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iew
[유선주의 TVIEW] 허세라는 밑천

<투윅스>의 장태산이 베팅하는 방법

MBC 드라마 <투윅스>.

초라한 패를 쥐고도 연신 베팅하는 허세를 부리던 장태산(이준기)은 ‘한 끗발이 모자라서 졌다’며 자기 카드를 슬쩍 섞어 감추려다 결국 패를 들켜 비웃음을 산다. “바둑이(포커의 일종)판에서 바둑이 재롱 한두번 보시나” 너스레를 떨며 개평을 받아 챙기던 태산은 정비공으로 일하는 고아원 동생 집에 얹혀살며 ‘그렇게 살고 싶냐’고 핀잔을 들을 때도 “난 나사가 두개나 빠진 놈”이라며 한술 더 뜨는 자조로 받아친다. 조폭 출신 사업가 문일석(조민기) 대신 두번이나 감옥에 갔다왔지만 조직원들은 무기력하게 빌붙어사는 태산을 인간쓰레기 취급해왔다.

현실을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낫고, 부정하는 편보다 인정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알고 인정하려던 마음은 타인의 비난과 자신에 대한 실망 앞에서 자조나 자기 희화화의 방어벽을 치게 된다. MBC 드라마 <투윅스>의 장태산이 딱 그랬다. 그리고 갱생의 기회는 가장 비참한 순간에 찾아왔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누님’이 사준 양복을 입고, 밤을 같이 보낸 대가로 받은 돈을 뿌리며 후배와 드잡이를 하던 그때, 8년 전 헤어진 서인혜(박하선)가 찾아와 딸 수진(이채미)을 위해 골수검사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투윅스>는 골수이식 수술을 앞두고 세 번째 살인누명을 쓴 장태산이 탈주를 벌이는 2주간의 이야기다. 태산의 도주 경로는 실제 장소와 지명을 바탕으로 하며, 문일석과 국회의원 조서희(김혜옥)의 뒤를 캐기 위해 탈주사건의 담당검사가 된 박재경(김소연)과 영등포 경찰서 형사들이 수사권을 놓고 갈등하는 대목도 그럴싸하다. 재경은 정보유출과 비밀인지수사를 이유로 형사들의 정보접근을 제한하고, 형사들은 다짜고짜 명령만 내리는 재경에게 불만이 쌓여간다. 이들이 협력과 갈등 속에서 서로 정보를 짜맞춰가는 과정은 꽤 근사한 수사물의 꼴을 갖췄다. 드러난 것을 토대로 채우지 못한 퍼즐의 빈곳을 맞춰가는 형식은 장태산이란 인물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

탈주범 주제에 인질 집에 경보장치를 달아주거나 임신부의 출산을 돕는 장태산의 행적은 여론을 어찌해보려는 계산된 선행이나 도주과정의 영웅심에 취한 행동일 수 있다. 신창원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탈주 이후의 태산은 아픈 딸의 존재를 알고 나서야 눈을 뜨는 부성애를 제외하면, 허세나 익살, 너스레까지 모두 전에 있던 요소들로 움직인다. 인혜가 회상하는 8년 전의 태산 역시,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새우구이 한판을 다 까먹는 미련한 허세를 부리던 남자였다.

문일석의 그늘에서 자포자기하며 살아온 태산이 근본적으로 껍질을 깨는 것은 7회에서 8회로 이어지는 춘천의 목재공장 창고납치 장면이었다. 드라마에 빈번한 창고 신들이 통제권을 쥔 자와 묶여 있는 자 사이의 힘의 기울기를 역전할 때 주로 비밀의 깜짝 폭로에 기대왔다면, <투윅스>에선 서로 알고 있는 정보의 차이에서 비롯한 심리전을 벌인다. “디카 어딨어? 디카 내놔”라는 문일석의 질문은 ‘중요한 정보가 담긴 디카를 네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정보를 드러내는 셈. 이를 바탕으로 태산은 사력을 다해 블러핑을 하고 문일석은 다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해 유도심문을 벌인다. 디카의 행방은커녕 그것을 왜 찾는지도 모르던 태산이 문일석과 그의 하수인들을 동요시키는 행동은 1회의 ‘바둑이 재롱’과 근본이 같지만, 살아서 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워낙 절박했기 때문에 문일석의 판단에 혼선을 가져온다. “당신이 본 내가 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티끌만큼 가볍던 태산의 허세가 무게를 갖는 순간이다.

이준기의 창고

<투윅스>가 보여준 창고 납치 신의 팽팽한 긴장 덕분에 역시 이준기가 주연했던 MBC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인상적인 창고 신이 떠올랐다. 타이 범죄조직 ‘청방’에 잠입한 국정원 언더커버 요원 이수현(이준기)이 기억을 잃고 마오(최재성)의 오른팔 케이로 신임을 얻어내자, 그를 각성시키고자 지하창고로 불러낸 정학수 국장(김갑수)은 수현과 케이의 기록을 편집한 영상물을 빔 프로젝터로 쏘는 미디어아트(!)를 연출한다. 마지막 회에서 수현과 마오가 대결할 때 거울과 물에 젖은 바닥을 이용한 창고 신도 굉장했다.

관련영화