘 닐 블롬캠프와 샬토 코플리는 오랜 친구 사이였고, <디스트릭트9>은 그들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이었다. 외계인 불청객들을 향해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사고로 외계물질에 노출돼 외계인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극도의 혼란을 느끼던 그 공포에 질린 표정에서 ‘신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닐 블롬캠프는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샬토 코플리는 그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배우다. 남아공의 사샤 바론 코언으로 기억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스트릭트9> 이후 곧장 <A특공대>의 머독으로 캐스팅되면서 그의 성공가도가 단숨에 열리는 듯했다. 빨간 모자가 트레이드마크로,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를 오가는 헬리콥터 조종사 머독은 그야 말로 그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실제로 그는 과거 TV시리즈 <A특공대>에서 머독을 연기한 드와이트 슐츠에게 흠뻑 빠졌었다. 과거 남아공에서는 <A특공대>가 13살 이상 관람가여서 어머니는 그를 TV로부터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니 전기 작가라면 누구나 써보고 싶은 드라마틱한 할리우드 입성 스토리였다.

하지만 이후 그의 선택은 의외였다. 저예산 SF영화 <유로파 리포트>(2013) 등 감독도 동료배우도 딱히 유명하지 않은 의외의 작품에 모습을 비춘 것이다. “<디스트릭트9>의 성공에 이어 <A특공대>라는 메이저 영화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할리우드의 모든 시나리오가 우리 집에 오는 걸로 착각했다. (웃음) 그런 건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었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아무것도 없던 배우인 나에게 주목하는 시선들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머독’ 스타일의 거의 전형적인 역할들이 많았고, 남아공에서 온 초짜 배우인 나에게 하고 싶은 장르와 이야기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그에게 <A특공대> 이후의 시간은 갑작스런 성공에 따른 유명세로부터 거리를 두고 호흡을 가다듬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갑작스런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이 그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만은 분명하다. 재미삼아 미국에서 많이 알아보냐고 물었더니 “마이클 베이 감독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와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웃었다. 어쨌건 영어권 배우라면 할리우드라는 막연한 목표지점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물었다. “<디스트릭트9>이 젊은 관객의 마니아적인 지지를 받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그 정도로 관객과 비평가 모두의 호평을 들으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그때 배우로서 내 인생이 이전과는 다른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을 하긴 했다. <솔트>(2010) 프리미어 시사회에 참석했을 때, 세상에나 안젤리나 졸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와 <디스트릭트9>에서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고 말해줘서 미친 듯이 심장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그녀와 지금은 <말레피센트>에서 함께 연기를 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만나 역시 먼저 아는 척을 해줬던 맷 데이먼과 <엘리시움>을 한 것도 나로서는 꿈만 같은 일이다. 나에게 활동무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그에게 현재 가장 기다려지는 작품은 바로 할리우드 버전의 <올드보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박찬욱이 연출한 <올드보이>에서 대수(최민수)를 연기하는 조시 브롤린의 반대편에서 우진(유지태) 역할을 맡았다. 이제껏 그가 연기한 그 어떤 캐릭터와도 전혀 닮지 않았다. 그가 <올드보이>를 택한 이유도 그것이다. “이전 <올드보이>와 같은 점이라고는 내가 ‘부자’ (富者)로 나온다는 점뿐”이라는 그는 “이전 <올드보이>에서 우진의 몸이 발부터 거꾸로 말려 올라가는 그런 식의 장면은 전혀 없다. (웃음) 내가 그를 감옥에 넣는 이유도 다르고 엔딩도 다르다. 아무래도 한국 관객에게는 좀더 특별한 재미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A특공대> 이후 방황 아닌 방황기를 보냈다면 이제 그는 확실히 배우로서 안정감을 찾은 것 같다. <올드보이>를 지나 <말레피센트>를 끝내면, 다시 닐 블롬캠프와 함께하는 <차피>에 들어간다. 그렇게 그는 제 속도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남아공 출신 배우’라고 떠올리는 순간, 그가 바로 맨 처음 호명될 거란 꿈을 안고서.

magic hour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엘리시움>이 보여주는 미래사회의 가장 원시적인 공포는 바로 사무라이 검을 든 크루거의 존재에 있다. 마치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시리즈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것 같은 그는 한번 포착한 먹잇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 전사이자, 미래사회의 양극화가 낳은 괴물이다. 자기만의 악당을 창조하기 위해 샬토 코플리는 많은 의견을 내놓았고 단짝 닐 블롬캠프는 흔쾌히 맞장구를 쳐줬다. “남아공 역사에 실제 존재했던 비밀부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반바지를 입은 채 고기를 구워서 칼로 찍어 먹는 모습이 거의 원시인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그가 언제나 들고 다니는 사무라이 검은 어딘가 ‘쿨’해 보이기도 하고, 미래사회에서 뭔가 그만이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보기 힘든 독특한 악당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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